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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세상 모든 조절의 중심

by 마음대로다 2025. 8. 31.

세상 모든 조절의 중심

 

 

 

 

 

 

 

 

 

 

 

우리는 서울대 우울이라는 말을 안다. 그것은 공부는 전교 일등을 했으면서, 그들이 모여, 별로 철학자 한 명, 비평가 한 명 나오지 않는 현상을 두고, 서울대생부터 글루미 선데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와 같은 글루는, 우리를 착 달라붙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 처음의 나로호 우주 로켓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학했을 때는, 내일 당장 쇼팽이 될 것이다 하겠지만, 한 학기 동안, 내내, 단근질 되는, 잘 모르는, 철학 용어, 대장간, 스미쓰, 그렇게 머리가 늘 맞아서, 스스로도 잘못된 선택을, 김건모, 잘못된 만남을 해서, 여름 방학을 지내고, 일 학년의 하반기에 접할 무렵, 그냥 평범해진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은 현상은 대체, 무엇이라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비평이 없는, 혹은 비평의 현상에서, 간파할 수가 있다. 너무 쉬운 작품들을 데리고 놀다가, 혼이 나가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작품이 쉬운, 그런 동학농민전쟁을, 너무 일본군처럼 안이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가 다시 국적은 한국이 되는, 그런 저지능의 초전도체를 입각하게 되는 것이다. 책들을 일부러 어려운 것들을, 주로 외국어로 된 것들을 읽으면 되지 않느냐 할 것이지만, 그것은 진리로 향하는 버스의 마지막 티켓 같은 것이다. 대게는, 중간에 내려, 섬진강 휴게소에서, 육개장 같은 것을 먹는 이가 된다. 자기가 말도 없이 군대를 가니, 휴가 나와서 보니까, 집안 사람들도 말도 없이 이사를 가고, 전화 번호도 바뀌어 있고, 죽을 듯이 수소문해서, 전화를 거니까, 브레히트의 낯설기 하기에 의해서, 황산벌 전투에서 목이 잘리고 마는 것이다. 그것이 서울대 우울이라는 현상의 전모이다.

 

전모씨.

 

앙 전모씨.

 

일부로 어려운 책을 읽는다는 고사성어는, 케이 나인 자주포는, 한국이 최고이지만, 그것은 다만 눈물겨울 뿐이다. 김겨울. 혹은 한겨울. 그리고 자기 혼자서 그런 계책을 쓰면, 서울대 탈락이다. 거의 모든 대학에서 탈락이다. 미대나 음대는 갈 수 있다. 그래서 동시성의 원칙에 따라, 집행유예가 형성된다. 선언된다. 독립.

 

그리고 그것은 자기가 안다. 그러나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 의식을 작동시킨다. 그리고 그것의 모습을 서울대 인문대처럼, 무의식적으로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의 서울대 나가르주나는, 이공계를 발달시킨다.

 

그렇다면, 실재는 그래도 있지 않겠는가? 실재는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실재라는 말에서부터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실재는 실제 하는 것이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처럼, 논둑 위에서, 갑자기 아이가, 내내 밭에서 놀다가, 집에서 공부해야 한다고, 솟구쳐 오르면, 그의 마음속에는 진정 서울대학교가 환하게 열려 있는 것이다. 논둑이나, 밭은, 실재이고, 그의 소망은 그의 마음속에서 이미 완벽하게 실제 하는 것이다.

 

한국의 문학과 영화는 그렇게 양분되어 있었다.

 

하나는 문학이었다. 그것은 빈곤의 성찬. 관념의 부재. 지금과 같은 미래적인 밀실 살인적인 지배를 이겨낼 수 없는, 빈곤의 성찬. 관념의 부재.

 

다른 하나는 영화이다.

 

액션은 있는 것이다. 앞도 없고, 뒤도 없는. 그것의 중국 고대 괴물 같은 혼돈은. 지금도 살아있는 것이다. 이제도 살아있는 것이다.

 

그래도 실제하는 것이, 다만 마음속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개인적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는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한민국의 유일한 철학시. 공존의 이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여자는, 창문에 낀 여자라는 문구조차, 한국에서는 거의 대종상급으로, 숱한 여배우들과 나란하고 있다.

 

대학 이년 동안 공부를 열심히 해서, 군대에서 더더욱 그것을 자기화하면서 지낸다면, 복학해서 지내는 동안, 벌써 교수들 눈에 들어오고, 대학원 그리고, 강사의 길이 열리지 않겠는가? 우리가 그것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은, 평범한 인간들의 삶도 삶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리고 그것들 모두가, 빛나는 바다의, 광주인 셈이다.

 

대게의 학생은, 대상의 높음과 깊음을 두고,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여자들이 똑똑한 남자를 두고, 밤낮없이 함께 산다면, 그것을 형식적으로 의식한다면, 남자의 똑똑함이 반드시 여자의 것이 되게 되어 있다. 하물며 모든 세상의 광주는 똑같이 그러한 것이다. 길이 깨끗하면, 마음이 깨끗해지고, 교정이 아름답고 깊이 있으면, 아이들은 똑같이 아름답고 깊이 있어지는 것이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아름다운, 깊이 있는 책을 읽으면, 아름답고, 그리고 깊이 있는 사람이 된다. 어린아이 때는, 그것의 환율이 거의 일대일이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 철학적으로 너무 얻어맞아서, 그리고 스미쓰, 스스로 잘못된 것을 선택해서, 생각이 얍삽해진다.

 

모든 서적은, 스스로 잘못된 관념을 선택하는 전시장 같은 것이다. 서울에는 종로서적이 있었고, 광주에는 삼복서적이 있었다. 그래서 아침에, 뇌가 박탈된 전경들이 쏟아져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 주위에는 똑똑한 이들이 없었다.

