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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주자가 모르는 세계

by 마음대로다 2018. 3. 12.

주자가 모르는 세계





나는 폴리탄들을 만나면, 다른 폴리탄들이 다른 폴리탄들을 대할 때처럼 되지 못한다. 주자의 특징이기도 할 것이다. 굉장히 어렵고, 행여 나도 근본 없는 사람이 될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한국 영화는 근본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이다. 한국학은 근본과 뿌리에 대한 객관적인 추적이다. 한국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세가지이다. 하나는 근본이 없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탄이며, 다른 하나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지극한 사랑의 화신들이다. 한국은 한 국이다. 국을 먹으면, 우리는 완쾌된다. 그것이 우리는 홈씨크니스로 생각하기 쉽다. 여행을 다녀와서, 음식만 먹어도, 우리는 완쾌된다. 적당히 후진국스러워서? 그것도 표현하기 나름이지만, 그렇지 않다. 적당히 사람들이 일을 잘해서. 그것은 많이 그렇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적당히 음식 맛이 우리 입맛에 맞아서? 그것이 갖는 정신적인 관계에 대해서 우리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우리는 대학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도서관에 갔고, 거기서 윤평중류의 한국적으로 글씨를 펼 수 있는 생각의 진행을 도모했었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아니지만, 친구가 신촌에서 내게 했던 말이 비중이 굉장히 높았던 것이다. 우리는 적당히 서로 지탱하고 있으면, 그것이 병만족장의 집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것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혹은 미드나잇 라이딩인 것이다. 영화는 다윗의 하나님의 장막 찬양처럼, 기본이 인문학이다. 혹자가 미드나잇 라이딩을 도모할 때, 달이 떠 있고, 누군가 큐를 쥐고 있고, 어둠이 아름답고, 달리는 차들이 서로 조심조심 운전을 하고, 사진기를 챙기는 일들이, 그런 평범한 일들이, 소지섭과 전도연이 가볍게 찍었던 드라마 극장의 것처럼, 가치면에서 한없이 폐쇄적이고, 쿠푸왕의 피라미드처럼, 사파커스, 보기는 쉬우나 들어가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사람이 일을 하다가 여유를 즐기는 것이란 쉬운 일이다. 방송작가가 하는 일이 그것이고, 콘티, 헌팅, 제작 회의, 출사, 편집, 더빙, 편집, 최종 마무리의 것들이 전부 거짓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여유를 즐기지도 못하고, 유인영, 최종 마무리 같은 것도 전부 거짓인 것이다. 내게 돈이 없고, 그런 일을 해서, 삼합회처럼 돈을 벌게 되면, 그것들은 분명 있는 일이라고, 나부터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내게 돈이 조금이라도 있고, 다른 곳으로부터의 수입이 늘 그 이상의 것으로 충분하다고 한다면, 자기는 자기에게 솔직해지는 것이다. 


지옥에서 돌아오면,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지옥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옥이 실재가 될 수 없고, 다만 가상 같을지라도, 분명히 지옥에 반대되는 의지를 갖는 프로그램이 실재가 되어야 한다는, 목적 의식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영화를 보면, 미국 영화가 딱딱해지고, 일본 영화를 보면, 일본 영화로 딱딱해지고, 한국 영화를 봐도, 이제 한국 영화로 딱딱해지는 이유가 그것인 것이다. 클래식이 그렇게 제일 먼저 딱딱해졌던 것도 같은 이유이자, 거룩한 계보인 것이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피라미드도 그것이다. 세상 예술 중에 피라미드만한 것이 없다. 섹스가 사탄과 관련하여, 사람들에게 극심한 공포를 준다면, 그것을 딱딱하게 만드는 방법 밖에 다른 수단이 없는 것이다. 미국 영화나, 일본 영화, 한국 영화에 비해서, 그 딱딱해지는 시간이 제법 많이 오래 걸릴 뿐인 것이다. 어쩌면 사람이 자기 자연 시간 동안, 그것이 딱딱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것마저 딱딱해지면, 수족냉증이나, 냉혈인간, 정신장애 같은 것을 보이는 사람도 제법, 굉장히 많을 것이다. 우리가 돈 때문에 짜증을 내는 사람을 보면, 화성인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어린아이처럼 우습기도 하는 것이다. 감옥에서 그것의 존재론적 차이를 발견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별 다른 이유도 없이,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나면, 평생 그것이 어떤 기계이고, 공식이었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주자는 모르는 세계가 있다. 화성인들은 서로 비슷한 얼굴과 세포를 갖고 있다가, 어떤 화성인이 지구인처럼 사랑의 감정으로 가득 싸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대게의 화성인들은 지구인들과의 접촉이 금지되어 있다. 누가 말해주지 않더라도, 마치 삶과 죽음의 사각형처럼, 소나타 형식처럼, 그들의 미래적인 살인사건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슬픈, 그리고 거대한 종묘의 제단, 기단석의 마당을 보자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올라오는 경우도 있는 것 같은 것이다. 나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도 많을 것인데, 가혹한 것은, 그의 내면을 또한 적당히 공유하고 나면, 금세 시들해진다는 것이다. 그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입는 것이 될 것이다. 누구는 공부만 하고, 대책이 없고, 살인사건일 뿐인 것이다. 누구는 예술과 거짓말의 오래된 콜라보로만 색칠하고, 나아가고, 약한 것이 잘못이 아니라, 그것의 깨진 부속 같은 것을 계속해서 이어가는 것이다. 누구는 일만 하는 것이, 공부만 하는 것이 좋다 생각할 정도인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슬픈 성가 같고, 시험 같고, 악과 같은, 살인사건에서만 구해지면 되는 것인 것이다. 좋아한다는 것은 성령과 같아서, 어렵게 돈을 벌어서, 그날로 골든벨을 울리는 것 같은, 폴리탄들도 도무지 해낼 수 없는 경제적 진행인 것이다. 


