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반민중문화이야기

오전에는 전남대, 오후에는 조선대, 그것의 해안마을 같은 프랭키적 설명......

by 마음대로다 2012. 5. 11.

오전에는 전남대, 오후에는 조선대, 그것의 해안마을 같은 프랭키적 설명......

 

 

 

 

 

 

 

 

데이스타로 전남의 여러 해안을 돌다가, 특히, 해안, 조선대를 보게 되는 경우는 매우 좋아보인다. 남들처럼 하루 종일 공부하다가, 실수를 조금 하는데, 고쳐지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경우에 조선대를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랑한 것이, 비싼 사립대 등록금을 낼 수 있는 재력의 과시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건물은 아름답고, 하나하나, 그리고 내 여자 친구가 공대를 다녔었다. 나는 그녀가 대단하게 보였다. 왜냐하면, 공부를 잘하다가, 조금 경사지고, 조선대 공대에 들어간 것을 그 순간에는 나는 크게 낙방한 것이라기보다, 여자 한 사람의 외로운 피사체에서는 든든한 배경이 생기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자기 학과에 남자들이 많고, 여자는 몇 명 뿐이라서 공주 대우를 받는다고, 대놓고 내게 자랑을 했었다. 그것은 일종의 과장이고 효과인가? 버스를 따라붙으면서, 몇 번이고 아저씨를 부르고, 극적으로 버스의 옆을 세차게 때리는 경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올라타는 모습이 젊음을 과시하기 위한 것인가? 불교에서는 그런 반야지가 있다. 하지만, 여자아이가 내 앞에서 이런저런 든든한 모습을 내비치는 것은, 또다른 이름이 급경사지인 나로서는 위로가 되었었다. 전대를 다니는 사람이 내게 그와 같은 말을 했다면, 내가 들어간 학교의 커트라인이 외려 낮아서, 헤테로적인 위로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도 적당하였고, 화공학과라는 학과 자체도, 내 깊은 의식의 무장성이 되었다. 더 들어가면, 그들 모두가 나의 군인들이라고 생각했었을까? 나는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무의식은. 니르바나. 대체 무엇일까?

 

그러나, 서울에서, 그것의 아무리 내 앞에서의 전시행정적이라 할 지라도, 그것의 생태계는 사람을 늘 무시하는 문화적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결국은 진정성과 구체성, 사구체논쟁, 실존철학, 조선후기의 실학사상, 여우비 같은 남녀사랑, 도올 김용옥은 동학농민전쟁 같은 것으로, 상생하고, 말 그대로 구체적으로 상대방을 비판하고, 비판 받고, 하여야 하는 것이다. 조선대학교는 능력 면에서 따라오지 못했다. 그것이 있었다. 전남대학교는 에스유비 같았다. 우리 식의 철학이라는 의미의 주체 철학이 아니라, 우리 식의 주체 철학이 전남대학교에는 없다 해도, 그것의 농대, 그것의 법대, 사회대가 가장 그 시절에는 아름다웠고, 인문대는 이천년 이후에 처음 가보았고, 사범대학, 미대는 바닷가의 펜션 같았다. 백도가 있었고, 홍도가 템포가 좋았다. 순전히 개인적으로 그렇다. 나의 공부 밀도와, 시험지의 성적 반응이 거의 전남대학교의 것이었다. 연대나 서울대의 것이면, 다음에 또 얼마나 떨어질 것인가? 주식 전광판을 보고 벌써부터 회의하였다. 단단하게 전남대학교였고, 정문에서 후문까지 눈감고도 지날 수 있었다. 얼마나 플라타너스가 아름다웠는지. 학교가 아니라, 건물이 아니라, 연못을 지나 그 부분에서는 하늘과 나무만 있는 듯 했다. 조선대학교는 성적이 전남대학교보다 많이 못미쳤다. 그리고 부자가 아니면 갈 수가 없었다. 이해는 원의 모습과 비슷하다. 서울대학교가 원이 똥구멍 같다면, 때로는 없다고 과시하고 싶은 순결 의지. 전남대학교는 원이 인간적인 크기이다. 그것은 인문학적인, 학문적인 의미에서의 휴메니타스이다. 사람이 주체로서 외로움과 학문적인 논리의 맹자 상태에 들어간다면, 그와 같은 상상적인 시지각에서는, 언덕 너머에 비슷한 공부자가 있을 것이라는 투사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때의 형들은 또한, 사회성이, 운동성이 아주 높았다. 조선대학교로 들어가는 행렬도 아름답다. 산수오거리에서, 법원을 지나, 조대여고, 살레시오여고, 그리고 조선대 정문을 지나는 시내 가는 길은 옛날부터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는 버스 노선이었다. 마음이 어둡다가도, 시내에 영화를 보러가는 길에, 그 좁고 화려하고, 먹을 것 냄새, 책방, 학생들 환한 얼굴들, 남산엔타워의 삼백육십도의 창으로 지나다보면, 어느새 인간은 공부가 본질이고, 내가 나의 점수로만 낙망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에도 조대여고 건물이나, 살레시오 여고의 학생들의 미모가 왠지 모르게 전통이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남을 볼 수 없는, 지면적인 찰라에서는 조선대학교는 늘 미치지를 못했다. 만일 원이라는 거대 이해가 수용되고, 원이 있대도 공부만 할 것이라는 다짐이 내면적이지만, 서로서로 감시하는 한이 있어도, 있어서 저녁에도 불을 밝히는 도서관의 심장을 중심으로 학문을 과시한다면 모를까? 유혹은 혹부리 영감의 볼에 달린 혹처럼, 저마다 거대하지 않겠는가? 조선대가 시내와 가깝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의 유흥은 당구장과 술집으로 거짐 소진되기 때문에, 반드시 시내 당구장, 시내 술집,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은하수처럼...... 수십 년이 지나도록, 지금까지 나는 한번도 조선대학교를, 여자 친구의 출신 학교 이외의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은 것처럼.......

 

 

 

 

클래식은 무엇일까? 멱살잡이의 영화적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