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선의 파격의상과 시마다 겐지의 주자학과 양명학: 폴리탄의 누적 경험과 학문적 근거에 관하여
어려서 헤어진 왕양명이 있다. 여자는 촌년이었다. 그러나 새초롬하게, 유가의 저택과 정원 언저리에서, 공주님처럼 보였다. 그것은 본원적인 것이다. 둘은 잠깐 좋아했고, 여자는 많이 좋아했다. 그러나 좋아한다고 말을 하지 않았다. 소꿉놀이를 했을 뿐이다. 모래를 담아다가, 임오군란, 밥도 짓고, 풀을 뜯어다가 반찬도 만들었다. 송대의 어떤 유학자가, 높은 관직에도 있다가, 당시 왕이 자기는 요순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가 그 유학자로부터 아주 꾸중 아닌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그 말씀은 겸손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복을 앗아가는 것입니다 했다 한다. 평생 화도 내지 않다가. 그리고 서재 뒷 계단에 풀들이 무성하자, 베어버리라고 옆에서 하인에게 지시하자, 놔두라, 만물이 생기하는 것을 보고 싶다 했다 한다. 일본 유학이라 이런가? 처음에는 체용을 이야기하다가, 이 무슨, 갈수록 분주하다가, 그것으로 정당하다가, 조금씩 인격적인 에피소드가 간결해졌는데, 그 부분에 이르러 감동이 밀어닥쳤다. 그것은 이토준지의 호러 만화 달팽이와 같다. 그 유학자가, 장자의 권역 안에서, 사람인지 달팽인지 구분을 하지 못했고, 가장 가까운 사람의 겸손이 자기의 영혼적 왕자지에 상처를, 편안하게 기어오르던 계단이며 풀을 보다 단정히 하는 것에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다 얼마든지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지, 공부를 해서 기쁨을 누린다. 여자에게 아는 척을 하면, 여자는 남자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무조건 많은 말을 해도 그러하고, 말의 맥락이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선한 말의 높이에 열려질 때도 그러하다. 여자의 화장은, 달팽이와 같다. 습기는 사실, 책의 윤독함의 여성 군주에 닿아 있다. 펄벅의 왕룽 일가에 관한 언급은 사실 페이크이다. 펄벅이 중국 여자란 말이고, 외국 여자들이 중국을 그렇게만 여긴다는 제스츄어이기도 하다. 어째서 그러나 그대로 두었던 것일까? 그것은 동시성적으로, 싱크로니시티, 달팽이의 습기의 국가적 자부심, 자기 생애적인 편안한 국정원이 달성되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힘겨운 농촌 생활이며, 자연재해이고, 멀리 유랑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김완선이 가슴이 조금 파인 옷을 입었는데, 초심자는 흥분할 것이지만, 아주 기초적인 수영복적인 여러 해 경험만 해도, 교회 전도사마저도 묘하게 멋지고 잘 어울리네 미소를 짓게 만든다. 그것은 전도사가, 극단적인 달팽이에서, 음대 피아노과를 다니는 여자와 데이트를 할 때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물론, 단정한 외모에, 단정한 옷차림이지만, 남자가 사람이라면, 여자는 달팽이가 반드시 되게 되어 있다. 그것은 신현균과 양수경과 같다. 만일 내가, 다만 키가 작고 힘이 작다는 것을 제외하고, 시녀의 발음적 위태함에 사실의 일말이라도 갖는다면, 특수부대 출신의 양수경은 자기는 양수 존재겠다 하는 말이다. 이런저런 말의 힘과, 지시적 대상이 분명한 잡지를 넘기다가 보면, 내가 좋아하는 잡지 이름, 상해종말, 김완선의 모습이 매우매우 좋게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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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과 헤어진 여자는, 오랜 시간 동안 전전한다. 그녀는 이런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 간의 거리를 잘 측정을 못했다. 자기가 화장을 하고, 여러 인격들을, 이름들을 갖고 있다 보니까, 행여 왕양명도 그러할 것이라고 그냥 믿는 것이다. 여자는 전쟁에도 나갔다. 대단하지 않은가? 대규모 한 번. 소규모 다섯 번. 거기서도 왕양명과 딱딱한 거리, 모르는 척 하는 우주의 행성이나 우주선처럼 지냈다. 가끔 밥을 먹었고, 이거 더 먹어라 고기를 더했다. 물론 왕양명이 아니었다. 그는 양만춘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죽음 다음에, 남자와는 많이 달라서, 자기가 좋아했던 달팽이만 보았던 것이다. 군율은 엄격하고, 특히 자기가 여자라는 것, 그리고 전우애 이상의 필리아를 갖는 것은 자기 자신도 조미나 뮬란하다고 여겼다. 극적으로, 자기는 분대장이 되고, 남자는 다른 전선으로 갔다. 말단이지만 장교로 제대하고, 여자는 세상을 향해 무심한 척, 성인이 되는 유일한 도는 무욕이니까, 주렴곈가? 남자를 찾지는 않는다. 안한다 그런 짓은. 시장에 보면, 사람들은 사대부에 대한 열정으로 넘치고, 제한적이지만 책을 많이 읽고자 노력한다. 화폐 경제가 엄격하고, 도량형이 통일 되어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있겠는가? 시문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달팽이. 한 사람 뿐이 없지 않겠는가? 그것은 한자 달팽이 申과 같다 할 것이다. 태극은 달팽이이다. 궁궐에서 그녀를 채용하였고, 사실을 아는 사람은 공주의 호위무사로 삼았다. 여자는 처음으로, 자기 성에 어울리는 군복을 입었는데, 백제의 개로왕이 그것을 보고는 미쳐 버렸다는 고사가 있다. 궁궐에서의 음양은 반드시 오행의 도를 따라야 했기 때문에, 왕이라고 해서 아무나 엎어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은 국민들을 다스리는 치용의 도였다. 유치하고, 치욕스러운 것이었다. 사람들은 미어켓처럼, 장군이나 군주의 말을 따랐다. 그러나 여자들은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일어난 것처럼 벌써 떨었고,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고 해도, 어제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보따리를 쌌다. 남자는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면, 오늘은 술이나 마실까 하고,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고 하면, 일어난 뒤에 말하라고 한다. 전쟁도 없는 평화로운 시기에, 공주는 북을 찟고 그 안에 들어가 떨고 있었던 것이다. 공주는 호위 무사와 이런 연극을 많이 했다. 네가 나가라. 예? 네가 공주라고 나가라. 아는 사람은 알 것이고, 모르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하긴 모르는 일이다. 은근히 표독스럽고, 연등회니, 팔관회니, 왕비는 자기 남편과 대각국사 의천의 얼굴은 알아도, 공주의 얼굴은 가물가물 하였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래서 공주가 몽고군에게 끌려나가 무릎을 꿇어야 한다면, 그러니 공주는 네가 나가라 했던 것이다. 얼굴을 대충 가리고, 잔치에도 나갔다 왔다. 공주는 죽고 말았다. 그것의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궁녀와 왕비가 그것을 알았다. 왕비는 여자를 좋아했고, 같은 말을 했다. 네가 공주해야겠다. 여자는 공주하기로 했다. 그리고 결혼을 했는데, 그가 왕양명이었다. 왕양명은 공주가 무술을 잘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어느새 무술을 다 잊었느냐고 그를 책망하였다. 어떤?..... @@ 남자는 어떤 시적인 언급으로 알아듣고, 보다 性理學 연구에 매진했다고 한다......
암연이라는 노래가 너무 슬퍼서, 양수경의 명반 후애가 나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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