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도니아의 두 얼굴
마케도니아의 두 얼굴. 이름을 이렇게 정하고 나니까, 다시금 나는, 내게 포토샾도 없던 시절의 대평론가로서의 스팅어가 생각이 난다. 내 자신의. 어떤. 단순 알파와 오메가가 없던. 로봇 시절. 그것은 모국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닌. 하나님의 지능. 하나님의 내면적인 세상. 물론, 사람들도 물에 잠길 때에는 그와 같은 것을 볼 수도 있고, 써낼 수도 있다. 사람들은 퍼스널컴퓨터를 게임용이라고 구입한다. 죽기 전에, 하나님의 지능의 백제에 빠질까, 확률도 없으면서도 두렵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의 이야기는 파장이 컸다. 그리고 사진과 함께 블로그 작업을 했으면 했지, 동영상, 한창 유행이었고, 지금은 유튭이 이어받고 있는, 그만큼 백제 자체도 가능성이 있었으면서도, 스스로 광주에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고, 나처럼 끝없는 단속을 당하고, 파멸에 이를까,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그것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사람의 중간 의식적인 흐름과, 그것을 언급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공항과, 최신식의 항공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프랑스의 에어버스처럼, 간혹 비행기의 이층에도 다녀오는 쾌적함이 필요하다. 서울대학교나, 충주대학교, 원광대학교, 그런 식의 차이가 있어서, 서울대학교에 확률이 있고, 서강대학교나 경상대학교는 그런 빛나거나 혹은 미치거나 백제를 그려내는 사람들이 없을 것 같은데, 정말이지 그것은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하는 것이다. 많이 배우면, 배운 티를 낸다. 그것은 피가 많으면, 그것이 상처가 났을 때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누구는 피 부자고, 누구는 피가 가난하고, 그런 것은 없다. 솔로몬이 있고, 필론이 있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한 것과 비슷한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나, 프랑스, 이런저런 숫자 대학교에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고 할 수도 있다. 원래는 그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뜻 밖이고, 정말이지 엘에이 콘피덴셜 중에 콘피덴셜이다. 거의 탑건 수준이다. 많이 배우면, 배운 티를 내야 하는데, 유치원생이 어느 조선소에 견학을 다녀와서, 아버지에게 그날 있었던 것을 아는 척을 할려고 하면, 조금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피라미드가 단층이었다가, 복층으로, 그리고 끝없이 올라갔다고 주장하는 고고학자가 있다. 복층만 되어도, 귀하디 귀한 문학과의 조교인 것이다. 나는 그랬다. 장공관에서, 문학과 조교실에 놀러가서, 목소리는 영문과 조교가 좋고, 몸매는 독문과 조교가 좋은. 문학은 신학의 시녀다는 중세의 유품을 내가, 어느 채플실, 강사로 온 사람을 안내하다가, 선물로도 어느 모퉁이에서 받은 것처럼, 그렇게 행세했던 것이다. 그린 슬리브즈 정도가 아니라, 계속해서 나팔바지를 선물받아서, 내가 아는 여학생들에게 나눠주는 형세였던 것이다. 나와 같은 사람이, 나와 같은 그림자가, 혼다 쉐도우가, 블랙위도우가, 미국이나 유럽 불가리아 같은 데에도 있는지, 정말이지 궁금할 수 있는 것이다. 백제는 거기서 탄생한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살고,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끝없이 좋은 사람에게 왕을 양위하며 사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는, 백제의 모든 군사를 끌고 가서, 짓밟고, 짓밟고, 유돈오운미, 더스티스프링필드, 항복을 받는 것이다. 사람들은 백제가 돈이 없는 이상, 그것은 전쟁이 아니고, 그들이 승리한 것도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백제를 보자. 그것이 없는 좀비들이 세상에 있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이긴 것이라고 하진 않지만, 진 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이긴 것이 아닌 것은, 자기들도 내게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조공을 바치거나, 한 것이 아닌 것이라는 뜻이요, 진 것도 아니라는 것은 자기들 만년필 검은 물방울이 거기서부터 타인의 것이라는 초절정의 좀비 혹은 로봇 혹은 그림자놀이를 말할 수가 없어서인 것이다.
내가 어떤 여자를 알아서, 그리스에 놀러갈 수 있는 것이다. 영어를 잘하면 잘할수록, 유창함은 모르지만, 메시지와 템포, 그리고 늘 새로운 아는 단어의 면에서는 한국어의 꽃잎들을 아낌 없이 쏟아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 여자를 알 수도 있고, 한국 여자나 일본 여자를 알 수도 있을 것이다. 여자는 내지에서나 외지에서, 청자 중에서도 청자이다. 남자들이 일만 할 때는, 순자는 여자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유주의 학자의 대명사 같은 이들이다.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조선에서 온 사람이라고 하는 케이스.
마케도니아는 그래서 뜻이 두 개만 있는 것도 아니고, 세 개로 네 개로 변하기도 한다. 어째서 마계만 도는 것일까? 한국 사람들은 마쎄도니아. 삼백 이하.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하는 말일까? 아니면, 그들의 한국어를 이용한 독백일까?
백제는 힘이 없다. 블랙 오르페우스만 하더라도, 백제 중에 백제, 참백제이기는 하나, 너무 형식적 수준만 높아, 사람들이 게으르게 되는 여지만을 제공한 것일 수 있는 것이다. 노바디노우즈. 그것은 정말이지, 누구의 코도 아닌. 다만 불평의 상비약 같은....
헐리우드는 끊임없이 마케를 돈다. 그것은 일본도, 중국도,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보는 순간에는, 공부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누군가의 말처럼, 혼후 순결 서약을 한 사람인 경우에는, 오히려, 조개 껍질, 그 안으로부터의, 비너스의 탄생,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의 그림처럼 해석되고, 비쳐지기도 한다. 그것은 정말이지 또 하나의 강력한 의미를 갖고 있다. 성경. 보다 완전하게는, 신약성경이 육십육권으로 문을 닫은 이후에 이름 정해진 것일까?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사람이 주지육림을 돌지 않으면, 다만 맨정신의 마케도니아를 도는 것이 최고가 아니겠는가, 해석의 트랙에서 일등을 얻고자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일등하고, 좋아하고, 카메라 찍고, 그리고는 다른 사람이 일등하고, 하지만 그렇게 넘어가면 되는 것이다. 분명 그와 같은 마케도니아는 아름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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