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탈리콜(2012)과 우리에게 가까운 것의 미학에 접근하려는 단 하나의 카드
그렇다면 내가 북치고 장구치고, 단성생식하고, 아메바 같고 다 하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나는 의지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내 다리를 의지하고, 어머니의 친구의 사람들의 경제를 의지한다. 그런데, 어째서, 내게 접근하면 가치가 있고, 접근하지 못하면 독립할 수는 있다 해도 시스템에는 없는 것처럼 아쉬움을 나타내는가? 그것의 충격은 모짜르트의 음악을, 베토벤의 로망스를 그 깊은 밤실골에서 지낼 때에 들었던 카세트 테이프에 있다 하겠다.
나는 박정희와 같았다. 이것은 충격이다.
글을 쓰지 않아도 난.......
사람은 죽음에 임박했을 때에, 가장 좋았던 연장을 찾게 되어 있다. 죽기 전까지 대도시를 코스모폴리탄처럼 차려 입고, 서울의 노신사, 기생의 젓무덤에서나 생기의 양명상태를 차릴 수 있을 원죄가 자기에게도 드리워져 있지만, 몸에 한기가 닥치는 한이 있어도 고궁을 걷고, 적당히 말라식이 된 예술틱한 외국 영화를 보고, 영어의 한 센텐스에 깊이 박힌 전치사처럼 서울의 모퉁이 어느 구석에서 사라진다면 영예롭지 않은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누워만 있다면, 누워있대도 누워있다는 느낌은 아니겠지만, 어푸로우프리에이트한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죽기 전에 더 걷는 길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곳은 유달산의 계단에서 살짝 드러난다. 처음 계단에서도 완벽하지만, 뒤로 보이는 여객선. 보다 올라가 유무슨 정자에 이르도록 걷는 길에도 그러하다. 남산은 포위당하고, 북한산은 거기서부터 북한 같으며, 무등산은 화순에서부터 담양까지 한바퀴를 돌아 도시를 짓자면 도리어 디스토피아의 굴절로서의 레플렉션이 아니되는 것이다. 묘하게 압도적인 듯한 청사진만이 진을 치고 있다고나 할까? 옆으로 강청산이 있고, 누군가 강청산에 가보았느냐고 했었다, 단번에 섬진강을 만난다.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큰 도시가 광주에 생긴다고 하면, 얼마나 무안 국제 공항은 활개칠 것이고, 목포항은 보다 첨단이 되고, 광양과 여수는 집값이 상승하고, 부산까지의 길을 두고 환상적인 이번 국도의 젓줄이라고 부르겠는가? 그것의 만경강.......
서울의 국문과 교수는 도둑놈들 같고, 검찰들은 도둑년들 같다.
장기하 싸구려 막걸리 냄새는 진동을 하고, 종묘는 조선왕조 오백년 동안 자지 같다.
내가 우리나라 국가를 가곡 고향으로 하자고 했던 것을 재미삼아 따라하면서
자기 집 시스템으로 백번을 김구 듣는 동안, 한번도 질리지 않았다면
철학은 없으나 체력은 죽음에 이르렀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국문학은 가곡 고향으로 도가의 유토피아에 사과처럼 열렸고,
내가 여러 소설들로써 따먹고 함께 제사지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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