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청포도 사탕'에 대한 기대와 따라 떠오르는 사기와 유사의 길항관계
삼국유사는 대단한 게 있다. 대단하다면 삼국사기부터 대단하지만, 중국 사람의 삼국유사가 그렇게 대단하기 때문에, 삼국지가 그 정도에 그쳐도 만족하였던 것 같다. 전쟁은 짧고, 예술은 하루 더 길다. 우리가 마지막 날에, 하루 더 긴 날을 택하겠는가? 아니면 짧은 전쟁을 택하겠는가? 하루 더 긴 날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본시 인간이 의롭기 때문이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가장 큰 나의 맥심은, 우리의 과거 동서양의 민주화 운동이 고작해야 삼국사기 생멸문을 열기 위한 전초전이었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우리는 거대한 집을 갖고 있었고, 거기서 저마다의 진리를 찾았다. 그 재미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영국. 얼마나 비틀즈네, 노동당들의 운동이네 유명한가? 영화인지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는 아이리쉬 독립 운동도 그러하다. 그러나 말할 줄 모르고, 술이나 퍼마시고, 축구나 구경하는 절대 다수의 인구들을 갖고 있다. 누가 귀족이려고 하겠는가?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한화갑이도 나오지 않고, 권노갑, 오동촌이도 나오지 않는다. 신대법관 이후로, 우리는 산청을 올라가는 삼번 국도의 즈비뉘 프라이스너의 베로니카 이중생활의 오에스티에 진입하는 것이다. 우리는 죽지 않는다. 조금씩 키가 낮아지고, 적합해져, 지사츠의 의식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대신에, 그 재미가 사라진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밀로스 포만 밀란 쿤데라와 합성한다. 밀란 쿤데라의 불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리고 그의 여러가지 작품집들은, 유럽 중에서도 프랑스, 그리고 조금씩 동쪽으로 친근한 다양성을 제공한다. 밀란 쿤데라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민주화 운동을 다뤘다. 그것의 시니피에. 관광공사에서 출동할 것 같은 정신적 풍족함. 그리고 그것을 두 영화가 따라왔는데, 하나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고, 다른 하나는 미션 임파서블이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우리가 잊을 수 없는 것은, 클래식에서의 주변성, 민주화 운동의 개별 순자적 유사성, 착하고 공부 잘하는 여학생에 대한 남녀 크게 다르지 않는 그리움, 하나는 아내에 대한, 하나는 점점 자기가 늦춰지는 것을 예감해서 그나마 누구 한 명이라도 선출하고 싶은 어머니의 심정. 이중생활은 문예사적으로 더 나아간다. 더블 컨택이라는 것은, 사실 오래된 정원이나 비밀 같은 것이다. 덕수궁과 창경궁이 그렇게까지 구분되는가? 우리가 송창식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서울에 산재한 궁궐의 그림과 명칭을 익히는데, 나는 서울 사람들도 덕수궁과 창경궁을 헷갈리고, 비원이 어디에 있는지, 시크릿 가든, 정히 헷갈릴 것에 돈 얼마를 건다. 많이 걸 수가 없다.^^ 둘은 엇비슷하다. 그것은 남자가 군대를 가고, 제대하면서 여자가 조금 따분한 기질을 자기가 먼저 가난하니까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똑같다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더블 컨택이다. 컨택트라는 것도 매우 정교하게 그것을 다룬다. 내가 고등학교 때에 동서양에 걸쳐 가장 똑똑한 여자인 것처럼 보였던 여자의 영화인데, 신비로운 우주선을 만들어서, 내면으로의 여행을 떠나는데, 신비로운 바닷가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자기는 그냥 떨어졌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사람들 눈에는 높은 곳에서 우주선이 호수로 그냥 떨어지는 모습 밖에 없었고, 자기는 어느 순간에는 멈춰 있었을 것으로, 그렇게 보였을 것으로 예상했다는 것이다. 공중에서 신비롭게 멈춰 있고, 그 사이에 조금 생각이던지 실제적인 만남이던지 이뤄진 것으로 말해지고 그려지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더블 컨택이 바로 그것을 가리킨다. 맛이 있던 식당도, 두번째에 가면 맛이 떨어진다. 우리에게 사람 없는 궁궐의 부요함은 늘 더블 컨택과 같았다. 선비는 죽었고, 교수는 재미가 없다. 관공서에서 세금을 거둬 컨택하는 재미를 가질 뿐, 계속해서 더블하고 있으면, 다만 내가 성실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재미도 떨어지고, 감동도 달아난다. 서울 사람들이 그 추운 겨울 날, 택시를 향해서 필사적으로 더블을 외치는 것도, 자기가 지금 공회전을 하고 있다는 표현주의이기도 하다. 더블. 더블. 아저씨 더블. 누군가는 추위에 떨어서, 떠떠블을 외친다. 옥션이 뭔가? 그리고 골동품이 뭐고 그림들이 다 뭔가? 다들, 우리 아름다운 고건축의 더블 컨택보다 못하지 않는가? 그것의 물감은 의심스럽다. 팝아트의 저렴함을 세계 시민권자로서 잘 모르는 그런 뻔함을 놓치고, 무슨 예술품의 예감이 생기겠는가?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서는 아직 나이가 어린데도 벌써 늦추어지고 있는 여자가, 그나마 선출이 가능할 것 같은 여자를 만난다. 자기와 똑같이 생긴. 그것의 프라하의 거리와 아름다운 전차.......
삼국사기에는 원화가 등장하지 않는다. 삼국유사에서 등장하고, 화랑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대단한 것이다. 매우 심각하고, 그래서 삼국사기에 비해서도 우리 유사가 결코 못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원화는 신라 무슨 왕 때에, 덕망 있는 여자를 원화로 놓고, 주변에 남자 낭도들의 모임을 만들었는데, 원화끼리 서로 싸우고, 시체가 강에서 발견 되는 등의 폐단이 커서, 화랑 제도로 변경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타임머신 같은 것이다. 중국 사람이 뜻을 잘못 이해했고, 자기 나름의 생각이 커서 그렇게 된 것이다. 너무 여자를 고집하는 경향은 여러가지 신비로운 고사에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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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으로 내려앉는 거대한 태양의 장관은 수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생각은 생강인가? 아니면 내리는 눈과 같은 것인가? 생강이면 생강차도 해먹을 수 있고, 여러가지 반찬을 하는데, 김치를 담그는데 요긴할 것이다. 뭐라도 요긴하면, 어머니와 누이 동생은 환하게 웃는다. 내 어렸을 때, 집에서 양계장을 할 때, 겨울에 결산을 하는데, 돈을 조금도 벌지 못하고, 본전만 찾았다 했는데, 그때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도, 누나도 깔깔깔 웃었다. 그것은 무엇일까? 고전주의 같은 것이었을까? 그러나 요긴하면, 그렇게나마 웃음을 우리는 찾을 수 있다. 생각이 내리는 눈이라면, 때에 따라서는, 시대를 만난 영웅의 것처럼, 지리산에 내리는 뜨겁고 두꺼운 태양과 같다면, 그 사람의 요긴함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존재는 결여를 필연적으로 침입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밀양의 영남루와 함께 생각하면, 우리는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을 수 없다.
삼국유사를 나는 중국의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맞다고 해도 정확하고 대단히 신비롭고, 틀리다고 하면 여름 한 날의 그냥 영남루 같은 것이다. 뭐라도 무조건적으로다, 광주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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