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반민중문화이야기

박근혜의 신자유주의 접는다는 뉴스를 접하고, 역사와 장년의식에 관하여

by 마음대로다 2012. 8. 17.

박근혜의 신자유주의 접는다는 뉴스를 접하고, 역사와 장년의식에 관하여

 

 

 

 

 

 

 

 

소년과 소녀는 기회이다. 지구 상에 어느 누구도, 장년들을 뚫고 소코마데다 하는 경우는 없었다. 오직 시니피에로서만, 공정한 일루수 심판도 맡아보셨던 예수님만 계셨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과거 역사가 냄새나는 장년들의 역사였는가? 한화갑이나 권노갑, 다른 신군부 장교의 이름들과 장세동, 차지철, 한국 전쟁사 전문가 미국의 아무개, 시간만 되면 양쪽의 이해와 타산을 위해 살아꿈틀대는 거대한 검은 오징어 같은 야스쿠니. 스트리트파이터의 스모선수가 격투기 선수들과 싸워서 못지 않게 승리하는 일본 판화가 그렇게도 장년들의 판타지를 그려낼 수가 없었다. 그러니 히어로 같은 미니시리즈가 나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개미친, 같은 소리를 해야지, 다만, 그와 같은 작가들의 객층이 있다는 것만 가상히 보았을 뿐이다. 사라지라고 하면, 비행기나 배도 없이, 그냥 아무런 기약도 아쉬움도 없이 일본의 헤야에서 점점 옅어져서 사라질 것 같은. 이명박이가 비슷한 양복 탄탄한, 추성훈과도 연계를 해서, 추신수와도 연계를 해서, 삼세계의 독재자 조선일보보다 나는 아사히신분이 좋다고 솔직하게 내각의 각료들에게 말하는 장르정치를 행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마저도 따라주질 못하는 것이다. 말을 못해도 그렇게 못할 수가 있는가? 그것은 자기도 자신의 스피치에 놀라는, 마치 라틴어 같은 째진 눈.

 

우리는 우리의 근접 과거가 궁금하다. 하지만, 넘치는 것은 젖가슴과 사츠진지켄 뿐이고, 좃망한 유령처럼 재벌들이 나쁘다는 백해무익한 플라시보 뿐이다. 방송사가 나쁘다는 말은 어째서 하지 않는 것인지?

 

지금은 외국어 공부할 시간이 넘쳐 있다. 영화는 자신 있는 사람들에게 이미 붕알까지 집어넣은 상태이다. 시간이 없어서 영어 공부를 못하고, 영문학을 못하던, 산뜻한 런던 포그가 아니라, 신화와 전설로만이 아닌 아마데우스를 블루레이로다가 그때보다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최루탄 가스와, 신동엽의 금강 정도로 들떠 있는 상태에서 마치 화성에서 지구로, 혹은 지구에서 화성으로 텔레포메이션 되는 듯한 감상과 태도로써 미국과 프랑스 영화들을 보았던 것이다. 그것에는 아무런 평론도, 밥말리도 없었다. 세계는 위아더월드였고, 전두환 시기에 유니섹스룩으로다가 교복 자유화가 생겼다. 그렇다고 보니까, 아주 선명한 작품성이 아닌 것들은, 마치 세계 시민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도 걸러지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왕조현이나 임청하를 여기서는 제하기로 한다. 유덕화를  보자. 그는 분명 상승하는 죽림칠현이었다. 청자켓을 입었고, 왕가위 감독의 열혈남아였다. 우리나라 비싼 등록금 사이로 개사카린처럼 배회하는 이름으로서의 장학우. 그것은 무엇일까? 접히는 것들을 발견하는 것이고, 디스커버리 혹은 인사이트, 그리고 액션 투더데쓰가 아닌가? 유덕화가 삥을 뜯고, 친구들과 본드를 마시며, 지나가는 여자들을 성희롱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런 영화를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얼마나 불가능한 것인가? 더더욱 특히 우리나라 같은 실정에서는. 그것은 마치, 빛나는 서양 정신의 똥구멍 같은 것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대개 파자마를 입고 다니고, 얼굴이 적당히 부어 있으며, 인생은 장년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처럼 기세가 등등하다.

 

나는 박근혜가 박정희의 딸이라는 것도 별로 관심이 없다. 그냥 오토바이 여행을 텐트로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비박 세력만을 보아도, 괜찮은 말주변인 것이다. 장년들은 옹관석실묘처럼, 자기 냄새나는 항아리를 들고 다니다가, 입을 맞추는 것의 지하수요 은하수이자 갤럭시이다. 세계 실정을 감안해서, 할리라도 타는 것은, 꿈에도 꿀 수 없다. 할리를 타는 것이 반드시 나은 것인가?

 

 

 

 

 

그런데 그렇지 않다. 우리 폴리탄 어린아이들은 할리라도 타는 장년을 위해서는 죽을 수도 있다. 그것은 사츠진지켄, 몇 번이고 살아봐서 아는데, 너무나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