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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영원한 김홍도

by 마음대로다 2019. 3. 4.

영원한 김홍도 






나와 같은 사람이 김홍도를 언급한다는 것은 재능의 낭비일지, 아니면 안치환일지 모르는 일이다. 그럴 것이다. 아무리 즉흥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기본적인 예열은 하는 것인데, 보신각의 종을 치기 위해 놓여진, 공중에 들려진 나무 기둥만이 아니라, 사람들 각자 집에서 하나씩 기둥들을 뽑아온 것 같은 풍경이 엿보이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중산층 집안의, 기둥 뿌리가 뽑히면, 어떻게 되는가? 재밌다고 하는 사람이 있겠으나, 걱정도 심각한 미학의 주제인 것이다. 모두 다 재미로 태워주는 것이지만, 그것만큼은 걱정의 자기 자리에 있게 하면, 뒤늦게 각성하고는 얼마나 슬퍼하겠는가? 우리 옛날 영화 초우도 그렇다. 남녀 주인공 모두 지금 살아계시지 않지만, 그것도 단원 김홍도와 연관이 있다. 신성일은 공장에서, 노동자로, 자유로운 영혼처럼 지내고 있고, 문희는 프랑스 대사 사택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지만, 그 집 딸인 것처럼 연기한다. 그러나, 문희가 워낙에 예뻐서, 그와 같은 존재의 희롱은 있는 것이다. 홍도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하롱베이는 어디에 있는가? 사람의 미감은, 우리들의 것은, 우리들 홍도를 매우 늦게 발견하게끔 한다. 그 무엇으로도 김홍도를 이야기할 수 있고, 그 무엇으로도 만족스럽지 않으며, 내가 옛날 집에서 자다 일어나, 전구를 켜고, 아직 티비나 라디오 같은 것이 사람의 의식을 산만케 하기 전의 일이기 때문에, 착한 사람은 굿한 문장들로, 밤하늘의 은하수와 같을 때에, 윤동주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문장이 그렇게 좋다고 하였는데, 도리어 그가 빠지고, 릴케가 기억이 되는 호전 현상 같은 것, 현상, 김홍도의 그림이 오래된 종이의 더더욱 낡은 기분에다가, 섬세한 공장제 점묘법의 것이긴 해도 그림이랍시고, 방금 일어난 한국 청년의 눈을 찌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다할 미학사가를 가지지 못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운동장에서 백미터 달리기를 하면, 잘 달리는 사람이 그렇게 곱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해서, 병아리 같았던 출판사 사람들이 금세, 그와 같은 학교, 강단,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갔기 때문이다. 의식의 대립 같은 것, 금단 서적 같은 것, 그것은 대게가 외국의 이데올로기와 결부되어 있었다. 우리의 것은 좀체 그럴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것의 위대한 유산은 미술평론가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오씨엔 드라마 손더게스트만 해도 그렇다. 평론은 첨단일 수 있으나, 그럴 가능성이 작품들보다 높으나, 작품은 순수의 노래, 평론은 경험의 노래, 그러나 작품이 백마처럼 학교의 정문을 빠져나가면, 사람들은 그만 샤프심보다 약한 평론의 의지가, 그마저도 끊어지고,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손더게스트라는 드라마가 너무 잔인해서, 사람들에게 금단의 서적이 된다면, 어째서 하다가? 그와 같은 포섭에 우리는 사로잡힐 수 있다. 그러나 김홍도의 그림들이 금단의 작품이 된다면, 우리는 극심한 지진과 더불어, 굉장한 크기의, 그것의 뜻을 우리가 죽고, 싸우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일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조선에 대한 미학적 통찰이 없다. 성리학적 관념주의에 빠져, 인류 역사적 발전을 도모하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그럴 듯 했다. 그러나 힘있게, 그것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전 세계에 외로이 떠 있는 섬과 같고, 총체적이며 우주적인 우리네 국토의 과거를, 다만 이데올로기 비평의 형식으로 조합하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털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세상은 별로 좋아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성리학이라는 것은, 싫어학이기 때문에, 악하거나 나쁜 것이 아니면, 병리적으로 싫은 것을 끌고 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사람이 털이 많으면, 처음에는 간지럽지만, 결국에는 건강해 보이고 좋은 것이다. 나의 이런 필법도, 자세히 보면, 항목이기 보다는, 굉장한 두께와 숫자의 털일 수도 있는 것이다. 털이 많은 남자와 여자가, 말도 서글서글 잘하고, 남자는 힘이 좋고, 여자도 몸매가 좋다면 얼마나 성경적인 사람들이겠는가? 털은 검정색이다. 오스카 와일드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것도, 대단히 자기 성명학적 의미의 회전이 담긴 것이다. 그것은 흑발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고, 우리들 산업화 초기에, 수많은 와일드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범우주적인, 문예비평적인 미스테리가 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천경자를 싫어했었다. 눈빛은 좋았지만, 어려서부터 조합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 이모님 이름이 경자였는데, 사투리가 약간 이상했었다.