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와 폴리탄들에게서 비치는, 만파식적 같은 에스티세븐
삼 세계 논리라는 것이 있다. 하나는 한국에서 불철주야 야학도 하고, 롤러로 밀어서 전단도 만들고, 찰라 같은, 아름다운 독립투쟁도 하고, 사람들에게, 그리고 자기에게 늘 참매개로서의 선자가 되었던 사람들. 그러나 그들에게 산업사회가 밀어닥치고, 에리히프롬이 좋아한 말, 마치 그 이전에는 사람들이 그가 또 좋아했던 소외가 덜 되었던 것처럼, 한 사람을 괴롭히는 왕따의 저인망 어선이 도시를 돌아다닐 때, 자기는 다시 태어나면 인문학을 버릴 것이다 한 것이다. 산업사회는 건물도 짓고, 좋고, 돈도 많이 벌고, 옷도 많이 사고, 먹을 것도 많이 먹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비판철학을 가졌다가, 산업사회를 선망했다가, 인문학적이었다가, 그것으로 늘 사람들이 괴롭히니까 어쩔 수 없이 자기의 달팽이 같은 것을 요리해먹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와 같은 처지는, 달팽이 상호 관계적 규약에 따라 엔니오 모리꼬네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데보라쓰 띰. 우리의 상상은 우리의 실제. 그대로 이뤄졌다. 인문학을 저주한 만큼, 근처에도 가지 않으며, 영문학을 대충 하고는 취직을 한다. 피곤하기는 매한가지. 돈도 많이 벌고, 비까번쩍한 곳에 많이 가지만, 차갑게 공기가 흐르는 곳에서 불철주야 공부를 했던 육십년대 산골만 같지 않은 것이다. 에어컨은, 점점 파리해진다. 그리고 처음으로 공부와 관련이 없는 사물들의 순수한 행렬을 경험한다. 사람들은 거기서 살다가, 거기서 죽지만, 인문학생은 공부와, 팬시와 관련이 없는 물건은 하나도 없다시피 한다. 뭘 해도 공부, 안 해도 공부와 관련된, 책 사기, 책 사면서 연애하기, 연애하면서 선물로 책 사주기, 책 사면서 뽀뽀하기, 강원도의 꿈에서 강철 같은 연기를 펼쳐보였던 여자 주인공처럼, 사람들의 음부는 춘천도 가고 강릉도 가는 기차 안에서 지연되고, 디스플레이스먼트, 그리고 이동하는 것이다. 아이와 관련되지 않는 물건은 없다. 그렇다고 보면, 대게의 사람들이 이 두 가지의 협곡에서 지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골골짝 빈들에는, 독특한 전문성이 자리한다. 멸시의 자리와, 과시의 지식으로 몰핀 주사를 맞은 뒤에, 물건 하나와 물건 하나를 타잔과, 타잔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제인처럼 내달리는 것이다. 기쁨은, 마음껏 살수록에, 막쓰, 점점 심각하게 감가상각되기 시작한다. 여자들도 서로 친구들이 있지만, 낙차가 매우 크다. 사람들은 그것을 아무 쓸모 없는 투수라고 부른다. 중간 계투라던지, 구원 투수라던지, 패전 전문이라던지, 엔트리 채우는 선수라던지 여러 이름들이 가능하지만, 탁구공이 깨진 뒤에는 너무나 가슴 아픈 단호함이 생기는 것처럼, 그것은 사람들의 기초적인 세포 감각에서부터도 멀어진다. 보통의 여선생들은 집 안에 똥이 있는 것이다. 가족이 없으면, 그런가부다 하고, 가족이 있으면, 제법 튼튼한 유리벽이 있는 것이다. 얼마나 폴리탄들은, 아파트 추락사의 유혹만큼 그립겠는가? 싸웠던. 자기는 여전사였던. 그리고 인도에 던져진다. 종교의 유혹이고, 그런 신화적인 표상으로서의 종교로나마 정신집중이 되는 힐링 치료 때문이다. 아니면 클리닝. 손오반. 피콜로 아저씨. 인도는 공부를 위해서도 에어컨이 없고, 다만 취직 공부를 위해서도 에어컨이 없다. 도움을 위해서 애즈원의 데이바이데이 이번 뮤직 비디오가 필요하다. 도움을 위해 몇 가지 세계관적인 인사이트가 필요하다. 사람은 식량과 같다. 그것은 거대한 민중들의 눈을 뜨게 한다. 개체가 거대하다는 것이 아니라, 대지와 숫자가. 그러나 하나님의 계약으로 해서, 서로가 서로를 먹지 않기로 한 식량과 같다. 그것은 안정인가? 아니면 표현인가? 아니면 위태로움인가? 나는 인도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한국 여자들은 탄젠트가 살아 있어서 눈물을 흘리지만, 인도는 화성빛을 좋아하고, 눈물 자국을 사람에게서나 대지에게서나 바위에게서나 보여주기를 좋아한다. 한국 다음에 중국이나, 일본이 있다. 그것의 절차를 아는 것도 지혜이다. 반야. 그러나 대게의 경우, 한국 다음으로는 인도이다. 노래에서처럼 인도일 뿐이다. 그들은 한국과 외교가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어린 시절 호빵 가게에서, 주인집 아들과 친구라는 이유로 한 접시 먹고 더 한 접시 서비스로 먹는 사람과, 그냥 주는 돈만큼 호빵을 구석에서 먹고 있는 사람이 사이가 좋을 리가 없다. 싸울 일도 없지만. 회자정리. 다만 모인 사람들은 정리가 된다. 인도인과 폴리탄들에게, 에스티모터스의 에스티세븐은 에어컨 같다. 그것의 검정색 황토 먼지 아름다운 일자 상태를 더 이상 표현할 길이 없다. 누군가 성접대를 받으면서? 혹시 이것은 중국과 인도를 위해 디자인 한 것이 아닌가요 묻는데, 모터스 디자이너를 그 한 곳에서 사칭하는 사람이, 그렇다고 빙긋이 웃는 것이 단 한 번 용납이 될 것 같은. 부처님이 무조건 많다 하셨던 갠지즈강의 모래와, 학이 아직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개구리 같은. 그것의 인기는 지금 하늘을 찌르고 있다. 코멧은 기름통이 다소 덥게 생기지 않았는가? 인도인들도 더운 것은 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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