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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샾

슬픈 인간의 의식

by 마음대로다 2019. 12. 7.

 

 





포토샵을 하다 보면, 행복의 선이 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나의 전 신학교적 시대를 떠올리기도 하고, 신학교적 시대를 떠올리기도 한다. 후 신학교적 시대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기록이 어려울 정도로, 아무런 사회적 경험이 없지만, 후 신학교적 시대라고 해도 상관이 없다. 사람들은 점을 단순하게 보고, 선을 단순하게 보지만, 점을 모르겠더라도, 선을 무시하게 되면, 급격하게 늙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옛날 지식들은 대게가 선이 붉은 선과 같았다. 슬픈, 초록선과 같았다. 가곡들도 그렇고, 작은 시들도 그랬다. 우리가 우리 옛날 예술들을 드디어 무시할 수 있게 된 것은, 우리들의 건축들이, 모든 물체는 어떤 사람이 말하길, 평면과 입체로 나눌 수 있다고 했는데, 그런 건축들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영화들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입체를 빼고, 건축을 빼고, 영화를 빼면, 사람들은 급격하게 늙고, 짐승화가 되고, 사나워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김치를 먹을 때, 그것은 선과 같았다. 예술가들은, 다만 김치를 닮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래서 김치를 담그다 하는 것이다. 김치를 닮기만 해도, 우리 예술은 성공한 것이었다. 지하철이 그렇게, 이호선, 이대역, 선을 닮았다. 내가 한 학기 서강대 영문학과 대학원을 다닐 때, 나를 좋아했던 여학생이 있었는데, 몇 명 있었는데, 그렇게 지옥의 관점에서 보면, 슬프고, 안타깝고 그렇다. 결국, 우리는 마네킨처럼 헤어졌지 않은가? 제법 일상의 대화를 나눴으면서도, 같은 대학원 학생이니까, 우리는 안녕, 안녕, 안녕리를 말하면서 헤어졌던 것이다. 선을 말하다 보면, 신칸센도 있지만, 우리가 오이도를 지나, 제부도로, 거기서부터는 나의 봉고 트럭으로 진행하는 연결동작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을버스 같은 개념. 그리고 어찌된 영문인지, 바다를 지나, 대륙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선들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서울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가리켜 좀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어떤 일련의 학자들, 그들을 가리켜 밤섬의 유기체 지식인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신학교수는 설산의 설인 같은 사람들일까? 구체적으로 상상하면, 영화를 찍는다 할 때, 진짜 신학교수를 섭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장면과 장면이 거듭될수록, 장면 정권처럼, 우리가 선 안에서 숨을 쉴 때, 겨우 자가 인공호흡을 행할 때, 빛 속에서, 빚 속에서 만났던, 신학교수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 티비 문학관은 부단한 신학 교수, 혹은 철학 교수, 역사, 문학 교수와의 담화가 아니었나 싶다. 우리는 학생들의 시위의 목소리가 잦아든, 학교를 그렇게 탐방하다 보면, 빛이 좋은 어느

 

 

아무튼, 어느 대학에, 사진이 하나 걸려 있으면, 장땡 같은 것이다.

 

용접사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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