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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기독교는 이슬람보다 못하는: 나의 ps파트너(2012)와 영혼의 실체

by 마음대로다 2012. 12. 16.

기독교는 이슬람보다 못하는: 나의 ps파트너(2012)와 영혼의 실체

 

 

 

 

 

 

 

 

 

우리는 숱한 이슬람 속에서 산다. 그러나 말뿐인 기독교는 무슨 산 물질과 산다. 영어 바바리안이나 바바라 같은, 오 산다. 오 산다. 오 산다. 씬디. 트리스트람 개씬디. 다만 문명 속에서나 철저한 튜브로서 관리가 되는 액체와 침출수, 김지수로 사는 것이 아니다. 문명이 없어도, 피를 흘리고 있으면 지혈하고, 하혈하고 있으면 여자 친구들을 부르게 하고, 좀 쉬게 하고 한다. 문명이 가공할 만 하여도, 피곤과 타액에 대한 그리움은 이야기의 침투를 거절하고, 행여 다른 사람들에 대한 증오로 번질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조금도 고려할 수가 없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산다. 철학도 못하는 것들이 껀뜻하면, 철학적인 말을 내뱉는 것은, 개니싼 아리가또 고자이마쓰들이기 때문이다. 오해가 가능하다 싶으면, 오해를 얼른 벗겨주고, 하나님만 보신다 해도, 지켜주고 있고, 사람이 다가오면 물러나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들이 문명의 특별난 타액 파이프나 튜브들이나 된다 여기는 것들은, 오해를 일부러 양산하고, 확대재생산하고, 사람은 오해속에서 원래 산다는 어차피 호락논쟁이나 펼치려고 한다. 호락한다고 하자. 어려서부터 이슬이 좋고, 피아노가 좋고, 관념을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에 높은 선반에 놓기 좋아하는 사람은, 낙이 결코 낙일 수 없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낙이 아니며, 낙을 기정사실화 하는 사람 치고 좋은 사람 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리일분수를 자기 생의 분수로 여기는 사람은, 그 코딱지 물번짐 같은 왠지 각성과 같은 대도무문들을 가슴에도 붙이고, 문설주에도, 문지방에도 붙이고, 이마에도 붙이고 다닌다.

 

악기는 저만치 있다. 그것은 라벨의 파반느와 같다. 그 옛날에 체육 학교가 있었다는 것보다 더욱, 악기는 꽹가리와 징 장고와 북 저 만치에 있다. 가사문학관 앞에 장고가 있는 것도, 그나마 가죽을 당기고 있고, 양쪽에 멀리 떨어져 있는 모습이, 모습만은 거문고나 가야금 같고, 실을 잣는 배틀 같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예쁜 북이 가운데 나무를 치면서 탁 소리를 내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가난 중에 그 지혜로움을 안다. 둥둥 치다가, 탁 치는. 둘은 헤테로이고, 변화이자, 변성이고, 사람의 귀는 이것저것 다른 소리를 낼 때, 리일분수하는 것은 분수하고, 침을 삼키면서 마음 먹은 것은 다른 것이다 면서 좀더 말라식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그래서 같은 소리만 계속해서 둥둥둥 내는 것보다는, 신휘, 가운데 나무 틀을 탁 소리내면서 끊는 것을 우리의 무슨 대단한 깨달음의 유사성으로 놓는 것이다. 피리는 양떼를 몰 수 있다. 우리가 지하 하수도를 걷는 악몽을 누구나 꾸는 것처럼, 한번 걸어본 적이 없어도, 마치 우리의 공통된 무의식적 형상이 있는 것처럼, 구스타프 융의 콜렉티브 언컨셔스니스, 슈퍼맨이 되어서 하늘 높이 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멀쩡하게 걷는 거리를 천천히 나는 것도 꿈꾸는 것이다. 꿈과 악몽은 종이 한장 이슬람의 카펫 차이만 같다. 그래서 바이얼린과 결과적으로 피아노가 된 서양 고전 음악의 떨어지지 않는 이슬람스들은, 아무래도 인간의 역사가 아닌 것이다. 고등 교육, 공교육이 먼저인가? 아니면 악기가 먼저인가? 영화 속의 인물 이름인 현승도 대답하지 못한다. 영화의 아름다운 코스모폴리탄적 상황 속에서, 악기가 먼저라는 말도 과감하게 하는 듯 하다. 우리들의 단어는 복잡한 정보들을 처리하고, 사람들의 위계 질서를 확립한다. 돈주앙주의의 코딱지만한 철학인 돈우선주의는 참으로 코딱지만한 것들인 것이다. 우리는 지식의 탑도 없고, 노동과 과학의 탑도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높은 걸음으로 협심증적 상황을 걸어나가게 하는 악기와 훌륭한 연주도 없다. 따로 자기만을 후원해주는 독재자가 없는데, 우리는 무엇을 믿고 이렇게 자랑스러운 것일까? 괴물들이 내 앞에서 한국말을 하는 것은 순전히 자기들의 노력 때문일까? 집에 도착했을 때, 가족들이 이슬람이 증발한 코딱지 취급이나 한다면 얼마나 거시기하겠는가? 그리고 철학자가 경찰관이 되거나, 경찰관이 철학자가 되지 않으면, 우리는 코딱지들이 순전히 자기 노력으로 경찰차를 타고는, 리인이 마침내 화를 내는 현장을 먼저 배회하는 것이나 보게 될 뿐이다. 

 

 

 

 

 

 

악기는 대게, 협박하기 좋아하는 인간이

이슬람에 도달하지 못한 시간 속에서의 신체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