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 결방의 시간
인영이 내 여자친구였다. 우리는 사회적 제도를 배우고, 권하고, 스스로 적용하지는 않지만, 아직 결혼 전일 때는, 사회는 혼란스럽고, 파괴와 헌신, 욕망과 전차, 그렇게 다니곤 한다. 인영이 나타나면, 내 공식적인 입장은 편안하였고, 나타나지 않으면 영 서운하고, 심지어는 서럽고 그랬었다. 지금처럼 절대의 고독에서는 있지 않는 일이나, 예전에, 내가 한참 공부하는 화랑의 도반으로서, 도시를 말을 타고 다닐 때는 그렇지 않았었다. 지나가는 여자에게서도 급유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급유상태를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고, 지금으로 보면 공중 급유, 혹은 무선 충전의 방식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하지만 말의 형식은 여자 이야기이기 때문에, 서로 하는 것들이 다르지 않았었다. 그렇게 나의 백제를 가정해보자면, 백제는 학교이고, 고대이자, 독특한 지역이고, 약간의 왕자병이기 때문에, 인영이 나의 공식적인 여자친구였던 것이다. 인영이 인형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인형 같은 사람이 좋았다. 인형은 오래 가는 힘이 있다. 여자는 그와 같은 플라스틱 러브로 나아가다가, 대게가 장자끄 루쏘의 말처럼, 자연으로 돌아가고 만다. 장미향이 약간, 그것의 경계 역할을 한다. 심지어는 무화될 수도 있다. 어떤 매력이 철철 넘치는 형사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서, 문을 열고 대면하고자 하는데, 장미향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인형을 사람이라 보지 않을 수도 있다. 너무 예쁘고, 너무 인형 같고, 너무 관습적인 모델 사진 같아서, 보통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찾을 수도 있다. 거울이라는 것도 형사를 피하는 여자들의 기술일 것이다. 클라이막스 원이라는 영화의 첫부분에서처럼, 아예 벗고 있는 것도, 보통의 시선으로는 감별이 불가능한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예뻐서, 공식적인, 나의 여자친구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참 음악적으로, 형식적으로, 거리를 잘 두었다. 보통의 연인들이 가장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너무 붙어다니고, 항상 손잡고 다니고, 그러면 존재가 진뜩해지고, 말 수가 없어지고, 그것의 유일한 관계의 현상이 되고 나면, 그것으로 인해, 모순적으로는 율법교사로서의 예수나 영접할 것 같은 위기에 봉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공포는 실재하는 것이다. 학교에 있는데도, 서로 전화했고, 지나면서 마주치는데도, 뽀뽀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밥을 먹는데도, 자기들 친구들과 먹었고, 연인인 것은, 기숙사에서 잠깐 서로의 얼굴을 보고, 어깨를 한번 부딪혀 보는 것 밖의 것은 하지 않았다. 인간은 외롭다. 우리는 두렵고, 결국에는 거짓말장이가 될 것이다. 우리가 손톱깎기, 그러니까 소매치기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남자는 잃을 것이 없지만, 여자는 항상 좀더 느리기 때문에, 의지하는 것이 있고, 잃는 것이 많은 것이다. 때로는 남자도 여자를 잃지만, 여자가 남자를 사물로써 잃는 것이 있는 것이다. 항상 훔치고, 항상 소설쓰고, 항상 시시껄렁하는 것은, 존재가 좀체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추상적인 이발소 광고 기둥과, 눈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금발의 여자 사람 얼굴이 있는 미용실 광고 기둥을 지나, 카페에 가고자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카는 자동차이다. 그리고 페는 페넬로페, 그러니까 여자인 것이다. 지폐도 여자이고, 동전도 여자이다. 금도 여자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기를 쓰고 경제학과, 경영학과를 가는 것이다. 남자친구의 결방 소식을 우리는 그 아름다운 카페에서 듣는 것이다. 카페에는 공주의 남자 오에스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상은 관념의 거짓말로 구성되어 있다. 