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무정에서 무정이 처음 등장하는 전후에서. 어색한 국문학적 백제와 미국 유학......
누군가의 글에서 스펙이라는 말을 어원 비슷한 것과 한국에서의 용례를 비교하면서, 전자로써 사용하는 사람은 한국에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읽었다. 스펙은 팩소주나 작은 배낭, 힙색과도 엇비슷하다. 그것은 천정부지 같은 소나무 야산을 오르는데, 바위 하나가 고인돌도 아니고 영험하게도 아니고, 순전, 위에서 떨어지면 다리가 조금 다칠 것 같은 높이로 드러나 있는 것과 비슷하다. 나뭇가지가 밟히면, 스펙, 소리가 난다. 손으로 끊어도, 스펙, 소리가 난다. 우리의 스펙은, 조개종을 만나면 두드러진다. 조개종을 어떻게 만나는가? 만날 수 밖에 없다. 사람이, 플라톤의 대화록은 한 편 읽지 않을 수 있어도 조개종을 만나며, 성경을 한 번 완독하지 않아도 조개종은 달빛처럼 따라오고, 사람들이 아무리 계급과 지식 계층과 문화가 다를 지라도 나이가 차면서는 조개종으로 평등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거기서 우리는 비문명주의나 무신론주의 반이성주의의 여러 화석들을 발견하게 된다. 보다 정치한 용어들이 있는데, 처음 대학에서, 도서관에서, 여러 철학사전 속에서 그런 단어들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어디 형언할 길이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신크로시티, 동시동작적이었다. 그렇게 달리기 잘하던 소녀들이, 조개종을 만나고는, 머리에 물이 차고, 슬픔과 반복과 반지하적인 세계를 입는 것이 어떠한 남학생이라고 좋아하겠는가? 남자들도 순수형상적으로는 조개종을 만나지만, 바지락처럼 짧고 고소하고, 여자들의 이성계인 것 같다. 여자들은 김병만의 정글 탐험에서 멋진 태평양 섬에 가본 것처럼, 대왕조개 같다.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 맛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신성이다. 슬픔은 지연되고, 이월되며, 유산된다. 그레이트 익스펙테이션. 그 소설은 나름 대왕조개 같다. 그래서 그것의 맛이란, 대왕조개에서 직접적으로 살을 얻을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바닷가라는 것, 사람들과의 전우애가 있다는 것, 여러 등장인물이 남성미도 있고 여성미도 있었다는 것. 사람들이 조개종이 아니라, 서울시내의 사찰을 지나다가, 조계종으로도 개종하고 싶은 마음이 살포시 들었다는 것에서 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지식일까?
이광수는 극도의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있다. 등장인물을 죽이고는, 자중지란을 겪는 것이다. 작가가 등장인물을 죽이는 것은 경찰권 바깥이다. 그렇다고, 사람이 어찌 조개 같을 수 있는가?
이광수의 에이도스는 약간 불결하고, 국문학의 평범한 바닷가스러운 데가 있다.
영문학이 낫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문학이란 진정으로 무엇인가? 스펙인가? 스킬인가?
이광수는 알고 있는 것이 있고, 그렇지만
에이도스가 삶의 단 한 번의 기회처럼 불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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