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고 하는데, 약간 말을 길게 끄는 것이 연극하는 사람 같았다. 그러니까 그와 같은 분류법이 생기기 전에, 어린아이가 세상을 보는 수많은 기둥 중에 하나였던 이에게서, 완벽한 순열이 발견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모는 적당히 예뻐야 하고, 말이, 말 끝이 강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숙모는? 오춘은? 매형은? 사촌 동생은? 인간에게는 그와 같은 생활 세계에서조차 선험적인 것이 있는 것인가? 천경자가 그랬었다. 그렇게 애국 하는 사람을 받아주는 색들이었지만, 이은하가 노래를 부르고, 보다 오래 전에는 다른 여자 가수들이 노래를 할 때, 완벽한 여성 기둥들을 본 것은 아닌 것이다. 어떤 한 곡, 어떤 날의 컨디션, 그리고 옛날에는 거짐 생방송이었기 때문에, 립싱크 세대는 모를 수 밖에 없는 인삼이나 홍삼 느낌이 있었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떤 바구니가 큰 방에 두 개, 그것도 크게 있어서, 인형의 눈을 달아주다가, 마음에 드는 인형이면 여기에, 들지 않는 인형이면 저기에 둔다 싶으면, 그 빠른 시간 속에서는, 천경자는 싫은 쪽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오죽헌 우리나라에 작가가 없고, 화가가 없고, 여성 화가가 없고, 바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어린왕의 수렴청정 앞에서 아우성을 치면, 뒤늦게 좋아하는 바구니에다가 천경자를 옮겼을 것이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마치 도가도 비상도 같은 것으로다가. 진짜 찢어지게 가난하면, 군대에서, 휴가중에, 대학 다닐 때에, 점심을 거른다 싶으면, 그래서 기숙사에서 밥을 먹는다 할 때, 지방 유학생들은 밥을 많이 먹었는데, 점심을 먹지 않는 칼날 능선을 지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나는 그들과 활동 공간이 달랐는데도, 신기하게도 비슷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윤복희는 달랐다. 윤복희는 정말 노동자 대통령 같았다. 그러나 천경자가 예뻐 보일 때도 있었던 것이다. 불쌍하고, 미친 것 같고, 장르를 미친 듯이 채우는 것 같고, 사람들의 의식은 장르와도 같아서, 어느 때는 이불처럼 개 있기도 하고, 어느 때는 장롱처럼, 그 안이 사각형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나와 같은 주자학생은 여간 해서는 들어갈 일이 없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그리로 피신해 들어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중고등학교 미술 교과서로, 칼라의 쪽편 사진으로, 천경자의 그림을 접할 때는, 어느 때는 재능이 있는, 다정한, 한국 취향의 외국 작가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었다. 자기도 그런 것 같았다. 어떻게 이 나라에는 미술 작가가 이리도 없는 것일까? 사람들이 설이랍시고, 추석 명절이라고 고향에 내려가면, 거의가 김홍도의 세상이었다. 그것이 정확히, 어느 때에 사라진 것인지는, 조사되지가 않았다. 김홍도가 농삿일을 할 때는, 그나마 격조가 있고, 내면적인, 상호적인 예의가 있고, 우리들의 따뜻한 정감이 있고 하지만, 탈춤을 출 때는 벌써, 그때부터 벌써, 시기와 반목이 생기는 것 같았다. 얼마나 많은 한국 만화가들이, 김홍도의 독재 아래서부터 시작했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김홍도를 의식한 것이 아니라, 그림을 열심히 그리다보니까, 어느새 김홍도가 있는 자리에 있고, 그것을 지나고 있고, 작품을 계속해서 만들고, 그리고, 형이상학적 코딱지를 파고 들어가 보니까, 끊임없이 그리로 도망가는 존재처럼 있는 것이다. 이두호도 그렇고, 이승만도 그렇다. 나도 그림을 그렸었다. 어머니가 양장점을 해서, 포장지가 항상 많이 남았었는데, 순전히 그 종이가 아까워서도, 혼자 할 일이 없어서도, 연필로 거기다가 만화 그림들을 많이 그렸었다. 나에게 벌써 대상이 생긴 것일까? 아니면 재미를 향한, 끊임없는, 아무 의미가 없는 촌철 같은 것이었을까? 대단히 미학적이긴 하다. 그런 사람을 여간 해서는 발견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아주 나중에는 흙에다가, 결정적으로 돌이 몇 개 박혀 있는,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리다가 보면, 소리가 난다. 정말이지 그런 것들이 모여서, 인간을 이루는 것일 것인데, 지금 우리 어린아이들은 어떻게 자라는 것일까? 어째서 김홍도는 그와 같은 단순한 필법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에 불과한 것일까? 그저 그렇게 민중적인 스타일로도 여길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늘, 그리고 항상 뺀질뺀질하고, 많이 먹어서, 혹은 먹지 못해서 노예가 되어, 기름기가 넘치는지 모르는 것이다. 김홍도가 무시무시하고, 미스테리우스한 것은, 한 번 마음 먹고 그렇게 보고자 하면, 죄다 매난국죽, 거의 모든 그림들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신윤복이 필사적으로 미인도를 그렸던 것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통을 따르는 것이 어려운가? 아니면 처음을 달성하는 것이 어려운가? 어째서 김홍도는, 부모가 자기를 홍도라고 이름 붙여서인지, 조금도 전통이 없고, 기름기가 없는 것일까? 신윤복의 월하정인을 보자. 얼마나 기름기가 넘치는가?......


오직 한국 사람들만이 그와 같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떨어지는 것일 수 있다. 여행지의 유명한 스테이크를 먹고, 다음 식사로는 시레기 된장국을 먹은 다음에. 다나 위너의 씰드위드키스를 들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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