에피소드가 있다. 대체 누가 나를 이렇게 좋아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 사람을 입으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짜증나고, 공부도 안되고, 말에 여유가 도리어 생기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 그나마 있자면, 돌처럼 굳어지고, 중국집에 가면 짜장면만 먹게 된다는 것이다. 행여 이와 같은 어려움에서 구해질까 싶어서. 얼른 다른 사람이 되면, 괜찮았을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남자가 되어도 괜찮았다는 것이다. 남자는 그들 영혼의 모습이 한자의 行처럼, 사통팔달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남자들 사이에서도, 나는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온 몸이 뒤틀릴 것 같은 고통은 아니었다고 한다. 여자들도 등급이 있는데, 최악의 등급이 심장에 대한 압박이었다고 한다. 대체 누가 이렇게 사람을 좋아할 수 있으며, 그게 누구인지 알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 사이에서 매우 일찍부터 거짓으로 분류되었는지 모른다......


여자와 남자의 노동이 있다. 그것은 넓은 시간대에 걸쳐서는 알게 되는 것이지만, 우리 사는 평범하고 제한된 시간에서는 나의 이와 같은 말에서나 지적될 수 있는 것이다. 폴리탄들은 두 가지의 노동이 있다. 여자의 노동은 사랑 노동이다. 여자 본연의 것은 정말 여자의 것이지만, 일반적인 노동은 너무 흉내가 많은 것이다. 여자들의 옷이 아름다운 이유도, 그것의 종류와 창피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시도들 때문인 것이다. 이상하다 싶은 것도, 여자들은 입고, 더 입고, 다른 방식으로 입고, 마침내는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얻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대신에, 글과 음악에 걸쳐서는,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글과 음악에 걸쳐서, 여자들이 많은 것은, 그것이 글과 음악의 본질이기도 하지만, 거짓으로 있는 것인 것이다. 아무런 힘도 되지 못하고, 대신에 그런 끈끈이주걱 같은 것들이, 거짓말쟁이들이, 약쟁이들처럼 근처에서 떠나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남자들의 노동은 기가 막히고, 종류가 정말 다양하고, 참으로 존경스러운 것들이 많은 것이다. 일을 하다가, 노동을 하다가, 죽는다 싶은 것은 거짐 다 남자의 것들이다. 거기서 굉장히 훌륭한 돈들이 나온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거쳐, 여자들의 세계에 들어간다. 그와 같은 폭포의 시간을 두고, 무엇이 먼저다, 무엇이 하류인생이다 말하기는 곤란한 것이다.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이고, 영원한 사랑일 뿐인 것이다. 폴리탄들은 그런 남자들의 노동에 들어가기 위해서 굉장히 오랫동안 노력하였다. 그 자체가 영화이고, 다른 데에서는 별로 영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성의 변천을 경험하는 존재는 세상에는 없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자로 일하고 있다가, 여자로 갑자기 체제가 변환되는 경우도 있다. 내면과 외부가 이격되어, 마치 클러치처럼, 회전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때 사고가 빈발하고, 주자는 속절 없이 당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김치를 먹을 때, 먼저 고추가루를 빻아서 양념을 만드는데, 김기덕 감독식으로 말하면, 우리는 지금까지 그와 같은 김치를 먹어왔던 것이다. 드라마는 저 멀리에 있고, 통과하지 않으면, 비슷하게 흉내도 낼 수 없는 존재의 현상학인 것이다. 우리는 드라마의 계단에서부터 시작하는데, 감각의 혼돈과 밀림이 도대체 어디쯤에 있는 지도 모르는, 사람 중에 사람이요, 인간 중에 인간인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때가, 순수 여자가 그와 같은 폴리탄들에 침입할 때가 될 것이다. 순수 여자는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정말 인간이 눈물 만을 흘릴 수 있는 능력이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가짜를 섭취하면, 그러니까 십자가 만도 아니라, 가짜를 가까이하고, 늘 그것에 심취하게 되면, 가져오게 되면, 어제 역사저널 그날의 연산군의 이야기처럼, 강화도로 내쫓기게 되고, 그곳에서 역질에 걸려 죽게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은 한없는 순수 여자는, 그래서 여자들에게서조차 두려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내 어렸을 때, 가족들이 김치를 담근다고 배추를 써는데, 마치 김밥의 끝부분처럼, 김치의 속을 먹어보고자 하는 탐욕의 시간이 내게 있었다. 어머니도, 그리고 누나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친한 누나가 내게 그러는 것이었다. 먹지 말라고. 어쩌면 누나는 내가 자기들처럼 복잡한 존재 구조의 폴리탄인 줄 알았던 것 같다. 너무 순수하게 구니까. 말도 그렇고, 잘 울고, 만화책을 좋아하고, 그것의 사각형을 좋아하고 하니까. 나는 네가 너무 순수 여자가 되어 죽을까 걱정이 된다 했던 게 아닌가 한다. 내가 클래식의 몇 개 없는, 아름다운 선율을 좋아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나는 클래식을 산업과, 가게의 매출과, 사랑의 밀도 면에서 좋아하는 것이다. 세상 순수 여자도, 노동하면, 남자들과 조금도 차이가 없다는 믿음도 거기에는 함께 담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