삼투압의 나라는 과연 미국과 싸울 수 있는가?
삼투압은 금방 없어진다. 우리가 그렇게 추석 연휴를 연호했어도, 말로만, 꿈으로만 꿈꾸던, 일주일 그런 것을 갖게 되었어도, 막상, 막삼, 그것을 좋아하는 이들은, 지금 학생들 뿐일 것이다. 젊은 직장인들도. 추석의 즐거움은 사각형으로 되어 있고, 그것의 정방형의 내부는, 갈수록 내용이 사라져간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정신현상학적으로 나타나게 되면, 사람들은 모두 명량대첩의 일본군들처럼, 삼투압으로나 된다. 삼투압의 특징과 약점은, 끊임없이 삼투압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멈추고, 책을 읽거나, 저명한 평론가의 글을 읽거나, 하지 않는다. 하지 못한다. 자신도 자기가 삼투압이라는 것을 아는, 그런 삼투압적 의식은 있기 때문이다. 도리어 평론을 읽어서, 그들 삼투압의 따까리로 전락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반합 따까리인데, 그것을 확인해주는 절차 같기 때문이다. 어쩌면 유인촌도 그랬고, 이어령도 그랬다. 송창식도 그랬고, 웨딩케익도 그랬다. 신부는 삼투압되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좋아하고, 사랑하고, 기본적인 것은, 뷔페의 내용들처럼 충분했으나, 그러나 사랑하지만 사랑없는, 그런 컨베이어 루즈벨트의 삼투압으로 실려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들 고어의 신라와도 닿아있다. 원래는 부여나 나주, 무진주나 무주, 완산, 충남 보령에 좋은, 공주, 아주 좋은 삶의 터가 있었을 것이다. 샘터. 그런 에세이집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외국 사절들이 그렇게 방문을 해서, 아름다운 방문, 놀라운 선물, 아프리카에서도 와서, 처녀들을 홀리고, 홀리홀리홀리, 거룩거룩거룩, 하늘에서 스랍들이 그렇게 외쳐서, 그렇게 일본으로, 중국 삼합회로, 인도로, 시집을 갔을 것이다. 사람들은 알고도 당한다는 말을 안다. 알면 당하지 말아야지, 어째서 알고도 당한다는 말인가 할 것이다. 그것은 글을 쓰는 나도 그렇다. 사람들은 알고도 당하는 것이다. 철학과에 입성하더라도, 결국 논리적 흐름이 덧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중간에,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머리가, 이마가, 비티에스 아미가, 거기서 멈출 수 없고, 자기보다 나은 것들의 흐름에 자기를 맡길 수밖에 없고, 세계적인, 그런 것들의 흐름에 자기를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처음의, 고조선보다 이전의, 우리나라의 왕국과 처녀의 운명이 그러했다. 전 세계적인 흐름과 인기, 그리고 권력에 영합하여서, 알고도 당하는 운명을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빠삐용처럼, 극단적인 탈출을 시도하는 여자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살아 돌아온 여자도 있었고, 성경에 기록된 시바의 여왕도, 실은 시바의 여왕이 아니라, 솔로몬의 여동생이, 아무튼 그러하다. 그렇게 돌아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젊어서의 삼투압은 불완전한 것이 운명이고, 우리는 그것의 뜻을 완전히 깨우칠 때까지는, 헤겔 철학의 탄생까지도 기다려야 했다. 다소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까지도 기다려야 했다. 억울한 귀신들이 되어서, 묻힌다는 것을 전해들은 조선의 왕들이, 경주에 무덤을 그렇게 만든 것일 수 있다. 이런저런 탑들을, 전국 곳곳에 지은 것일 수 있다. 산에, 높은 산에, 탑과 순수비 같은 것을 설치한 것일 수 있다. 아무리 그렇다고 말을 해도, 거짐 지금까지도, 그것을 알아듣는 청년이나 처녀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철학과 내에서도, 헤겔을 공부하는 이에 대한 관심의 삼투압은 대단한 것이다. 그것은 붉은 눈물 같은 것. 붉은 시월 같은 것. 왜냐하면, 즐겁게, 서장훈처럼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많으나, 막상, 막삼, 그렇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삼투압은, 눈물의 삼투압은 그래서 발생한다. 그것의 기미는 있기 때문이다. 기미가요. 일본은 기미가 있고, 한국은 애드립이 가능하다. 애국가. 어떤 중국 여자가, 공산당인데, 착복하지 않아도, 당간부인 아버지가 재산이 십조라고 한다면, 당연히 자기 딸이 세상 모든 삼투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로 키우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교육을 신현균 교육으로 잘 시킨다. 성경은 백독하고, 고전도 거의 모든 것을 필사하고, 프레드릭 제임슨의 글들도 즐겨 읽는 이가 되었다. 삼투압은 사라지나, 외롭게 되는 것이다. 헤겔을 잘 읽는 이는, 헤겔을 읽지 못하는 이들에게서 끊임없는 질투와 침입과 증오와, 엔느, 그런 것들을 받게 된다. 그런 것은 없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밤잠을 통해서 전달받게 된다. 그리고 내가 중국 여행을 갔을 때, 마침내 충칭에서 함께 도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상상은 금방, 현실에서 삼투압이 빼앗기게 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존재가 있는 것은, 삼투압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부정적인 논리의 극치로서의 비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각종 금융 비리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형장의 이슬람으로 사라지게 된다. 수학은 그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그것에 오묘한 어떤 스틱스가 있는 것이다.
