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와이프(2015)가 갖는 인류 소망과 기쁨의 과학적 이념에 관하여........
나는 사실 생태계의 끝까지 가보지 못했다. 그곳은 힘들고, 비참하다. 그나마 내게 표가 많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래 그렇구나. 그래프. 그들은 다시 공부하지 못한다. 공부의 가다는 갖고 있다. 가닥. 가다. 그리고 공부를 잘했던 기억은 갖고 있다. 그러나 대게의 경우, 미술가가 된다. 음표를 읽지 못하고,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된다. 그러면 음표를 읽으면 돼지 않느냐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망막함은 생각보다 길고, 오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이처 롱로드 같은 것이다. 천사들이 바늘 끝에 몇 명이나 오를 수 있겠는가, 중세의 대표적인 논쟁이 그것을 가리키는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다시금 힘을 내는 방식이 무엇인가? 뭐든지 잘하고, 진지하게 하고, 진실로 하지 않을 수 없다. 진실로 공부하고, 진정으로 사랑하고, 온 몸과 마음으로 일을 하고, 생각하고, 영화의 이런저런 내용처럼, 잠시의 틈도 주지 않는 꽉찬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지만, 겨우, 나를 만날 수 있고, 주자의 습관적인 위기를 견딜 수 있다.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 이런 거짓말을 도와주는 숱한 만화들이 있었다. 웹툰. 어떤 사람이 매운탕이 먹고 싶어서 횟집에 갔다. 그랬더니, 사장이 하는 말이 잡아 오라고 하는 것이다. 그는 바닷가에 가서, 배를 타고, 고기를 잡고, 풍랑을 만나고, 이런저런 일을 더 하고, 아내도 얻고, 가족을 일구다가, 매운탕거리를 사서 횟집에 간다. 그랬더니 소주가 먹고 싶은 것이다. 그랬더니, 공장으로 가라고 하는 것이다. 거기서 일을 하고, 배달업도 하고, 승진도 하고...... 대체 어느 정도로 우리는 거짓말을 해야, 지금까지 긴가민가 했던 모든 진실된 말을 도리어 거짓말처럼 돌이킬 수 있겠는가? 우리의 지식은 짧고, 인식도 짧고, 믿음도 짧고, 행복도 짧고, 피투성이, 말주변도 짧으며, 입은 옷도 짧고, 그것은 실제의 길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그 진실이라는 것도 참으로 짧다. 우리는 보통 무아지경에서 행복을 느끼는데, 분별지도 사라지고, 아무래도 소라 혹성에 다녀오고 나면 원래의 감각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원래가 유사 소라의 전문가들이다. 그들마저도, 소라 혹성에 다녀오면, 가치관이 전도되는 것 같은 감각을 느낀다. 그러나 소라 혹성에 다녀오지 않으면, 또한 사람들은 유기질 비료를 얻지 못하고, 오르가즘, 그러니까 유기체 철학 같은 것을 할 수 없다. 철학의 칠십 퍼센트 이상이 사실은 유기체 철학이다. 형이상학은 뿌리와 같고, 존재론은 중심 줄기와 같다. 잎사귀는 그것의 숱한 논리학이고, 판단 명제들이다. 꽃은 그것의 찬란한 문학이다. 유기체 철학을 못하면, 우리는 철학을 할 수 없다. 천사가, 천사가 도대체 몇 명이나 바늘 끝에 오를 수 있겠는가? 인도의 경찰들 퍼레이드에, 몇 대의 오토바이에 사람들이 일단 타고, 거기에 인간 탑을 지어 올려, 연병장을 도는 장면이 있다. 그런 것을 일본 사람들이 하면, 일종의 유기적 마쯔리처럼, 맞다고 손뼉을 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비열한 말을 갖고 있어서, 그런 원숭이 짓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틀린 것인가? 틀린 게 아니며, 그와 같은 표상을 달성하는 문학가가 나온다면, 인도의 신성이요 거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연습하고, 준비하고 하는 일에, 흙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고초를 다했건만, 아버지와 삼촌의 얼굴을 닦아줄 만한 소년소녀들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귀신이 들려 있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영원히 아름다운 '미쓰 와이프'와 같은 백색의 거탑을 쌓지 못할 것이다.
얼마나 유기체는 솔직함을 원하는지 모른다. 그것의 그노시스가 완벽할 때에야만, 아름다운 거리와 공동체가 우리에게 노출되는 것이다.
차이나. 그러나 차이가 없다.
세계 각국, 삼세계 그나마 부호들의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예술 귀족들은 이제 뜬 눈으로 밤을 세운다. 그들은 우리들의 핵심과, 하트오브 다크니스,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들의 저변은, 세상의 비참과 같은 기호를 갖고 있다. 내가 목포를 돌아, 순천을 가고 있을 때였다. 순천에 가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로 가다보면, 보성 벌교 해서, 광주 주암호로 돌아들어가는 길이 나오기 때문이다. 익숙하다는 감각은 참으로 어색하기 짝이 없다. 처음에는 죽을 듯이 낯설고, 그 죽음만 몇 번으로 인해서 지워지면, 오직 그와 같은 상대성으로 익숙함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먼 길을 돌다가, 귀로길에 오르면, 벌써 거기서부터 이불을 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나는 나머지 도로들을 미루어 짐작하게 되었다. 2번 국도 끝까지, 고흥에서부터 올라오는 길이, 그렇게 장열하고, 어마어마한지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에메랄드는 반짝이고,
친구들은 다들 달리기를 잘했다........
보이지 않는 곳을 선취해서 보기도 했다. 순천만 갈대숲이 언덕 너머에 있었다.......
뭔가 하고 싶었는데, 그것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람의 삶은 캡슐 같다......
'클래식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토샵에 독특한 철학이 있을까? (0) | 2015.08.25 |
---|---|
인간에게는 보석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슬픔이다....... (0) | 2015.08.18 |
제망매가 (0) | 2015.07.31 |
클래식을 위하여....... (0) | 2015.07.28 |
암살(2015): 글쓰기는 컨디션이 좋아야 한다. 그런데, 그래도..... (0) | 2015.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