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여장(2011): 중국은 저 깊은 여행의 불가시적 세계에 관한 염원
우리나라는 볼 게 없다. 우리나라를 아무 생각 없이 사랑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중국은 그렇지 않다. 중국은 아무 생각 없이 사랑할 수 있다. 그 사랑스러움은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일본이 육체적인 사랑이라면, 중국은 남여상열지사 내정간섭 같은 지상열 비슷한 사람을 매개로 사회성의 저변을 확보한다. 내 이런 말이 음계처럼 접수가 되지 않는다면 나는 무척이나 슬플 것이다. 한국은 사랑을 할 수가 없다. 한국은 교회가 많다. 일본도 사랑할 수가 없다. 사람이 비천무로써 나아가면, 두번 날아간다는 뜻에서의 비비천무로써 도망간다. 그래서 내게 있는 지도 몰랐던 일첨을 부끄럽게 만든다. 중국은 그렇지 않다. 중국은 북쪽에 도시가 별로 없다. 험한 곳에, 습한 곳에, 일부로 남쪽 지역에 도시를 놓은 것이 아니라, 따지고 보면 가장 좋은 곳에, 비인민적이고, 비관료적이며, 비관제적인 곳에 도시가 있다. 그것도 매우 오래된 것으로다가. 상해는 오래된 도시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을 향한 무상성이 있다. 물론 처음에는, 한국의 신탁통치처럼, 밀무역적인 경제와 관심의 한 축이 있었을 것이다. 중국 국민 경제는 한정되어 있고, 감가 상각이라던지, 재고나 유통에 대한 고민이 국민 경제 하나가 국민 한 사람에게 완전 경제적으로 관계하지 않는다는 수치의 비극성을 갖고 있지만, 상해는 일본이나, 한국에서도, 부가가치 높은 상품등을 당국에 보고하지 않은 채로 먼저 들여와, 가격이 상승할 때 비로소 보고를 하고, 시장에 유통시키며, 값비싼 명품 거래를 통해서도 수익의 사분의 일 이상을 획득해서, 국가가 경제를 유일한 소통의 방식으로 정할 때, 그 이상을 더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하게끔 한다. 상해라는 도시 이름을 칡쇼로써 해석하면,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외면하고, 다시금 서로를 차갑게 하며, 계속해서 높은 미디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상해는 상해일 뿐. 다시금 중국이, 훌륭한 장안이나 낙양, 중경이나 남경, 홍콩이나 선전, 상해와 항저우, 북경과 대련 등으로 도시가 드러나는 것은,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것에 국가가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람들 하고자 하는 것이 중국의 가장 높은 대륙에서는 그것의 가장 높은 정신의 증거라는 주장이기도 하다. 음악이 우리를 절대 정신과 접합시킬 때, 좋아하는 대상과 존재에게 우리는 결코 종북 세력은 아닌 것이다. 그것의 바다는 높고, 그것의 항구는 아름답다. 우리나라는 아무런 볼 게 없다. 무한도전이 어느 무인도 섬에 가서, 이런저런 행복한 로빈슨 크루소 미션을 행할 때, 아이스크림을 새장에 넣어 놓고, 정해진 사각형 모래밭에서 새장의 열쇠를 찾기라던지, 코코넛 열매를 따서 음료수를 먹을 때라던지. 특히 두 번째의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상가의 주변에서 사는 사람은 거의가 무한도전 매니아인데, 상인은 최고의 손님이고, 그런 명랑하고, 젊으며,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민간 차원에서는 브이아이피이고, 없으면 없는 대로 어느새 서로 수다 떨고 있는, 내 고등학교 동창인가 싶은, 손님은 손님대로 말이 많은 점원에게, 하늘 높은 확률로써 실제로, 인터넷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구입하는 순간이기도 한 것이다. 먹을 것을 만드는데도 자부심이 있고, 괜히 무한! 하면 도전! 할 것 같은 응답성의 대기 상태가 엿보인다. 코코넛 열매를 따먹는 것은, 우리나라의 영문학이 얼마나 저변에 미쳐 있는지 실감할 수 있는 지표이다. 돈이 있어야/ 열대의 무인도에도 갈 수 있는 것이다. 대개의 고통은, 고시원에서 사는 사람이 저녁에 먹을 거리를 아주 제한된 경제 상태에서 확보해야 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자주 오던 총각이, 다시금 먹을거리를 많이 사갔는데, 얼굴이 퀭하면, 요즘 세상에 굶고 지내는 사람이 어딨어? 그런 사람이 아니겠는가? 몸이 아팠다고 변명을 하면, 더더욱 마음이 짠해지는 것이다. 그와 같은 출발지에서 출발했다고 하자, 어느 곳에 도착하겠는가? 그것은 상가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다. 모든 절은 상가 연합 소속이다. 절은 초월의 표상이 아닌가? 집중을 해야 한다. 중국집의 연등처럼 보이는 것도 큰 잘못이 아니다. 암자 정도는 가줘야, 여기서부터는 세큘라가 아니라 세이크리드인가 하는 것이다. 탬플 스테이도, 다소 에쓰닉한 분위기의 고급 모텔 스테이다. 상가와 상인은, 그 중간에 있는 요소와 존재들을 상인들로 만든다. 서로는 깨끗한 옷을 입어야 하고, 정장까지 입는 것을 한국 사람들은 선호한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좋은 자동차 대리점인데, 일하는 사람이 캐쥬얼한 복장인 것을 본 적이 없다. 가장 복장 착용시 스고이 했을 때, 그것이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부드럽고 좋은 천의 정장을 입었을 때였던 것이다. 그것의 연장인 것 같은 자동차를 타고, 우리는 채 한 시간도 아니되어서 초월지에 도착한다. 탬플 스테이. 한낮의 국도가 가장 초월적이다. 그것의 아지랑이는, 해가 지는 휴게소에서의 바라다 보이는 산능성이는, 모든 일반 서사와 단순 묘사의 영화로는 접근할 수 없는 신의 앨범 같은 것인가? 중국은 그렇지 않다. 중국이 멍청한지 안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거의 절대적 모름이다. 일본이 멍청한 것은 세상이 아는 이치이다. 한국이 코코넛을 어렵게 깨뜨려야 먹을 수 있는 음료수인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우리는 이 비좁은 곳에서, 누가 누구를 만나는지도 모른다. 중국은 그렇지 않고, 인문학자의 쓸쓸한 외출에 가장 화려하게 화답하고 정신의 능력을 채워줄 수 있는 공간이다.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서 기차만 타고 다니는 케이스도 있다고 한다. 너무 깨끗하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돌아다니기는 또한 싫어서. 많이 돌아다니고 싶어서. 중국이 일부러 인터넷 사진의 대륙 시리즈 같은 것으로 더러운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음식은 맛이 없다고 한다.
사람은 무엇인가? 무엇을 가장 오래 하는가? 나는 영화를 가장 많이 본다고 생각한다.
何事人民? 何事如長? 陽文旅莊也......
마음이 울긋불긋해지면, 여행 공간이 넓으면 넓을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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