성경이 다윗의 장막을 찬양하는 것은, 세상의 관념이 못지 않게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고, 오래간다는 것은 사람들이 거짓으로 태어나, 거짓으로 죽는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윗의 장막이 어떠한 형태인지, 정말 백제인지, 그것을 알 순 없으나, 사람들이 거짓 출생으로 태어나, 거짓 죽음으로 사라지는 것을 미워하고, 슬퍼한다는 것일 것이다. 남자친구를 우리는 핸드폰으로도 보려고 했다. 차를 세워두고, 차에서도 시청을 하려고 했다. 카페에서는, 마치 월드컵처럼, 스크린을 설치하고, 빔프로젝트 같은 것으로다가, 영화관람을 하려고도 했다. 대.한.민.국. 그렇게 손뼉도 치려고도 했다. 그런데, 그 흔한 재패니즈 걸, 결방을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방이 어둡고, 차갑고, 얼음이 언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너무 오랫동안 거짓말 속에 살면, 습관적으로 거짓말이 나오고, 무슨 말을 하던지,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이 나처럼 코스모폴리스의 반열에 오른 사람에게는, 끊임없이, 한호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짓말로나 되는 것이다. 우리가 공식적인 여자친구가 있대도,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은, 다만 나쁜 의미가 아니라,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의미에서, 그런 법률적인 용어가 있을 것인데, 잘못이 아닌 것이다. 김혜수는 그 아름다운 한국어 이름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디서부터인가, 그것의 철로가 이상해서인지, 오랑캐의 권역으로 진입한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송혜교는 육체와 거짓말의 세상에서, 섹스, 약간 미달된 체격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드라마가 시작되면 여주의 힘을 발휘하는 것 같아 보인다. 사람들은 어제 재방송을 보았을 것이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는가? 대학에서, 틴턴 애비, 책을 읽다보면, 가슴이 아프다. 군대에서는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눈을 가리고, 안대를 씌우고, 몇 걸음을 걷게 하고, 그것을 벗으면, 내가 있던 군대의 건물이 영락 없이 대학교를 닮았었다. 상병 때부터는 책을 마음껏, 시간이 나면 읽을 수 있었으나, 두 가지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마음껏 읽을 수 있다 해도, 내용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나마 읽을 수라도 있어야 하는데, 금세 시간이 가고 만다는 것이다. 책의 관점으로도, 상병 때부터의 일년 남은 군대 생활이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인형을 좋아했다. 그리고 복학을 해도, 사태는 비슷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여자의 수는 채워졌지만, 인형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사귐의 밀도는 티비를 보는 것과 비슷했었다. 만일 육십인치 티비를, 지금의 능력으로다가, 살 수 있다면, 그 때의 심정이 그랬을 것이다. 처음으로 여자에게 만지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지만, 책이라는 것은, 불어 터질 정도로, 프랑스, 만지지만서도 내게 들어오는 것은 거의 없는 것이었는데, 공부의 내용은 갈수록 태산이고, 그래서 그와 같은 기능이 힘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 마의태자는 어디에 있는 것이고, 어디에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서양의 금발미인들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감추고 있는 지적인 속성 때문인 것이다. 눈이 크고 아름다운 여자들이, 키까지 큰 사람을 바랐다는 것이, 내가 대단히 비도덕적인 완벽주의자였다는 것의 증거일 것인데, 키가 아주 조금만 작아도 합격시켜주고, 밤낮 없이 일대일의 전공수업을 하게끔 해주었다고 한다면, 정말이지 많았던 것이다. 