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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역사는 누구나 말해야 한다.

by 마음대로다 2018. 11. 21.

역사는 누구나 말해야 한다.





역사는 포장마차처럼 누구나 말해야 한다. 어제도 말하고, 내일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코흘리개 소년도 말할 줄 알야아 하고, 당연히 말이 안 통해도 말하고 싶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쌍스러워도 말할 줄 알아야 하고, 의식의 흐름으로 잡히는 모든 인자들, 요소들, 에테르들도 떨쳐 일어나 말할 줄 알아야 한다. 가만히 있다 보면 점점 더 사탄이 되는 것 같다. 그런 것도 아니고, 오랫동안 가만이 있다고 해서 완전히 사탄이 된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 악역을 맡았던 시대와는 다르게, 우리들의 뇌가 지금 능지처참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처참을 당하고, 죽음과 다름 없고, 침묵만이 흐르면, 당연히 힘이 빠지고, 영어 중에서 가장 힘이 있고, 가장 합당한, 바로 그 힘이 빠지게 되면, 몇 개 되지 않는 거의 모든 속성이 사탄의 것이 되고 만다. 역사는 누구나 말해야 한다. 그리고 삼천갑자도 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독재자와 악역이 악역을 도맡아 하던 때와는 다르게,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와 같은 선명한 역사 인식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피라미드를 보자. 이것이 민중을 위한 것인가? 그러나 조금 공부를 못한 사람은, 이것이 민중을 위한 것인 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어른 손이더라도, 그것이 닳는 속도와 같은 것으로다가 돌을 닳게 해서, 탑을 지었다고 하면, 그것이 어떻게 민중을 위한 것이겠는가? 우리나라에 죽음의 꽃잔치 같았던 서양 예술과 문학 같은 것이 많았다면, 박정희와 전두환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박정희를, 그리고 전두환을, 두둥, 어떤 효과음, 두둔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절박하였다. 우리는 피라미드를 알아보았던 것이다. 우리는 뛰어들었고, 호모 싸피엔스, 그러니까 피하지 못하면 즐겼던 것이다. 비엔남 사람들이, 그들 전쟁 직후, 한국 사람들을 좋아하기라도 했겠는가? 우리는 뛰어들었고, 우리가 일본에 갖는 악감정을, 약간의 정도차가 있어서인지, 그들은 한국에 갖고 있지 않는 것이다. 다만 그 정도만으로도, 우리는 죽음 같은 밀림,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한국 사람들에게 철모를 씌우고, 최신식의 소총을 어깨에 매게 하면, 그렇게 멋지고 아름다워 보인다. 전쟁이 하루 이틀, 일년 이년, 평화와 교육의 시대를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갈수록 지능이 떨어지고, 얼굴도 이탈리안 어둑시니들처럼 변하고 만다. 클래식은 베니스, 사람들이 배를 내밀고 수많은 사람들이 선탠을 하고 있으면, 그들이 다시금 일어날 것 같은 것이다. 영혼은 냄새와 같아서, 아직 시체 냄새가 나지 않으면, 그들은 자고 있는 것 같은 것이다. 기가 막힌 것은, 수달이, 물위에 떠서, 배를 내밀고, 그 위에다 조개를 놓고, 돌로 쳐 깨먹는다고 한다. 그것이 과연 누구의 조화란 말인가? 아티피셜 플라워? 우리가 경복궁, 대학에 들어가서, 아름다운 음악을 듣다 보면, 사회에 뛰쳐나와, 반민주 독재에 항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새카만, 아름다운, 높다란 사각형의 빌딩은 독재와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생, 그것을 긁어먹는다 해도, 그와 같은 위대한 예술가나 문학가가 되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의 본질을 읽어냈다. 그것의 본질은 민주주의이다. 그러니 만일 민주주의가 아닌 예술의 전경과 형상이 있다면, 그것은 거짓인 것이고, 엉터리, 가상, 그리고 비본질적인 것인 것이다. 만일 그것이 민주주의의 마지막 모습을 하고 있으면, 아무리 그들이 까마득한 부자이고, 귀족이며, 민주주의를 말하는 귀족일지라도, 아니꼽고, 서럽고, 더럽다 해도, 그들과 교우하고, 그들에게 유학을 가고, 그들과 함께 사업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전혜린 같은 여자는, 서양의 도가, 철저히 고독한 한국 여자의 개인에게도 마땅한 것일 수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 죽기까지 했는 것이다. 설명할 방법이 없고, 자기에게는 그것이 부족하니까, 다만 죽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꿈에서 깨는 것은, 죽음을 이상히 여기는 순간에서 뿐이다. 내 딸이 전혜린을 좋아한다면, 그것을 그녀가 죽기까지 비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들이 전혜린을 좋아한다면, 큰 소리로 웃으면서, 그래도 인격적인 모독 같은 것은 그에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단단하고, 그만큼 목끝까지 단추가 올라와 있고, 그만큼 훌륭한 옷감에다가, 수많은 장식들을 놓아도 훌륭한 매무새인 것이다. 인간의 육체와 인간의 단어는, 하나님의 궁극성은, 원래 피팅 모델이라는 것이 없고, 홈쇼핑의 열일하는 호스트라는 것도 없다. 전혀 매치가 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이 어느 때는, 그 입고 있는 옷이 백발마녀전에서의 백발처럼 산란하고, 검은 묵을 처음 뭍히기 전의 여우털만 같아 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그와 같은 전쟁의 배경을 만나지 못해서 경험이 없는 것이지, 그와 같은 추상적인 공간이 우리들에게서 완전히 제거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참으로 그것은 최루탄과 같았다. 