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는 클래식이라는 뉴욕 카페베네에서의 영채 강의......
서강대에서 내가 정식 영문대학원을 다녔다는 이야기는, 한학기나마, 지방대 학생에게는 순살코기 참치 같은 말로 들릴 것이고, 비문학과 학생들에게는 이 무슨 여래장짓인가 할 것이며, 영문학과를 나온 사람은 이미 유리된 상태에서, 그는 참 영문학과 왕이었다고 비오는 날 골고다에서 로마 장수 역할을 자청할 것이다. 그래도 별 것 없다. 학과에 서양 아무개 철학자의 전문가가 있었는데, 거동이 조금 불편해 보였다. 말도 잘 못하는 것 같았다. 오직 지면에서나, 그는 젊은 시절을 갖고 있었다고 회상한다. 회상 문학. 시험에서 장르를 묻는 문제에서. 없었나? 그래도 여배우가 다녀간 자리에서, 손수건이 남겨져 있으면 참 기념품이 되듯이, 그런 것으로는 이것저것 제법 많다 여겨진다. 이호선으로 한강을 건너는 장관, 언덕을 드라마에서처럼 오르는 모습, 다산 기념관 같은 이름, 격정적으로 맛이 없던 학생 식당, 명성만 있는 도서관, 제한된 공간에서 너무 많은 학생들....... 출결 상황을 기록하기 위해서, 수업 시작한 후 십분 가량? 끝날 때쯤 오분 가량, 그런 일을 해야 했다. 어째서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금도. 장학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조금씩 장식적인 네안데르탈인 같은 짓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학생은 싱그럽고, 그리고 후배 학생들의 명찰을 확인하는 것은 숱한 선도부원들이 했던 일이다. 백제에서 또한 전두환 같은 말을 하자면, 몇몇 학생과는 오브젝티브 코렐라티브 했다. 그러나 대학원 자체내에 관심 가는 처자가 있었고, 둘다 어학과였지만, 나는 내 티셔츠를 그녀의 가방에 넣어둔 듯 했다. 말만 잘하면, 서울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나를 알 듯이, 이제는, 생선 가시 알레르기가 있어서, 그와 같은 무지의 가능성과, 다른 것이 채워질 유사 학문적인 모나드에 대해서는 경기를 일으킨다. 지금으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 최고였다. 서강대 이호선 최고자. 내가 나아가면, 국회의사당이 뒤로 빠졌고, 앞에 있다가 다시 뒤로 빠졌다. 내가 앨범을 구입하려면, 앨범들이 다 바깥으로 나가서 언제 돌아올지 주인 아저씨에게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비밀인데, 어떤 여자와 약간의 부비부비도 있었다. 질량으로 놓고보면,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 헐리웃 영화 같았다. 정신은 계속해서 팔십점을 맞았다. 그래도 작가는 문학과 대학교를 나와야 한다는 강박. 글이 학교와 전혀 상관 없을 수 있다는 잠재적 대상을 내가 이미 경험하고 예상하고 있었는지, 문학의 아카데미즘을 온 몸으로 주장했는지 모른다. 물론 아카데미는 문학도 아니된다. 그것의 주름은 독자들이 입술을 다시면서 상상으로 넘겨보아야 한다.
