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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코리아(2012). 이름이 너무나 미래 기갑 전사 코알라 같은......

by 마음대로다 2012. 5. 13.

코리아(2012). 이름이 너무나 미래 기갑 전사 코알라 같은.......

 

 

 

 

 

 

 

 

내게 작은 과제가 있고, 과제만 무직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오랜 만에 사랑의 교회 오 목사의 설교도 듣고, 외국 사람이 오셨기에 처음 조금 보다가, 말고, 며칠 전 것으로, 유튜브로 또 오토바이를 보다가, 옆에 어느 학원 강사의 이차대전 강의 필름도 보았다. 그것은 내가, 여호와 하나님 주의 자동차를 타고 가는데, 문을 열어 놓고, 대지는 푸르르며, 조금 춥나? 영원한 테제, 이런 말은 정말 철학에 신체 어느 부위를 담갔다가 꺼낸 적이 있어야 실감이 될 터인데, 옆에서 다른 차가 와서는 먹을 것을, 하나는 족발을, 하나는 막걸리를 던져주고 가는 것이라 할 것이다. 무엇일까? 그것은. 우주론적 맹아 상태에서, 영토가 확장된 것인가? 내가 의도하지도 않았고, 나는 다만, 코리아, 하지원, 배두나, 백의의 나라에 대한 짧은 기억을 적고자 하였는데 말이다. 족발은 기가 막혔다. 동일시는 좋지 않다. 그와 같은 능력을 우리는 갖고 세상에 태어났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 조선 땅에 가장 가까운 것이, 우리가 족발을 좋아하고, 양념 통닭에 환장하면서도 일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의 진동은 기가 막히다. 오 목사, 과학자 오정현, 오정현 임상심리학자, 미스터 오, 오 이런 해피데이, 다시금 오정현 목사. 주사위는 사탄과 같다. 카이사르는 그래서, 사탄은 던지지 않는다는 말을 했던 것일 것이다. 그것은 도식적이며, 숫자의 각질과 같다. 규칙을 보여주지만, 공간은 불규칙하고, 그것의 운동적 가능성, 그것으로서 한 사람의 미래의 활로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불규칙이다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다가, 아내가 김중배에게 넘어간 것이 그나마 낫지, 주사위를 던지면서 그에 따라 오늘 술 값을 내야 하는 극단적인 전쟁상태는 결코 좋지 않은 것이다. 중국의 대지는 푸르고, 산천은 아름답다. 차를 세우고, 손을 씻은 뒤에 족발을 먹는다면, 지나가던 황염기씨와 함께 상추도 건내면서 먹는다면, 얼마나 인내천, 사람의 가장 깨끗하고 환하며 행복한 기분이겠는가? 지금까지 나는 목사, 한국 목사의 설교는, 외국 목사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한정이 있을 걸로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미스터 오, 제사장급에 육박하는 오정현 목사의 설교를 듣자니까, 마음이 불국사 화엄사 절절하고, 근본적으로 율동하며, 코리아 포스터에서처럼, 배두나도 했다가, 하지원도 했다가 한다. 그것은 성경의 핵심 도식, 주사위적인 사탄적 운동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고, 그것을 맨처음에 서언으로 장식하기까지 한다. 설교의 말미에 기도도 하고, 찬송도 두 개씩이나 부른다. 베토벤 환희의 송가 다음에 어떠한 설교도 없다고 한다면, 내가 평가자가 된다면, HONDA 그것의 클래식한 영문 타이포그라피, 유일한 연장이다 내가 증명서를 때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클래식이 모든 말의 직접적인 근거일 것 같으나, 도리어, 외로움에도 다시 그것의 하나와 같은 배신, 때로는 본질적인 배신이 될 수도 있음을 발견하고 있다. 하지만 클래식만큼 기가 막히게 영혼에 도움이 되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새아침에 클래식. 이것은 케이비에스, 국내 유일의 클래식 라디오 프로그램 이름이기도 하다. 그것의 하나이다. 그대 竹音의, 유학자의, 비가 온 듯, 갠 듯, 습기가 조금 춥나? 의지에 있다면, 새아침에는 클래식만큼 격물치지에 어울리는 것이 없다. 이것은 죽림칠현이 보증하는 말이다. 어째서인가? 우리의 피곤은 청각, 혹은 청각에다 작은 연상들, 어디에서 그것의 이완과 위로를 얻는 것일까? 그들은 서양 이름들을 갖고 있고, 악보는 도저히 우리가 볼 수가 없다. 보고 연주하는 것도 눈이 돌아가는 일이며, 가장 아름다운 상상이, 템포 알레그로 한 것들을 최대한 빨리 적어가지만 그래도 속도가 늦은 것을, 속도가 늦게 적는데, 연주를 나중에는 분명한 목소리와 원하는 속도만큼 연주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것도 황홀하고, 발라드, 손이 적는 속도와 더불어 음악이 연주되는 것도, 슬로시티 증도 케치프레이즈처럼 너울거리는 듯 정답고 아름답다 할 수 있다. 민중은 비사감과 러브레터 사이에서 공부하면서, 마침내 유학도 가고, 집에도 돌아오고, 직장도 얻어 작은 차를 타고 출장을 가게 된다. 우리가 그래도 되는 이유는, 그대 부모님들의, 선대 왕조의 공력과, 그들이 그렇지 못함 때문이다. 중국은 넓고, 한국은 복잡하고, 새벽에 차에서 일어나, 생수로 얼굴을 대충 씻고, 새아침의 클래식을 듣는 것처럼 유학자의 근본에 가까운 것이 없다. 순자에 기록되길, 소인은 유쾌한 아나운서의 가요 프로그램을 듣나, 군자는 클래식의 묘하게 어려우면서도 듣는 것이 내 팔다리에 특별한 노동을 요구하지 않는 것을 즐겨하나니 하는 대목이 있다.

 

 

 

영화 코리아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가요 프로그램도 아니다. 그렇다고 사물놀이도 아니다. 인문학은, 던져놓고간 막걸리를 또한 아침부터 마시면서 불콰하게 생각하면, 늘 이광수의 흙과 무정으로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어느새 염상섭이 아니라, 이광수인가....... 그 이전에는 조선도 있었고, 그 이전에는 고려도 있었지 않은가? 너무 특별한 노동이 필요치 않다고, 막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나를 반성한다.

 

 

 

 

차를 멈추고, 합성된 자리에서 새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