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클래식이야기

이성계와 이방원

by 마음대로다 2019. 7. 7.

이성계와 이방원 






우리나라는 불쌍한 데가 있다. 죄다 이방원이기 때문이다. 이방원은 성명학적으로 이성계의 아들이기 때문에, 세상에 아들과 아버지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인 것이다. 그래서 이방원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방원만 있는 것에서는 사람들은 불만을 가지며, 심지어는 두려움까지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발음하고, 연출하고, 그것만 말하는 것에서부터 충분히 연극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성계가 있고, 이방원이 있고 하는 것에는, 좋은 집과, 아내, 프랑스 조경 여자고등학교 같은 것이 느껴지나, 이방원만 열 번 말하고, 백 번 말하고, 김구, 천 번 말하는 것에는, 절정의 일본 문화나, 폭력적인 홍콩 사람들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 연관이 없다. 사람들은 좋은 프랑스 조경 여자고등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어하지, 폭력적인 기생충이 눈에 불을 당기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야곱이 장인의 집에서 일을 할 때도, 그와 같은 폭력적인 기생충을 잘 알아서 돈도 벌고, 결혼도 하고 할 수 있었던 것일 것이다. 이성계가 있다면, 얼마나 우리는 편한 삶을 살 수 있겠는가? 정말 기라성 같은 일본식 표현이라는데, 그런 국사학자가 있어서, 틈만 나면 왕과 동일시가 되어서, 혹은 왕비, 혹은 맹자, 그렇게 흥분하다가 대하 역사 드라마가 끝나는 시간을 단절하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가끔은 화성에도 다녀오는 듯한 낯설게 하기에도 성공하고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러나 현상의 모든 바깥, 새의 부리에는, 그런 것이 없는 것이다. 옛날 옷걸이에 옷을 걸어두면, 귀신이 나온다. 그것은 옷장 안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새 술은 새 부대에 했던 성경 말씀도, 일종의 트라우마 때문에 그렇게 표현을 바꾸었을 것이다. 우리는 의로움이라고 말하지만, 늘 언제나 말하는 것이지만, 사탄에게도 패션이 있는 것이다. 남자들이 옷에 초월해서는 책을 읽는 것이란, 한자 책의 표현처럼, 허리 띠를 풀고, 어느 여자 다리가 긴 것인지 탐닉하는 것과 생명 공학적으로 조금도 다르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반드시 책은 침략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자가, 독일의 한자 동맹, 침략군에게 백기를 든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여자는 옷에 신경을 많이 쓰고, 그만큼 책에서 멀어지며, 그만큼 인문학적인 시화전에, 과일주에, 관심이 많이 가는 것이다. 윤건의 갈색 머리도 그런 것을 노래하고 있다. 맥주에 머리를 감으면, 머리가 갈색으로 변한다고 했었다. 맥주는 무엇인가? 무엇을 씸볼리즘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성공하지 못한 독일 철학을 뜻하지 않는가? 남자도 독일 철학이 아쉬운데, 남자와 함께 대학에서 점심을 먹었던 여자는 오죽하겠는가? 너무 우리들의 현상학적 카메라를, 남자의 도전과 좌절에만 맞추면 곤란한 것이다. 고개를 돌리면, 마치 두 번 산 것처럼, 김연아 같은 예쁜 여자가, 내게 스끼데쓰 하고, 반드시 그런 여자가 있었다 없었다 하는 것은, 귀신존재론적으로 별로 중요치 않는 것이다. 그런 여자가 나의 곤란한 그래프를 함께 보고 있는 것인 것이다. 함께 공부하고, 함께 시험을 보며, 함께 발표도 하는 것이다. 물론 발표는 따로 할 수도 있다. 어떤 문학 입문 시간에, 그것을 둘이 함께 교양 과목 신청하다가, 다른 조에서 각각, 발표를 주도하였다면, 주드로, 사람들은 은근히 역시 철학과 하였을 것이다. 그와 같은 것은 역사에 남지 않는다. 기록되지 않는다. 