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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안국사는 가장 실패한 나가르주나가 되는가?

by 마음대로다 2025. 11. 4.

 

안국사는 가장 실패한 나가르주나가 되는가?

 

 

 

 
 
 
 

 

 

어차피 실패한 것이라면, 그 집에 가는 오름길, 남의 차를 빌어 타는 신세 같은 것, 사람들에게 철통보안국, 그런 것이나 알리고 죽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덕유산은, 그렇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말한 것일 수 있다. 사람들은 불교의 정의도 시원치 않은데, 나가르주나는 더더욱 모를 일인 것처럼 보인다 할 것이다. 들린다 할 것이다. 그것은 맞는 말이다. 그것은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육박하고, 나가르주나적인 솔직함으로 인해서, 정보력으로 인해서, 유교는 불교와 결별하게 된다. 불교는. 단단한 것을 씹는다는 것은, 다만 기계나 정보, 혹은 동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돌들이 일어나 소리칠 것이다는 대목이 있는데, 에스겔인가? 호세아인가? 나가르주나는 그것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떠나겠는가? 나가르주나는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떠나지 않는다. 제아무리 이상한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누구에게는 홍초이나, 누구에게는 홍초가 아니기 때문이다. 땡초. 국문학은 나가르주나가 아니다. 국문학은 유학적 전통을 단단하게 갖고 있다. 하지만, 드디어, 현대 산업 사회를 지나면서, 나가르주나를 알게 되었다. 예수님도, 나가르주나를 알았고, 두 번이나 그것을 언급하셨다. 하나는 나사로. 다른 하나는 라가라. 예수님의 친구 안국사. 나사로. 그리고 라가라 하는 자들은, 실은 사탄의 자식들이라고 하셨다.

 

우리 안국사가, 만일 그렇게 아름다운 등고산이 없었다면, 나가르주나가 차라리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암하레츠가 되었을 것이다. 동학농민교 같은 이들이 최소한 되었을 것이다. 김민교. 정상훈. 그러나 그렇지 않고, 너무나 아름다운 교의학개론이 있었기 때문에, 도리어 나가르주나로 돌입, 파국, 혹은 파묘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가르주나는 우리에게, 그것의 돌병풍 주차장처럼, 하나의 타산지석은 반드시 된다.

 

과연 안국사, 가을날의 나가르주나는, 수많은 아펙 정상들처럼, 국가에 도움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말 자체가, 불교적 개론, 혹은 정심치지를 논구하는 것이 될 것이다. 불교는 어디 도움 되고 말고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일 뿐이다. 그들은 다만, 장래의 국가 정신의 학문적 발전을, 산중의 호랑이처럼, 호시탐탐 노리거나, 호색할 뿐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도, 경주에서 세계 정상의 안국사 모임을 갖는 것들을 두고, 어째서 쫓아내지 않았느냐 하셨다. 유홍준은 나가르주나 양심이 있어서, 흐르는 강물 같은 육체일지라도, 같은 나가르주나일지라도, 그나마 오줌을 눌 수 있어서, 그것을 가릴 줄 알아서, 그래서 역사박물관을 돈을 내게 하자고 하였던 것일 수 있다.

 

차라리 안국사가 아름다운 진입로가 없었다면, 세계적인 나가르주나가 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가르주나는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무한도전이나, 무진기행이나, 겨울연가가 있어야, 그들이 그것들을 모두 보고도, 다만 산꼭대기에 이르렀는데, 아무것도 없는,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가르주나는 사탄과 구분이 있는가? 불교는 그런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분별지 같은 것이, 못 먹어도 고를 만들기 때문이다. 싫다달지, 좋다달지, 그런 말을, 싯타르타,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금방, 육식을 하고, 주자를 배반한다. 그와 같은 빈도와 반복, 강도와 국가를 안다면, 도무지 한국사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안국사.

 

돼지 떼에게 가게 해달라고, 역사 박물관의 입장료 같은, 돈이 되게 해달라고, 예수님에게 말하던 귀신들처럼, 덕유산은 그와 같은 안국사를 안국가는 것일 수 있다.

 

그것은 원주비행 같고, 그것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같고 그렇다.....

 

 

 

 

 

 

앗세르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