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원래는 슬픈 붓글씨였다.
오늘도 걸작의 탄생을 맛보았고
반드시 그것을 비유하지 않더라도
걸작이라고 하고 보니, 중국의 상고시대
걸왕이 생각났다. 주왕도 있고 하는데 말이다.
하은주도 따라 생각이 났다.
자세히 모르겠다. 걸왕이 나쁜 일을 많이 했다고
그렇게 공자님이 때로는 앉아서
때로는 서서, 때로는 중얼중얼,
때로는 중언부언 말씀하시니
우리는 광주 여상고 시대를 도무지
알지 못하면서도 걸왕 하면
나쁜 왕이라는 인상을 갖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또한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정이맹어호, 무슨 말이냐면
무슨 뜻인지 모르면, 아무리 역사적
사건일지라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삼국사기에도 등장하고
더구나 개로왕을 죽이기까지 하니
좀체로 그가 어디에 어떻게 있었는지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제목이 동화였다.
일년에 한번 동경에서 피는 꽃이라고
이름과 뜻을 달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냥 동화가 뜻으로 있는 것이었다.
이 또한 짜릿한 것이었다. 그것을
반드시 그 무엇과 비유하고 싶진 않다.
사람들은 동화를 좋아한다.
그것은 소크라테스 이전부터 그랬고,
걸왕 때도 그랬고,
하은주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주왕을 좋아하는 것은, 왠지 모르게
그가 좋은 왕이였으면서도
동화의 기미를 보존하였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서울의 잘나가는 철공소집
아들이었다. 그리고 틈만 나면
무성영화를 보러갔다. 나는 양구
혹은 광양, 나의 바이오그라피와 정확하게
일치하는데, 일하고, 영화 보고
일하고 영화 보고 하면
폭싹 늙는 것이었다. 그리고
영화 배우 같은 화교 여자와 만나게 된다.
여자가 날더러 돈보고 만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나는 내가 그때는
상당한 부자였다는 것을
일하는 것과는 다르게, 짐작할 수 있었다.
도무지 영화를 찍을 수가 없었다.
시대적으로도 그렇고,
이념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영화기술적으로도 그렇고,
영화학적으로도 그랬다.
신영균도 만났다. 그는 호기로웠고,
그 이상의 영화를 늘 찍고 싶어했다.
나는 겨울 태백산으로 들어갔고
빙벽 어딘가에서
내 몸을 얼어붙였다. 비로소
내가 여자를 놔두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심장이 늦었었다.....
여자도 어딘가에서
상자로 들어갔다고 했다.
그것을 어떻게 알고,
누가 알려주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잠시 나타나면
여자가 없었고
내가 중국에 가면
여자는 한국에 있었고
내가 일본에 가면
여자는 중국에 있었다.....
여자는 또한 고생을 많이 하였고
배우의 자격 요건으로서의 머리숱이
부족하기도 했다. 그랬더니
친한 남친이 그녀에게 정기를 모아주었고,
대신에 그는 스님처럼 대머리가 되어야 했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
드디어, 그리고 마침내
아름다운 차이코프스키 현악 사중주를
갖고 오토바이 영화를 드디어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것이 생각만으로도
너무 슬픈 것이었다.
....
이제는 영영히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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