철학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털만 달린 세포질이, 동물들이 태어날 때, 함께 발견되는 것과 비슷하다.
한신대학은, 다만 무역학과나, 수학과만 다녀도, 오이도의 상큼한 오이 냄새가 나고, 사람들에게, 삼투압적 주변성의 힘을 얻었다. 학교 앞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신학과 독재 체제의 불만은 가질 수 있어도, 채플은 겨울에, 호빵처럼, 호불호가, 사랑의 호불호가 있었던 것이다. 야채빵. 피자빵. 그런 식으로. 그런 뿌듯한 하강길은, 여름에는 무궁화꽃이 만개한 가로수 같았다. 지금은 갈 수 없는. 갈 수 있으나, 늘 그런 애잔한 수사학을 남발하는. 우리나라 꽃. 흔들리는. 바람에 잠깐. 뭔가 안 예쁜 것 같은 예쁜.
기독교 교육학과를 지나, 신학과에 이르면, 삼투압은 절정에 치닫게 된다. 거기서부터는, 기미는 있었으나, 어느 놀이공원의 아마존 댄스가 시작된다. 그 말들이 하나도 삼투압적으로 버릴 수 없고, 오직 삼투압적으로, 내부적으로도 하나가 되어서, 이마에 다아아몬드가 발생하는, 비티에스의 아미의, 그 둘 사이에, 부처님의 다이아몬드가 발생하는, 유기쁨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막 웃고 그랬다. 나도 질세라, 성경에 세라, 그런 표현이 시편에 많이 나오는데, 나도 막 웃고 그랬다. 오티 때에,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 시간에, 내게 기대하는 것이 많이 있다고 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면, 나는 늘 내가 연예인인 것처럼, 웃음이 덮밥처럼, 그랬다. 오징어. 마파 두부. 그런......
삼투압은 공부하지 않아도 공부한 것 같은, 상상의 정신 임신 같은 것이다.
반젤리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 그것이 다만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째서 헤겔을 공부하지 않는가?
그리고 어째서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그리고 그의 소네트들을 공부하지 않는가?
우리는 그들 앞에서, 삼투압으로 흘러내려가는 사람들만 같다.
한국이 인기가 있는 것은, 세계 젊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철학이나 인문학, 그리고 클래식 연주자들 사이에서, 다만 허균이나, 허명, 허영이 아닌 것이다. 허난설헌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예언. 한번 삼투압이 되었으나, 독일 대학생이, 그러나 마땅한 삼투압을 지난 학자들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캇씨러. 훼슬레. 몰트만. 그런 것들. 펄벅 그런 것들. 그리고 그렇게, 모든 삼투압의 절정에서, 셰익스피어를 만났으나, 마땅한 교수나, 교주나, 일본 사람이나, 일본 애니나, 그런 것들을 만나지 못해서 그랬을 것이다. 처음에는 불독처럼, 처칠이, 그런 삼투압의 프로젝션의 어떤 케릭터 이미지였을 것이나, 나중에는, 공부하면 할수록, 한국 노래 중에, 사랑하면 할수록, 도리어 히틀러가, 아무튼 그랬을 것이다. 문장은 소년과 소녀의 삼투압을 통과해서, 베를리오즈, 그러니까 베트맨 투에서처럼, 슬프고 귀여운, 아련한 우리들 어린 펭귄들과 함께 흘러갈 뿐인 것이다. 처음에는 잠깐의 슬럼프이고, 닥터 페퍼, 닥터 슬럼프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와 같은 교회에, 펍에, 프리미어 리그에 모여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리고 모든 것에 공평한 수학의 수평선을 통과하고 나면, 우리들도 모르는 고조선 이전의 한반도 풍경을 같은 프로젝션 이미지들로 만나게 된다. 그것은 보르헤스 같은 것. 영원한 책의 제목 같은, 천년의 고독 같은 것. 백년의 고독. 그것보다 더 큰 것 같은 것. 많이 큰 것 같은 것.
정신현상학을 읽는다는 것은
철학과 삼투압 학생들에게는, 집안이 뿌띠 부르조아인 학생들에게는, 그러나 진지한 관심이, 꼭 가난하고, 전쟁하고, 가족들이 많이 죽고, 한 명 죽고, 그래서가 아니라, 그래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공부를 잘하는데, 명문대 철학과를 가서, 다만 헤매다가 로스쿨이나 가는 삼투압에 이르러서, 그 중에 몇 명은, 다섯 명은, 열 명은 그렇지 않은 무리들에게서, 내가 과거에 정신현상학을 읽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새로운 좋은 삼투압에 대항해서, 한국어 임석진역 헤겔 원전을 갖고, 창작의 진실, 혹은 나도 어쩔 수 없는 삼투압으로 진행하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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