사람의 목소리는 클래식 음악에서도 많이 나온다. 그리고 혼자서 하는 생각에서도 많이 나온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은 문어체에서도 많이 나온다. 아버지가 목소리가 굵고, 어머니가 차분한 목소리를 가졌다면, 그들의 딸도 비슷한 것이다. 합성은 하나님의 것이고, 얼굴은 심은하와 같다. 내가 그 두꺼운 중국 칼을 들고, 도마를 치면서, 책을 읽고, 공부하고, 밑 빠진 독에 물을 어떻게든 채우려고 노력할 때, 그래도 지나가는 버스며 택시, 혹은 소요학파의 여인들은 그들 부모님의 시편들을 가지고 있었다. 광주 어느 병원에서나 포우의 단편을 새로 볼 수 있었다. 영어 공부를 한답시고, 히어링, 단편들을 알고 있었지만, 모그르가의 것이라든지, 검은 고양이 같은 것은, 병원에서나 겨우 밑이 빠지지 않고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외국인 공포증xenophobia을 갖고 있다. 영어 울렁증도 비슷한 것이다. 우리들의 잘못을 내 이웃에게, 그리고 더 크고 영원한 이웃 국가에게 많이 전가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아무런 잘못 없이 다가올 때는, 심각한 주자학적 흔들림을 겪게 되는 것이다. 에드가 알랜포우도 금발이 아름다운 서양 여자들을 매우 좋게 본 모양이었다. 우리들 옛날 사진을 보면, 얼굴들이 지금의 연예인처럼 예쁘지 않은 것을 불만스러워할 수 있는데, 그것은 서양도 마찬가지였었다. 서양도 그렇고, 동양도, 얼굴이 원형으로 생긴 사람이 있고, 타원형으로 생긴 사람이 있었다. 당연히 서양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인물 탐방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타원형의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모그르가의 살인사건을 보면, 단순하고, 지능은 곧 나의 머리에서 떨어질 것처럼 하고 있다. 그런 것을 끝까지 읽는다고, 외국어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외국 사람들은 문학 공부를 한 것도 아닌 것이다. 자끄 라깡이 잃어버린 편지를 분석했고, 이번에는 자끄 마깡이 등장해서, 모그르가의 살인사건을 분석한다 해도, 이전의 라깡에서처럼, 이제는 뭔가가 연속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본연적인 학교성, 보다 어렸을 때에도 허용되는 사회성을 잃고 나면, 오랑캐가 되게 되어 있다. 남자들은 일부러 자기를 오랑캐라고 과시하면서, 여자들을 만나기도 한다. 지금은 덜하지만, 옛날에는 그와 같은 미학을 내비쳤던 것이다. 여자가 남자 없는 자취방에 들러, 빨래까지 해놓고 가면, 이제는 결혼해도 되었던 것이다. 책을 읽어도, 손에서 빠지는 모래처럼 모두 빠져나가게 되어 있다. 책은 그 자체가, 인간으로부터의 영원한 거리이고, 내가 내 손으로 공장을 만들어, 컴퓨터를 생산까지 하는 것의 모습이고, 의미인 것이다. 티비나 영화가 몹시 이상한 어투를 가졌던 것은, 골방에서 저마다 브이알을 켜고 보면서, 표상과 무지, 그것들의 사탄들과 전투를 하였던 것의 증거였던 것이다.
우리는 책에 있을 수 없었다. 책은 약간 프랑스 조계지 같은 느낌이 있었다. 영화에 있을 수도 없었다. 너무 대놓고, 여자들이 다방 레지로 나오는 것이, 오히려 불가능한 것들의 변수였었다. 그러나 현실에 있을 수는 더더욱 없었다. 누구는 불가능할 것 같은 여자친구나 남자친구를 얻어, 때로는 자동차를 타고, 은막이나, 흑백 영화, 그것의 기억과도 같은, 푸르른 강변의 백사장에도 나아갔기 때문이다. 얼마나 안타까운가? 유리왕의 아들과 딸 같은, 그와 같은 삼국시대는. 카페에서 그런 말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하고, 사람들을 그렇게 놀래키고, 시간이 깊어 일어나려고 하면, 항상 초고속의 전투기 같은, 굉장히 아름다운 인형이 문을 열고, 뒤늦게 등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내 있는 곳의 사람들에게 아는 척까지 하면. 사람들은 저마다 농구공을 들고 패스워크를 하는데, 공을 받지도 않고, 예쁜 척이나 하는. 그런데도 사람들은 반가워하고 좋아하는. 누구야? 내가 묻고, 어? 모르는 사이야? 안내를 받아, 가볍게 인사하고 나오는데, 분위기가 더 좋게 느껴지는. 기분. 얼마나 인간은 부적절한가? 항상 그처럼 인간은 나가려던 길이라는 것에도 차단되나, 그것의 명목, 고집, 그러나 영혼은 어떻게든 섹스를 하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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