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우리는 수학 문제를 풀 수가 없다. 그것은 무능력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조장혁. 이런 식의 주장은, 개인적으로, 내가 수학자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거절 당한 것을 두고 앙갚음을 하는 것일 수 있다. 어째서, 샛길인데, 나는 수학자가 되고 싶었는가? 그것은 영어로 리치가 아니라, 인치가 되고 싶었던 것. 미터가 아니라 인치. 사무라이 인법첩이라고 한다면, 지골로 행복한 술집에서 누군가 코피처럼 마시던 술을 내뱉겠지만, 그것은 영화를 말한다. 내가 언젠가 한자의 기원이라고 덧붙여 상상하기에는 너무 잔인하다고 했었다. 전쟁은 흔한 것이다. 우리 삶에 전쟁이 흔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가치면에서, 줄여서 과거가치, 전쟁으로는 거의 아무 것도 나올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무라이 인법첩에는 약간은, 전쟁 기술 지상주의가 있다. 그것은 일본의 병일 수 있다. 어려서 사무라이가 되고 싶었던 흑맥주. 스타우트. 그것이 있었는데, 나중에 아무런 마찰이 없는 때에 재생이 되는 것이다. 워. 워. 워. 고삘을 잡기가 쉬운 것이 아니다. 수학은. 숱한 문제는. 그것의 그래프 같은 말고삐는. 방정식은 질주하나, 미분은 춤을 추는 것. 방정식은 백반 같은 것. 미분은 예쁜 여자와 데이트를 하면서, 식당에서 서로의 가정 생활을 엿보는 것. 물론 거기에는 가정식 백반 지상주의가 있다. 옴니포턴스. 혹은 콘티넨탈리즘. 서양 철학을 대륙 철학, 영국 철학으로 구분하는 것은 정말이지 아무런 값어치가 없다. 하지만, 더 이상 볼 만화가 없으면, 집어 들어서, 음표가 맞는지, 잔잔한 음악과 대조해보는 것도 숱한 선배들이 했던 짓이다. 부끄럽지 않다는. 나는 수학을 잘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나는 수학책을 손에 들지 못한다. 어쩌면 서울대 정문이 신현균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수학책이라는 말로도 인터프리테이션이 되는 것은 지나친 말이 아닐 런지. 그것은 정말 산뜻하고, 날카로우며, 귀여운 흑염소 가족들이 집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염소똥을 누는 것 같은 답변이다. 나는 닭과 개를 키우지 않을 것이다. 염소와 토끼를 키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의 방정식이 간결해 보이기 때문이다. 수학문제는 점점 복잡해진다. 그것은 자신을 질적인 것인지, 혹은 양적인 것인지, 국가 경제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문제적 기교에 관한 것이지 솔직히 가슴을 열어보이지 않는다. 수학은 문제적 기교마저도 아름답다. 우리의 무능력이, 수학적 전경에 과연 이터널 오브젝트되어 있는지,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 물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우리는 무능력을 하찮게 보지만, 숱한 아이러니와 패러덕스는, 줄여서 패덕, 무능력의 시간적인 미학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것을 음식이나 약으로 섭취해서, 역사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 수 있다. 한 개인에게 다가온 결정적인 순간은, 내가 보았던 보성의 구름 하늘과 같다. 나는 거기서 김지수나, 효민을 보고자 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떠한 무한도전이 풀어내겠는가? 하나님의 신앙이 솔로몬의 성전 건축을 통과해서, 교회 헌금이 되는 작은 봉투가 되는 것을 어느 누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수학에서 그것을 수학적 과장의 원리라고 부른다. 답변의 정확성과, 서둘러 다른 문제를 푸는 인간적 주체가 망실되고, 아주 정확한 답변만을, 그러니까 그것의 아주 작은 솜털 구멍 같은 것에 정확한 쌀눈 같은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사람들은 좋아하고 이성적인 것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이육사가 말했던 강철로된 무지개는 바로 그것을 가르킨다. 그것의 종합. 총합. 먼저 김지수가 나타나고, 나중에 효민을 만나는, 서로 싸우지 않는. 이성 관계. 아주 강철로 된 무지개는, 쌀눈적인 것까지 가서는, 우리 학생들의 올림피아드의 쾌거처럼, 다가오는 문제의 싱그럽고, 학교다우며, 처음 미팅 자리 같은 양명학적 설레임이 문제 끝까지 가는. 피곤은 저녁으로 덮이고, 하루는 카페인의 환한 커피잔처럼 낮은 대지를 사랑스럽게 비행하는. 우리가 월미도 같은 데에서 부딪혔던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프렌치 카페의 전세계적인 현상의 드러남이었을 것이다. 내가 김지수를 만나는데, 효민이 내 건너 자리에 앉는. 지금껏 쌓아올린 학문과, 단정한 와이셔츠의 자부심 넘치는 마치가 상실되는.
워너비인비져블...... ^^
고전은 고전주의자가 되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출판 만능으로 피랍되기도 원하지 않는다. 피랍되고, 늘 바뀐다 해도, 그것은 또한 등급이 낮은 클리쉐일 뿐이다. 고전은 고전으로부터의 자유를 요구한다. 이성계는 옛날에, 친구의 말을 빌려타다가 정히 안되겠다고 해서, 돈을 모아 말을 구입하고, 마을을 한바퀴 돌고 왔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이성계에게 마 성계야, 지금 너 말을 사온 게냐? 그렇다고 하는데, 자꾸 같은 질문만 되풀이 했다고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은 수학이고, 이제는 장엄하다고 해야할 寶城의 하늘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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