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옷
우리 말에, 옷이 천사다라는 말이 있다.
천사는 유적 존재로서, 원래 슬픔의 강을 뜻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원인을 갖고 있고
행사를 갖고 있다. 합심해서
좋은 일을 하기도 하고, 합심해서
어제와 같은 일을 하기도 한다.
누구는 좀더 진해져있고
누구는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어지기도 한다.
말할 때마다 피곤한 사람이 있고
말할 때마다 다시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
말할 때마다 거추장한 시라 가마를 태워주는 사람이 있고
거추장한 것들의 인디안 밥을 쳐먹고
살았던 사람들이 있다. 우리의 원인은
콩과 같고, 점막과 같고, 세월호 같고
숨기고, 넘기고, 감추고 한다. 우리는 마지막을 살고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나마 합심하는 것이다.
말할 때마다 피곤한 사람보다는
어제와 다를 바 없는 것일지라도
내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가서
도리어 입은 옷에 온 신경이 쓰이는 우를 범하는 한이 있어도
신발이 없어도, 그래서 신경 쓰인다 해도
합심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우리는 형식적인 일을 하기에는
너무 어린 것일 수 있고
세상 모든 원인 같은 내용만 같을 수 있다.
차원을 이동하면, 합심한 것의 간이 천막에
새들이 모여 들고, 솜사탕들이 자라고
더 이상의 순수의 시와, 누군가의 말마따나
서정시가 불가능할지라도
누군가의 경험의 시가 그다지 안 순수한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위로를 삼음으로써.....
강원도를 다녀오면, 강원도에 사는 것과는 달라서
그렇게 행사를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영월 정도를 내려와야
행사에서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행사가 나무와 바위라고 한다면
묘하게 내 있는 곳은 그것이 별로 없는 언덕 아래서
철판 같은 것이 나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 얼마나 인과가 부정확한 것인가?
인상주의 같은 것이고, 아무나 붙잡고
정말이지 아무 말이나 하는 것 같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