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정치가와 신현균의 코스모폴리스 철학의 길항관계
국민학교 사학년 때였다. 나는 엔니오 모리꼬네 자스민의 함정 브금의 분위기처럼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글씨를 매우 잘썼으며, 그것은 나의 단독적 우주에 하늘이 내려앉는 빙의이기도 했다. 그러나 교회 근처 중국집 딸이 내 짝궁이 되었는데, 나보다 글씨를 잘썼다. 나는 금세, 문예적 기예는 여자에게 양도하는 남자주의가 되었다. 이것을 열반이라고 한다. 니르바나. 그래서 더욱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나는 무엇인가? 마지막 직업이랄 수 있는 대서소에서도 밀리면,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그만큼 나의 시니피앙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서예를, 밤낮, 분주하게, 야광봉을 흔들면서, 이승환 콘서트에 가서 이승환보다 땀을 뻘뻘 흘리고 집에 와서도 책을 놓치지 않고, 본문각지, 매화의 큰 가지와 작은 가지의 철학을 어떻게 먹을 찌그러야 할 것인가? 그러다보니 날이 새는, 중화 영웅도 아니었으면서, 나는 나의 글씨에 만족하였고, 어린아이의 단단하지 못한 것까지 정확하게 인정하고 포용하고, 난세에는 훌륭한 학자를 일부로 귀향보내는 심경도 중층 없지 않아 결정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는 더 잘쓸 것이다. 세로획이 만화처럼 때로는, 풍단이나 초단처럼, 홍단도 마찬가지, 내 마음대로 직선으로 반듯하게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픔, 쓰라림, 강개함, 그렇게 자음과 모음을 모으면, 다른 아이들보다야 기가 막히게 잘쓴 것이지만, 절대 타자로서의 교과서 활자와, 남도는 예향의 고장, 떡 하니 여기저기 걸려 있는 서예에는, 한글로 된 높은 빌딩들에는 미치지 못했다. 황금빛 바람이 불어오고, 한계인가? 스스로 자책도 하였다. 그것은 영화적 기법이 아니라, 나의 고뇌는 센치 깊은 곳까지 인텔리겐챠 했었고, 그리스의 사람 이름들을 만났으며, 한자 전쟁 같은, 아편 전쟁 같은, 역발상, 그래도 하루하루 글씨를 정갈하게 쓰면서 정진하였다. 그런데, 내 짝궁이 나와 글쓰기 경연에서 승리하였고, 이런 말을 믿을런지, 플라톤 정치가에서의 체육 학교라는 말을 믿을런지, 학급 회의 시간에 서기는 그녀가 하는 일이 되었다. 그녀는 나보다 우주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동종에 대한, 그러니까 세임 에이도스에 대한 얼굴이 있었다. 동종이 아닐 때에는 터뷸런스인가? 동종이라고 해서 기쁠 일이 무엇인가? 나는 그녀가 조금씩 좋아졌고, 처음에는 미울 뿐이었다. 나의 글쓰기에 다른 형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극악한 표현을 하자면, 내 반대 편의 샴쌍동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약간 여자다웠고, 반에서 하는 일이 신혼집에서 하는 일과 같았다. 그것은 경험 이전의 것으로서, 나의 왕양명이 그만큼 그 시절에서부터 다부졌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나중에 옷도, 향기도, 좋게 하고 있는 것을 좋아했고, 원래, 영웅은 본색하니까, 다른 리기주의로 뛰어다니다가, 그때는 반장도 나를 좋아했고, 반장을 나는 더욱 좋아했었다. 여자들은 대개 국민학교 때에는 남자보다 달리기를 잘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내가 달리기를 못해도, 리와 기가 환상적인 사람들을 추종하고 따랐던 것 같다. 오학년 때였다. 우리는 학교에 지각하기도 했는데, 유난히 교문 탄압이 심할 때가 있었다. 선생들까지 출동해서, 전경들이 대학교 입구에서 학생들을 검문하는 것처럼, 분위기가 살벌했다. 때릴 것인가? 말 것인가? 어쩌면, 투비오아낫투비의 햄릿의 독백이 실체적으로, 개인적으로, 민주사회적으로 감추고 있는 내용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따로따로 쪼그려 앉았다. 그때, 그 볼품 없고, 반장보다 여학생 경쟁에서 밀쳐졌던 여자애가 아주 멋진 옷을 입고, 머리 모양도 좀더 붓글씨 모양을 하고는, 나를 보는 듯 마는 시각 차이, 시간 차이를 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감성적인 흐름에 대화적인 문법을 표기하지 않는 것을 질색했던 것 같다. 교과서는 달달 외우는 전두환인 것이고, 이런저런 생각들은 남녀 서로 좋아하는 마음들은 분명 그림자처럼 함께 다니는 이순자가 아닌가? 나는 친구에게, 자꾸 그 여학생이 잘 지내는 지를 물었고, 다들 모른다고 하다가, 어느 날은 서울로 전학갔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때 절구로 짖이겨지는 청춘 영화를 찍고 있었다.
서울. 씨발 서울이 어디냐....... 훼이드 아웃......
원효의 이장의라는 책도 보고, 너무 수면이라는 말이 그윽하여서, 불교 용어는 정말 대단하다 싶었다. 하마트면 수면할 뻔 하다가, 훗날을 기약하고, 플라톤의 정치가를 처음 보았다. 몇 사람 나오지 않은데, 손님이라는 대화자가 하는 말이 아름다웠다.
현대라는 것은 무엇일까? 고려대학교, 줄여서 고대 출신이 현대 자동차에 가장 많이 입사한다는 사실이 아닐까? 손님이 하는 말 중에 그 한 사람이란, 원효의 이장의라는 말의 숲을 살다가 수면하는 사람이 아닐까? 아닌 게 아니라, 플라톤은 그것을 우주라고 불렀다. 그것은 분명, 우리가 잘 아는 말로 코스모스일 것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나를 코스모폴리스라고 불렀다.
어제도 오토바이를 탔고, 오늘까지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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