오늘은 떠오르는 것이 이것이다. 전차가 있었대도, 나이 많은 여교수가 아주 보라색 옷으로 환하게 강의실로 가는 것을 영문학과 일층 로비에서 보았다. 나는 출석을 확인해야 했고, 시간적으로 뒤따라가는 제논의 날지 않는 화살과 같았다. 다섯 걸음을 따라가서, 보라색 옷이 아주 환하다고 그녀를 칭찬하였다. 그것은 분명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이다. 영화 배트맨 라이즈에서도 나오는 장면이다. 그리고 수업 내용은 평이했다. 문학 사전의 내용이 있다면, 그것의 더 좋은 내용을 학생들에게 강의할 의무가 교수에게는 있는 법이다. 그러나 그런 게 일절 없었다. 형편 없었고, 다시금 학생들이 데미지를 당하는 것에 나도 또한 뒤로 넘어갈 것 같았다. 그러다가 다다음 강의 시간엔가 이러는 것이었다. 공부를 진정으로 하지 않으려면 하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무슨 연극학회 회장이기도 했다. 기이하기도 했지만, 순차가 있어서 말이 가능하다면 영원히 하지 못할 말이기도 했다. 대학 강의실에 신성이 없는가? 문학강의는 오토바이 중에 최고 씨씨가 아닌가? 돈만 있으면, 혼다와 야마하 대리점으로 달려가서, 돈을 점원에게 뿌리고는 오토바이를 끌어안고 이것은 내 씨씨야 내 씨씨 하면서 반쯤 울먹이는 것이 아닌가? 그런 원숭이 삼매적인 드럼질...... 스타워즈의........ 학생들은, 멍청한, 조금 공부하는, 엘지에서 일하는 내 친구 같은, 선생의 갑자기 예고에 없던 회초리에 움짤했다. 할머니는 구원이 없다는, 데드 싸인이었던 것일까? 즉자대자적이기도 하다. 나중에 내가 끔찍하게 좋아했던 친구 누나가 무슨 학회 모임을 국회에서 가진다고 했다. 대학원에서 목소리가 듣고 싶었나? 전화를 했는데, 그런 참 사회주의적인 풍경을 엽서보내는 것이었다. 나의 몸과 가라다는 담이 없고 담양과 같다. 얼마나 사람들은 나의 메타쉐콰이아를 좋아하는지 모른다. 나는 그때 한국이었고, 국회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말로, 마음의 화환을 친구의 누나에게 걸어주었다. 그리고 모임이 시작하기 전에, 브랑포드 마살리스의 음반을 선물했다. 옛날에 했던 말인 것 같은데. 뉴욕 소재 미국 흑인 남자 예술가는 구원의 가능성이 많다는 말이었을까? 지금 해석기를 돌리면 그와 같다. 예술 이론 중에는 튜브론이 있다. 다른 무슨 론이 있었는지는, 멍청하기도 하고, 실재 아는 것이 없어서 말할 수가 없다. 우리 줄리오는 얼마나 사람들의 소설적인 허위의식을 지나가는가? 모세와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소설은 태생이 셰익스피어였지만, 톰존스도 리차드슨도 그렇지 못하다. 조나단 스위프트나, 그 격정적인, 사람들이 괴롭힌다고 세상에 동네방네 소리지르고 다니던, 그의 트래블스만이, 라퓨타나, 나중에는 후휘님에서처럼, 겨우 눈 오는 날 셰익스피어 대감의 문고리를 잡고 죽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우리는 기본적으로 호사가라는 의미에서, 이제는 갑자기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나, 조용필, 코스모폴리탄의 잡지처럼 되었지만, 예술에는 평균론도 있다. 이태리 사람 줄리오의 위상은, 실제 관계적인 의미에서는, 서강대 할머니 교수님처럼 뜬금 없는 자학 같다는 것이다. 브랑포드 마살리스는 사실 아무런, 리릭은 끄집어 올 수 있어도, 시니피에가 없다. 고민이 많은 남자가 생각 없는 여자와 지내면서 무한의 바닷가와 같은 위로를 얻는 것처럼. 훌리오는, 우리 훌리오는, 영화에서처럼, 송오브조이도 불렀다.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느낌표는 장사를 지내는 가지런한 모습이고, 물음표는 거리에서 이래저래 죽는 모습이다. 노래는 느낌표와 같고, 물음표는 누구에게나 있는 먼지와 같다. 느낌표는 대학교 프레쉬맨이고, 물음표는 지금 같은 호사다마한 세상에서의 직업을 이미 따로 염두에 두고 있는 문학생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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