 

서울대에 입학하기도 힘들고.....

 

 

교회에 가면, 모든 사람들이 아이들의 훌륭한 모범이 되었다. 구약의 지혜서를 말하는 사람들은, 내게 환영과, 안타까움을 주었다. 내가 똑똑한 것도 있겠지만, 스마트폰, 그들이 실은, 카테고리의 전선을 잘 최선정 박선정, 선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로님들은 장로님다웠고, 실제의 설교 역량도 있었다. 권사님들도 그랬다. 권력적으로 보면, 그들 모두 나와 가까웠다. 그것이 신비로운 광주사태인 것이다. 그것의 전선이고, 최전선이며, 전선 위의 참새이고, 그리고 지금의 우리들의 혁혁한 가전제품의 세계인 것이다. 그것의 전선이 늘 선명하고 그래서, 그 기라성 같은 일본 제품들을 이겨낸 것일 수 있다. 늘 재밌게, 설교를 더욱 잘하는 분들이 계셨는데, 목소리가 전파사에서 나오는 아나운서들보다 뛰어나서, 나는 그와 같은 서울과 광주의, 광주사태를 벌써, 나중에도 만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성경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좋은 흙이기 때문이다. 항상 모든 학문은, 학교는, 대학교는, 유니버시티는, 흙으로 돌아간다. 내가 만일, 전라도의 아름다운 해안 풍경에다, 돌로 잘 지어진, 혹은 쓰리디 프린트로도 잘 지어진 교회 건물로 목회한다면, 구름처럼 몰려들지 않을 이들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이 다, 숱한 세상 영화들, 한국 영화들, 소설들, 그리고 드라마들, 그리고 잔잔하고 좋은, 곳곳의 한국어의 스피치들, 훌륭한 시간 연장들, 공부하는 필연적인 갇힘들, 고착들,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나의 아버지가, 내게 불쌍함만을 전해주고, 문학적인, 아무런 재산도 남기시지 않고 돌아가신 것도, 도리어 완벽한 컨테이너 넘버 같고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흙이며, 별돌 담을 지나다가 보니, 나는 벽돌도 아니고, 나무며 흙도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이 공대를 간다는 것은, 공대가 인간에게 가는 것은, 일종의 방정식과 같은 것이다.

 

교회에는 친구들도 많고, 별로 친하지 않은 일이 년 선배들도 많았다. 지금 보면, 유독 내 앞에서, 부르스 부라더스처럼 굴었던 것 같다.

 

서울대를 갈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일까? 내가 나쁜 것은, 그것을 가능성의 한 가지로 분명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것이 있는, 영화 감독과, 작가와, 시나리오 작가와, 그런 것이 하나도 없는 작가는, 분명 아무리 세상이 모두 판타지라지만, 씨더디퍼런스, 차이가 있는 것이다. 서울대를 갈 수 없다는 것을......

 

미시간 액션 잉글리시............

 

그것은 너무나 가혹한 것이다.

 

내 친구는 그것의 테이프를 구입하지 못했다. 메이플 스토리. 나는 대단히 비싼데도, 구입해서, 늘 듣지 않는 것으로 쟁여놓고 있었다. 함께 그와 같은 외판 공간에 간 것이 아니라, 도청 앞의 어떤 빌딩의 몇 층이었는데, 졸업생이던 그도 똑같이 그렇게 불려 갔던 것이다. 너무 말을 잘해서, 그것이 물건 파는 것임을 알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영어 회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옷만 찢어지지 않았을 뿐, 찢어지게 가난했는데도, 어머니에게 그것이 필요하다고 했고,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대학 내내, 틈틈이 들었었다. 하지만, 뭔가 진도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미국 대학생들이 공부할 만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있었다. 아니면,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어느 정도 자기 문법이 닦인 상태에서, 그것을 단단하게 하는 작업으로 보였다. 우리처럼, 공부를 내내 했다지만, 몇 마디조차 듣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닐 때는, 결국 외판원에게 당했다는 느낌으로 함몰될 수 있었다. 항상,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구석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시추에이션과 배경 음악이 남다른 데가 있었다. 그런 대학 어느 날, 방학 중에 친구들과 놀다가, 식당을 하는 선배의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큰길에서,

 

이전에도, 당연히 식당의 밥은 맛이 있는지 묻고 답하는 것이 있었는데, 친구가 말하기를, 맛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중고등학교 때는 공짜로 먹을 수 있는지, 그런 것이 항상 궁금한 법인데, 이제는 타지에서 공부를 한 나머지, 거기서도 좋은 식당들을 경험하고, 그랬기 때문에, 식당의 독재를, 어린 시절의 가혹한 통치를, 벗어난 상태이기도 했다. 친구들은 이전부터 밥을 먹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 말이 내게는 상처가 되었다. 나도, 공짜로, 밥 한 끼 먹을 수 있다는, 그런 것은, 거리에서, 매우 훌륭한 소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식당은 독립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것도, 일종의 프런트라인인 것이다.

 

배틀그라운드.

 

놀다가, 밥도 먹었다. 나는 소원을 이룬 것 같아서, 늦었지만, 사랑의 기쁨이, 크라이슬러, 한정 없이 배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집에, 딸들이 여럿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내가 공부하는 종이들을, 친구에게 즐거운 대화로써 넘겨주면서, 빌딩의 꼭대기에 있던 방에서, 누워 하늘을 보고 있었는데, 장롱 위에, 미시간 액션 잉글리시 테이프 박스가 있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너무나 영영한 사전 혼비하였다.

 

그리고 그 집 딸들이, 안 예쁜 것도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