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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지금처럼 성리학적인 시가의 시기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by 마음대로다 2012. 5. 17.

지금처럼 성리학적인 시가의 시기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중국은 넓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웃 국가의 눈치를 정당한 차원에서는 보지 않을 수 없다 하면, 중국이 또한 같은 복장 같은 얼굴의 옛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지 않는가? 신흥 계급은, 귀찮아서, 돈도 있고, 외교적인 의지도 다분하다. 한국과도, 일본과도 잘 지내고 싶지만, 다만 어안이 벙벙한 것이 내가 영국교를 멸시하는 것처럼, 한국교가 상존하고 있다는 데에 대한 디스커버리 때문일 것이다. 유교는 외교의 화신이다. 살 때도 기쁨이고, 죽을 때도 기쁨이다. 성룡 영화 보면서 좋아 죽을라 하고, 내 소설과 시들을 읽으면서 그날 저녁 술집의 술을 모두 사기도 한다. 사람의 머리가 아래로 있지 않고, 어쩔 수 없이, 인내천, 위로 있다면 마땅한 한국교의 대기나 유토피아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잠이 들 때도 스며들고, 깨어 일어나서도 아침부터 계몽주의한다. 그것의 캐즘. 거기다 덧붙일 수 있는 이야기가 오늘은 이것이다. 중국은 아무런 말을 해도, 좋은 말이면, 무조건 유교, 韓兪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쁜 말들은 대부분 관계에 집착한다. 그리고 별로 관계도 없다. 성리학 서적이, 불꽃 같은 내용을 둘러싼 족쇄가 된다면, 내버린 은과 같이 된다면, 사람들은 다시금 한유로, 원 내용으로, 참 사람으로 나아가지 않겠는가? 그것은 말하기도 뭐한 것이다. 그들도 분명히 미어켓 같기 때문이다. 어려서는 사서삼경을 익혔고, 커서는 부지런히 제도에 충실하였다. 시마다 겐지의 책이 그와 같은 인의 불충분을 가로지르고 있다. 아무개는 인을 사랑하고, 아무개는 불인을 미워한다고 했지만, 결국 우리는 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부분에서는 내 목이 갈라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거짓말이다. 그때는 별로 생각이 없었다. 어째서 이런 시간차가 생기는 것일까? 내가 버스를 분명 놓쳤는데, 타고 있는 것 같은......

 

드 넓은 벌판에 한유하는 이야기 두 쪽이 이것이다. 하나는 중학교 때에 사회선생. 내 아름다운 도덕선생 다음으로 동신중학교 쵝오의 미인. 그리고 추일이라는 장학우의 영화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한국교를 할 수 없는 참 중국인의, 심정적으로만 시황제의 궁전에 있는 사람이라면 다만 그 이름을 거론하는 것에서부터 닭살이 치솟아 오를 것이며, 눈물은 음표가 되어 터져나올 것이다. 나는 내 목소리와 제스츄어를 잘 모른다. 예전에, 내가 내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내가 쓴 글을 전하면서 예를 다하는데, 박지윤, 엠넷 방송사 뒷골목에서, '저기요, 박지윤씨 팬인데, 내가 쓴 소설을 전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윤씨 대기실에 있다가, 차를 타러 돌아나가실 거에요. 건물 옆으로 가면 길이 있는데, 거기서 기다려보세요.' '감사합니다.' 갔더니, 아름다운 화성여인이 내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문학에 어떻게든 색을 쓰고 싶었다. 미색이라던지, 흑백이라던지, 불교적인 삼방색 같은 것은 피곤하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코울리지의 아트박스 팬시가 좋았고, 그것의 정의, 그것의 이메지네이션과의 길항관계, 색이 생기로 가득한 여자를 영화처럼 만나고 싶었다. 여자는 키가 컸으면 좋겠다 여겼다. 내가 극단적이나마 매미가 되어도. 백칠십삼이 그럴 수도 없지만, 성숙한 여자 키높이의 연대를 자랑하고 싶었다. 내 기준에 아이디얼이 다가오자, 나는 기뻤고, 내가 쓴 소설이라면서 건냈다. 지윤이는 하이톤으로 감사합니다 했다. 나는 너무 좋았고,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어째서일까? 그때부터 궁금했다. 그리고 내가 그와 같은 하이톤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을 처음 발견하였다. 사회선생은 정말 예뻤다. 나는 성인만화잡지를 갖고 있다가, 걸렸다. 그때의 정황을 정확하게 기억할 수가 없다. 돈은 백원도 없을 때였고, 친구에게 물어주려면 그런 돈을 어머니에게 타야만 했다. 나는 돌려달라고 하고 싶었다. 그리고 교무실에서 나보고 오라고 했다. 예쁜 사회선생이 갖고 있었고, 자기도 보고 싶은데 자기를 줄 수 없느냐고 했다. 나는 군주의 채널을 갖고 있었다. 육체는 세포로 층이 이뤄져 있고, 그와 같은 하이눈은 여러 소리들을 갖고 있다. 이 여자가 미쳤나? 한 음절, 이 여자가 나를 사랑하나? 한 음절, 자동차를 타고 벌써 미국 영화처럼 함께 질주하는 모습이 한 구석이었다. 그리고 전남대학교. 나는 내가 훗날 세상을 구원할 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대생과 야한 만화나 보다가는 파멸이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 영화 동막골에서 나오는 장면이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 전대생과 야한 만화나 보다가는 파멸인가...... 그러나 내 쪽에서의 반격도 가능하다. 그 시절에 내가, 아주 작게나마 유산자 계급의 후원을 받았다고 한다면, 나는 진심으로 그 사회선생을 사랑하였을 수도 있다. 여자도 그와 같은 객관적 상관물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 같고, 나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청치마를 입고 올 때는 난리가 아니었다. 마치 청나라의 국기는 그냥 청색이고, 우리들은 그런 청나라의 가난하지만 슬픔이 별로 없는 국민처럼 느껴졌다. 태양은 남자 같지만, 어감이, 석양은 왠지 여자 같다. 소설은 그래서, 짧은 회상이 아니면, 셰익스피어식의, 성리학적인 여성 관계가 되기가 어렵다. 추일은 무엇인가? 장학우는, 이 부분에서 하지 못하는, 아직 하지 못한 말을 타고 석양을 살리기 위해 질주를 한다. 지금 우리의 소설은 물텀벙 같고, 아귀의 현지 어부들이 부르는 이름, 성리학은 동양학자의 단순한 아내 이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