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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한국인의 함정

by 마음대로다 2025. 9. 3.

한국인의 함정

 

 

 

 

 

 

 

 

 

사람들은 캘리포니아 드림을 들었을 때, 이것이 미국의 힘인가 했었다. 거기서부터 뉴욕과, 노래에도 있는 뉴욕, 그리고 엘에이는 나뉘게 된다. 사람들은 얼마나 저절로길을 꿈꾸는지 모른다. 저절로 움직이는 평면형 에스컬레이터를 이름 붙이지를 못해서, 그렇게 나는 부르는데, 아침에 일어났더니, 후지산에 있는, 불꽃과 함께, 일본의 유명한 카카오 카메라, 아침에 일어났더니, 매트릭스에서, 사람들 지나다니는 전철역 입구 앞이라고 하면, 어느 드라마에서처럼, 우리는 저절로길을 싫어할 수가 있다. 양반이면 얼마든지 사서삼경은 뗄 줄 안다. 그것이 바로 저절로길이다. 돼지 잡는 소리가 나면, 저녁에 돼지를 먹는 것도 같은 패턴이다. 서울대를 만들면, 사람들이, 이제는 문학가라든지, 오예 겐자부로, 아예 겐자부로, 하루키, 이틀키, 사흘키, 나흘키, 그렇게 생기는 줄 알았는데, 그런데 그것이 아닌 것이다.

 

현대 중국의 홍콩 영화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최가박당 같은 것도 그렇다. 다들, 이상한 정신들이 모여서, 기적처럼, 행글라이더를 타고, 빌딩 사이를 헤집고 다니고 그랬다. 그는 잘생긴 청년이고, 홍콩에는 그런 청년들이, 악당들과 함께, 많이 있었다. 그것들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문학가는 술먹고 일필휘지로 서울대학교에서 시험보는 것처럼, 그렇게 저절로 쓰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교주들은 그것들을, 그런 나가르주나를 매우 감별하는데 취약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보면, 모두가 양반집이고, 그냥 사서삼경이고, 나가르주나이고, 여자들도 수염 난 것 같은 풍경일 것이다. 그것들끼리 돌려보았다는 것이다. 한국말은 저절로 하게 되는 경지가 있다. 입석대인 것이다. 그리고 쓰는 것도, 주변에서 너무나 굼벵이처럼, 생각이, 망막이, 옛날 브라운관이 탁하고, 깨지고, 불도 들어오지 않으면, 자기 자신은 서석대처럼 잘 쓰게 되어 있다. 그것은 즐거움이다. 왜냐하면, 관계적으로 보면, 천사이기 때문이다. 앤젤. 그러니까 엔젤리너스 커피. 스타와 벅스하고 싶은, 유니버셜리즘 같은 것들. 핫초코 미떼.

 

일본은 한국을 가리켜, 커리어라고 불렀던 적이 있다. 아무튼 일본은 한국의 다음 시간인 것이다. 야마모또. 어떤 김종국을 닮은 아주머니가, 갑자기 야마모또 소리지르는 것이, 장기를 두는 패턴이, 영락없이 중국 사람 같았다. 잘 두는 것 같았다.

 

나가르주나는 철학적 한정성 같은 것일 수 있다. 아이들의 자유를 침해할 수는 없다. 그들이 나가르주나일지라도, 아이나 여자가 아니라, 그들의 자유 또한, 그들이 야마모또라고 부르든, 아까징끼라고 부르든, 별 의미가 없고, 특별한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이 무한 나가르주나 런닝 나가르주나, 그럴 수는 이삼십 년이 지나면, 그럴 수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 그렇게 나가르주나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들이 어째서 일본에서 호스트를 하고 있지 않는 것인가? 여자들은 호스티스. 전쟁 이후, 사람들은 다들 천사나, 나가르주나 같았다.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 군인들만 전쟁에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전쟁의 벽돌들을 담는 아낙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북한을 전부 나가르주나로 보는 것도, 같은 안타까움 같은 것이다. 아무리 북한에서 한달 내내 먹은 것도 없이 지내도, 일본에서 또한 러시아 음식을 열흘 동안 먹게 되면, 나가르주나가 발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맹렬한 사이렌 소리와 같다.

 

지금의 중국의 산업화, 과학화, 첨단화에 걸맞는 사상가나 작가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잔혹한 천사의 테제이지, 아무리 봐도, 나가르주나가 아닌 것이다. 정상급의 나가르주나로 보아도, 지금의 중국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영국에서 중국 민주화를 외쳐도, 그런 퍼포먼스는 런닝 나가르주나보다 나아 보여도, 중국의 지금 현실과 도킹이 되지 않는다. 충칭이 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