요즘 먹방들처럼, 누군가 최루탄을 맛있는 고기에다가 싸먹으면, 얼마나 결국에는 죽고 말겠는가? 우리는 뛰어다니다가, 담배도 피우고, 그렇게 도시적 시공간 엑스를 다녀온 다음에, 샤워를 하고, 다시금 학교에 가서 숱한 서글픈 시스템들의 인과를 공부해 나갔던 것이다. 악역과 사탄은 다르다. 악역은 수많은 인간적인 가능성들을 갖고 있고, 그것의 피라미드는 우리 사는 피라미드와 굉장히 닮아 있다. 그러나 사탄은 그렇지 않다. 사탄은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는다. 길쌈도 하지 않는다. 성경의 관점으로 보면, 사탄은 하나님이 그들을 먹이고 입히시는 것 같은 것이다. 너무나 절묘하고, 섬뜩하며, 분명 사탄도 어딘가에서 나와서, 시간을 연속하는 것일 것인데, 그것을 종잡을 수 없고, 그들도 분명 공간을 차지해서 살 것인데, 그것의 공간을 추적할 수가 없는 것이다. 너무 쉽게 주자학을 하고 싶으면, 사탄에 대해서 하루 왠종일 생각하면 된다. 미국의 공포영화가 안스러운 것은, 그들은 주자학을 하고 싶은 것이다. 한국의 역사 프로그램이, 겨우 카더라 통신만을 내세워도, 내가 글만 써주면 금세 사탄의 시스템을 벗어나는 것 같으나, 미국은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공부를 산더미처럼 해도, 우리들이 부러워하는 것들, 그래서 우리는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하면서, 몇 개씩 셀렉션을 하는 것들을, 그들은 재미 없는 토지와, 길상이, 태백산맥, 뭐 그런 것들을 다 읽어야 하는 것처럼, 다 읽어야 하는 것이다. 얼마나 헤겔은 읽기가 쉬운가? 2차 세계 전쟁이 발발한 이유가, 전후 유럽의 비인간적인 공동체적 자연성에서 그것의 기원을 찾을 수도 있겠으나, 헤겔이 너무나 독일 사람들에게서도 돌과 같이 되어서일 수 있는 것이다. 사탄은 끊임없이 똑똑한 사상가나 철학자, 그리고 도덕군자들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기들의 지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들은, 예수적인 삶의 한계 내에서, 일반 민중들에게는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숫자가 많은 것을 사탄은 염려하지 않는다. 숫적 개념이 원래 인간은 희박하고, 그와 같은 면에서의 학문은, 수학은, 자기들의 전공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대상을 붙이면 흐릿해지고, 위에서 내려오면 대게의 인간들은 얼어붙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아무런 보편적 개념을 연습하려고 하지 않는다.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경복궁, 그것도 효과음, 그렇게 산처럼 바다처럼 죽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눈이 내리고, 얼음이 덮여서, 마치 백설공주들처럼 있다 해도, 사람들은 그것이 아닌 것을 향한 보편적인 개념을 여간해서는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의 센서는, 자기의 키를 지나는 것에는, 그것의 차이가 아무리 작을지라도, 아주 철저하게 반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탄은 헤겔을 두고 아주 초조했을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이 헤겔 철학을 공부하러, 독일로 유학을 오면, 그것이 그들에게는 종말의 날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약간 앞당겨서 염려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주 핍진하고, 협소하고, 이것도 또한 사탄에게서 발견이 되는 인간의 흔적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가봤자, 공부를 제대로 하겠는가? 무슨 약물을 주사 받아서, 독일어를 잘할 수 있겠는가? 일종의 더블 딥, 그러니까 주사를, 같은 곳에 번개가 두 번 칠 수는 없다고 하는데, 주사를 백 번 놓는다고 해도, 한 번 놓는 것처럼, 그러나 백 번이나 김구, 놓아서, 왜 이리 시퍼렇지? 하는, 아주 신과학 연구의 죽음에 관한 한 연구를 치른다고 해도, 독일어는 아베체대, 그러니까 체육대학교, 잘할 수 있다고 해도, 철학까지 잘하겠는가? 우리가 계단을 오를 때, 그라운드, 독일어로 그룬트를 잘 다듬는 것을 방법으로 여기곤 한다. 그것들의 총합이 서브스탄스이고, 인간의 본질은 바로 그와 같은 서브스탄스인 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잘난 척 하는 위문들은 어떠한 효과를 가져오겠는가? 분명 내려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오르기 위해서, 지반을 단단하게 하였는데, 눈 높이의 공중을 더럽히면, 갈수록 깨끗한 곳에 그나마 지능과 뇌세포가 콧구멍을 낮추지 않겠는가? 뱀파이어가 인간의 흔적이고, 그들이 피냄새를 좋아하는 것은, 그것에는 황순원의 소나기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들의 지속적인 반복, 마침내 사이비 집단들의 공동체적 군무, 그러니까 집단 자살 같은 것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같은 유럽에 살아도, 삼층까지는 아름답고, 사층부터는 어려워지며, 오층부터는 점점 더 통제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대신에 사탄은 걱정이 없고, 하는 일이 통제이기 때문에, 항상 그와 같은 통제 속으로 생물들을 영입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드디어 자기들 세상을 만난 것인 것이다. 아들의 반을 죽여서 사탄이 된 사람이 있고, 아들의 반이 죽어도 사탄을 거절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