허구한 날, 쓸데 없는 조선의 역사나 배우고, 사탄이 지워져 있는 서구의 슈퍼맨 역사나 배우고 하는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 문학이 존재론인 것 같다 하는 말을 하였다. 다음 말이 시원치 않았지만, 목적 없는 일본 왜구의 붉은 구슬이 내게 조심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와 같은 인사이트는, 더러 천재적인, 혹은 모범적인, 모범택시를 타고 얼마나 자주 대학 자취방 있는 곳까지 갔는가? 병점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혹시 양산리 가십니까? 네 그런데요? 여기도 양산리 가는데, 함께 가시죠? 택시비도 아낄겸. 처음에는 그랬던 것이, 나중에는 항상 두리번 거리는 일이 되었던 것이다. 내게는 그것도 급식비 같았다. 그것을 좋게는 보았다. 그런데 강원도 양구로 갈 것처럼, 거기서부터 나는 걸어들어가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가다보면, 가로수들이 헤겔의 시스템처럼, 만화가의 비천무처럼 저녁에 반짝이고 있었다. 문학이란 그렇게 존재론인 것이다. 처음부터 그랬고, 문학가의 숫자를 확인할 때, 문학과를 나온 사람을 쳐주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이며, 철학과를 나온 문학가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 야스퍼스의 한계상황 같은 것인 것이다. 사람은 굼벵이처럼, 겨우 회전하는 범주 안에서, 지금껏 하지 않았던 것의 빈틈을 찾는 것이다. 그것은 직업병과 같고, 남녀가 싸우는 공식이기도 하다. 그들이 죽어도, 천사가 되어 다시 만나는 것은, 그것의 원인과 결과가 너무 하찮기 때문이다. 갈색 머리는, 윤건의,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를 닮기도 하였다. 어쩌면 대놓고 끌어온 것일 것이다. 영자의 전성시대는, 영화의 전성시대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얼마나 클래식 연주자와 결혼하면, 나와 같은 사람은, 쾌락적인, 초절기교적인 삶을 살겠는가? 그것은 그릇된 것이고, 참혹한 것이며, 단순한 것이고, 일본식으로 말하면, 입입금지 같은 것인 것이다. 때로는 허리를 굽혀 들어가야 하는, 민들레의 영토인 것이다. 적당히 모르고, 적당히 알고, 적당히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다르고, 늘 언제나, 앞으로도 영원히 고만고만한 작가들이 나오기를, 맑스와 엥겔스 중심의, 비주체적인 정신사가 우리에게 예시되었던 것이고, 우리가 그것에 그나마 자연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반응하면서 지냈던 것일 것이다. 원래 북한이 영어도 잘해야 하는 것인 것이다. 일본이 영어를 더 잘하고, 문학도 더 잘해야 하는 것이다. 홍콩 중심의 중국이, 영어를 처음부터 잘하고, 에머슨도 잘해야 하는 것이다. 겨우 풍우란 같은 작가가 나와서, 아무런 이념도 없는 철학사 정리 같은 것을 해내야 하는 것인 것이다. 원래 우리는 그렇게 약정이 되어 있었다. 도올은 일종의, 아무런 음반 살 돈 없는 돌비 시스템처럼, 은주사 어딘가에서 부싯돌을 소리내는 것 같았다. 겨우 석정수를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다른 분야에 걸쳐서는 부도체를 전달할 때가, 이것은 너의 몫이라면서, 많은 것이다. 남자도 대학이 아니면 헤겔 철학을 하지 못하는 것이 가슴이 아픈데, 남자와 함께, 남자와 더불어, 때로는 마음으로만 남자를 알았지, 이상하게 절대 그럴 일이 없겠지만, 철학의 주파수 안에서는 여자들은 독립기념일일 때가 많은데, 그리고 문학과나 철학과 여자들은 술을 그렇게 많이 먹는다. 아무튼 그렇게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던 그림자가, 화장이나 옷차림, 그런 것의 칼라일 철학을 모두 벗어버리고, 꽤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남은 것은 영자의 전성시대이고, 윤건의 갈색 머리인 것이다. 




구스따프, 상징으로써 분석하면, 제주도만 남자이고, 주자이며, 한반도는 그것의 자지 그림자일 수도 있다. 

 



울릉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