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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드라마라는 DMZ: 두 개의 왕.남.에 관한 소고

by 마음대로다 2019. 3. 5.

드라마라는 DMZ에 관하여





그때 그는 내게 모든 것이 연결된다고 했다. 스메르짜코프. 아름다운 소설은, 대체 어떻게 흘러가는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알려주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까라마조프 형제들 중에서, 스메르짜코프 조차 표도르의 아들이었다고 소문이 돌 때는, 이것이 존재의 격변인지, 아니면 우려 먹는 사골 국물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내게 모든 것이 허용이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허용. 허균. 나는 그 말을 듣고, 그의 의도 그대로, 이상하게 공부하기가 싫었다. 까라마조프 형제들 전체가, 마음에 들었다가, 그저그랬다가, 대단히 아름답다가, 그저그랬다가 했었다. 우리가 대학을 다니면서, 뭐 하나를 읽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부모님을 두는 것으로다가, 스스로 최면되어 바뀌는지 모른다. 우리가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은, 책은 탄광의 광부 같지만, 사람을 그렇게 갑갑하게 만들지만, 드라마는 사람을 디엠제트에 관광하게 만들고, 하나는 적을 보여주고, 하나는 군인들의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다. 가칠봉에는 수영장이 있는데, 수영도 하기도 하지만, 만국기가 펄럭이는 철봉이, 국기 고리에 부딪히는 소리가 그렇게 듣기가 좋았었다. 브라질의 해변 같은. 그것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언젠가 교회 선배가 내게 그랬다. 여름 해변가에 가본 적 없지. 현균이가 가면, 질질 쌀거다 했다. 나는 꼭 가보고 싶었다. 그와 같은 예언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소설 속의 마지막 아들은 어째서, 내게 그와 같은 사실을 알려주었고, 교회 선배는 어째서 공부하는 사람은 해변가 한 번 가는 것이 기적과 같은 확률이라고 말해주었던 것일까? 해변가를 간다는 것. 그것은 가족 단위도 그렇고, 친구 단위도 그렇다. 공부도 사실, 이것이 중요한데, 이미 해변이고, 하루키의 소설 제목으로도 있지만, 생각은 가족과 같고, 그것의 연속은 친구가 아니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짜 해변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아버지가 부자면, 당연히 모든 사시사철을 재밌게, 뜻깊게 보낼 것이다. 부자지간에, 부자가 세계관의 끝인가? 부자는 어떻게, 소설은, 드라마는, 생각이 뿔처럼 진행할 수 있고, 낙타구멍은 어떻게, 그 슬픔의 차돌 격파는 어째서 불가능한 것일까? 우리는 어려서 차돌을 격파해보았다. 정말이지 깨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 재밌고, 박진감 넘치는 영화를, 어째서 보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공부가, 그것을 충분히 대신하기 때문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지 않았고, 똥 싸는 장면이 있어서, 왕이 된 남자를 이번에 재밌게 보고는, 유튜브로 몇몇 장면을 보았는데, 거짐 비슷한 구도였던 것이다. 같은 배우도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효주가 그렇게 예쁜 것이었다. 그것은 뜻밖이었다. 영화 프로그램에서 볼 때는, 공부로써 차돌을 격파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 그와 같은 자갈밭 강변에 놀러간 사람들 같았던 것이다. 그냥 예쁘게 입었네 수준이었다.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이병헌도 머리도 덜 깎고, 말투도 여간 왕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광해라는 사람은, 인물은, 내가 국사학과를 가면 탐구할 대상이었을까? 국사학과를 가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야 하는가? 게으른 사람은 공부할 수 없는 것이 대학 공부인 것이다. 고등학교까지 나와서, 공부가 어느 정도 체질이 된 사람만이, 대학에서 누워서도 책을 읽을 수 있고, 사랑하고 섹스하면서도 관념적이며 이념적인 고민의 촛점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등학생 특별활동처럼, 아직 자기 자신에 대해 눈을 뜨지 못하고, 새끼줄로 허리를 묶어, 우루루 견학가고, 도덕적인 레토릭을 배우고, 그것으로 한 해가 가기 전의 시간 같은 것에도 개선의 여지가 없는 얼굴을 얼마든지 보일 수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선자가 역사 속에는 많다 해도, 바로 앞에 있는 선배나 동료, 때로는 후배가 싸가지 없고, 누구는 섹스를 많이 해도 관념의 높은 성이 그대로이나, 그들은 마치 섹스를 일만 년 동안 한 것처럼, 관념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는 것이다. 이상하게 결탁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라스푸친의 티비를 계속 쳐다보다가, 졸업이라는 칼날에 한이 많은 조선 민중이 되었다가, 어쩔 수 없이 일본군 장교가 되었다가, 하루에도 빛깔이 셀 수 없이 바뀌는 곤충처럼이나 되는 것이다. 가면라이더의 요즘 것들은, 그와 같은 프라즈마 현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관념의 성이 그대로인 사람은, 자연적인 것처럼 보일 정도로, 섹스를 많이 하면 할수록, 국가의 부가 되고, 대학의 그림이 되며, 어디 표현할 길이 없는 아름다움이 되는 것이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관념의 성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여자가 붙으면 붙을수록, 불쌍하고, 서민 같고, 어느 때는 짜증이 나고, 반드시 어디 이상한 권력 집단의 하수인이 될 것 같고 그러는 것이다. 마술사의 신체 절단 마술은 결코,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에게, 남자들에게, 여자들이 붙는 것이다. 그것은 대학이라는 슬픔 때문이다. 대학은, 모르는 것들의 아마존 정글과도 같다. 단순해지고, 그래서 외면하고, 전문성이라는 핑계로, 금방 뽀로로와 그의 친구들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다 설명이 된 것 같은 불안이 있다. 



