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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

by 마음대로다 2018. 12. 22.






여자친구




내 친구 중에 여자에게 아첨하는 아이가 있었다. 나는 해석의 두 가지 채널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해하겠다는, 뒤늦은 경험적 인정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강요에 의한, 강압에 의한, 수사와 판단은 법적 효용이 없는 것처럼, 성적인 임파선을 둘러싼 비좁은 시공간이 아니라, 캠퍼스처럼, 말 그대로, 넓은 공간에서는 사뭇 다른 풍경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죽고자 하였다. 어째서 남자가 남자 손을 잡고 죽을 수가 있는 것인가?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역사가 나를 불렀다면, 나는 좀 덜 끌려가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이라는 광야, 혹은 황무지를 만나고서는, 항상 강간 당하고, 착취 당하고, 눌림 당하고, 업수이 여겨지고, 자기들끼리 음식 냄새 풍기는 국문학적 현실을 앞에 두고, 적어도 그 시간까지는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나는 각종 게임들을 갖고 다니면서, 레크리에이션 지도자처럼, 여자 한 명을 앞에 두고 죽고자 하였던 것이다. 


내게 호모루덴스라는 책이 있었다. 교과목과는 상관 없이, 내가 나의 전철을 앞다투어 연결하면서 전진하고 있던 책이었기에, 제법 잘 읽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어쩌면 체코 여행을 한 보름에 걸쳐 다녀온 것 같았다. 체코라 하면, 책에 빠지지 않고, 책을 공자님의 말씀처럼 즐기듯이 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하는 수 없다. 그런데 철학과 여학생이 자기 교과목 발제에 필요한 책이라면서 빌려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받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기숙사 계단에서, 그 옆에 있는 테이블에서, 아주 평범한 것인데도, 그렇게 덜썩 앉고는, 안쪽 소파 몇 개에도 앉고는, 한 시간 이상씩을 이야기하곤 하였었다. 어째서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내용만 말하고는, 듣지를 않는지 모르겠다. 공부 못하는 사람들 특징인데, 아주 가인의 이마에 박힌 문양마냥 내가 그와 같았던 것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의 것과 비슷해서였을까?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사실, 원리, 법률, 이법 같은 것을 우리가 말하면서, 나의 문장과 육성을 만들어내기란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을 알기도 어렵고, 그것을 말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법률적 대상의 그림자 같은 것들, 시간적인 추이 같은 것을 말하기라는 것은, 수업 시간에 이문열을 데리고 와서, 말을 하지 않으면,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 하면서 고문을 하고, 그래서야 겨우 만날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는 신기루 속에서 살았고, 미라지, 혹은 기방, 나는 그와 같은 옅은 인간 시장에서 호령하는 사람 같았다. 듣고자 하는 말을 내가 하였을 것이다. 대부분 역사와 구조의 존재의 구분을 인정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아닐지라도, 호모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은 그것의 중간 지역을 나름 고전적인 접근으로써도 제안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책을 읽어도 비슷한 말들이 많이 나오고, 역자들도 같은 말을 했을 것이고, 찌찌뽕, 남자 여자끼리는 하기가 어려우나, 철학과 여학생도 비슷한 취지를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놀면서 어떻게 공부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보다 고전적이고, 보다 지독한 사실에 대한 접근은 내가 하지 못했고, 하도 역사에 질리고, 구조에 회피한 사람들이, 그것의 변증법적 결합에 대해, 초미의 관심이자, 사태의 본질, 그런 것에 골몰하였기 때문에, 다만 그를 향한 비슷한 걸음 같은 것에 좋은 질감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발제를 잘했다고 했고, 책을 내게 돌려주고 했었다. 그러나 호모루덴스가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간에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갑갑함 같은 것은 있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뭐든 섹스와 관련을 맺고 있다고 한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프로이디언 같았기 때문에, 나의 행동을 의식하면서, 거기까지 촉각이 닿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붉은 색의 아름다운 기숙사도 그랬다. 그것이 아니면 문학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남녀 철학 장교가, 이런저런 드라마 속에서, 세상 부르주아틱한 문학 현실을 두고, 대부도 갈대숲에 가서, 함께 자살한 것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좋은 책을 취미로 읽고, 그나마 여자 장교가, 계급과 계통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나, 나의 무책임한 바통을 숨가쁘게 이어받고는, 알 수 없는 밀도의 누수를 막았는지 모른다. 


이렇듯, 소년의 계획은 애초에 없는 것과 같이 무책임하고, 소녀의 계획은 철저하게 학계로부터 벗어나 있고, 대학 소인자로서의 소확행에 그치고 만다. 무엇때문에 그런 책을 샀던 것일까? 무슨 쿠텐베르크와 직지의 철제 활자들 사이에서, 그것을 착안하였던 것일까? 


만일 주자학의 관점에서 소년을 보면, 순전 우주 뚫기의 장본인만 같은 것이다. 우주는 처음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대상에 불과하지만, 조금이라도 나아가면, 우리는 산소 부족으로 인해서, 우주 방사능으로 인해서, 쉽게 죽고 만다. 팰리세이드, 차와 우주선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우주라는 감당할 수 없는 대상을 두고, 자기라는 끝부분의 단단함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표현이 대단하면 대단한 것이지만, 그저 그렇다면 또한 그저 그런 것이다. 우리들의 사랑도 그렇다. 사람들이 대학을 가는 것을 소망하는 것은, 우주처럼 넓은 사랑을, 섹스를 하고 싶은 것이고, 동시에 우주에 빠지지 않고, 단단한 우주선으로써 나아가고 싶은 것이다. 얼마나 많은 책이, 소설이, 영화가 있는지 모른다. 어느 스님들은 그것들을 모두 읽기를 원한다는데, 기도문 중에 그런 것이 있는데, 내 눈에는 어지럽고, 다만 민중들을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이다고만 여겼었다. 아주 이상한 논리로써, 일종의 철학적 가정으로서, 조금도 지치지 않고, 사소한 것으로의 끝맺음이 없는 섹스를 행하는 사랑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도시를 걸을 때, 쉽게 지치고, 피곤해 하고 하는 것은, 어쩌면 그와 같은 우주선과 비교하면 좋은 일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가정, 가정이맹어호할 때의 바로 그 가정, 사소한 것으로의 끝맺음이 없는 섹스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저기 어디 짚신처럼 있을 수 있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대단히 어려워서, 우리를 두렵게도 하지만, 매우 흥분시키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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