그렇게 왕남이라는 것을 이세영 버전으로 보다가, 사람들이 놀랄 정도의 호연에 나조차도 그렇다가, 그것의 여파로 과거 영화 필름의 내용들을 보는데, 나름 괜찮은 것이었다. 어째서 차돌 격파를 하는가? 공부로써 차돌을 격파하지 못한 우리나라. 우리 민족. 우리나라 문학과 철학. 왕남이라는 영화가 있을 때, 나는 정말 고통스러웠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내게 주어지는 고민들을 조금도 덜어낼 수가 없었다. 인간은 관념적인 존재이고, 내 공부가 그것의 모순적인 흔적이 되겠지만, 죽기를 결심하는 것이 얼마나 자주 있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오토바이를 탈 때, 대림과 효성, 혼다의 노동자들이 나를 등에 태우고 다니는 것 같았다. 도로공단 사람들이 카페트를 깔아주는 것 같았다. 그만큼 나는 고통의 착각 속에 있었고, 버드와이저, 뼛속까지 유대인이었던 것이다. 광해는 나의 유일한 빛을 조롱하는 것처럼, 그런 조롱새처럼도 보였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 하나, 나의 문턱을 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똥도 십년 가까이 지나면서 말랐을 것이고, 가루가 되어, 도리어 사과의 빛깔이 되었으면 되었지, 그대로 있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차돌을 격파하는 것이, 북한의 특수군 훈련 같기도 하고, 그런 것이라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우리들 과거의 역사가, 잘 마른 명태처럼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어째서 우리나라는 공부로써 차돌 격파를 하지 못했던 것일까? 어째서 김소월이 강변 살자면, 강변에서 살자는 생각만 하였던 것일까? 남녀 관계의 끝, 어느 빈, 허름한, 몇 달 전까지는 사람이 살았을 것 같은, 오래된 강변 가옥에서, 남녀 대학생이, 하나는 철학과 킹카, 하나는 문학과 퀸카, 여행을 갔다가 여섯 시간 이상을 섹스한 것으로는, 적어도 그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한 것일까? 관념의 성이 살아있지 못하면, 돌에 맞아 죽을 것이다. 그리고 대학은 거대한 싱크홀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나마 배운 것이라도 억지로 기억한다면, 그 흉내라도 낸다면, 방법론이든, 원래 그렇든 간에, 흉내주의자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기 때문에, 아쉽지만 기쁨의 소리마저 들릴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남다른 데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사물을 경험함에 있어, 차만 타도 머리 한 군데가 부서지는 경우가 많았다. 고문을 한다 싶으면, 국가가 달라지는 것이다. 사람이 너무 촌스러워도 좋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