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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들러스리스트

by 마음대로다 2019. 12. 10.














만화는 생명인가? 만화는, 그러니까 그림은 생명인가? 우리가 생명이라는 말을 생명이라고 하니까 생명처럼 들리지, 만약 그림을 생명이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그림이 있는가? 그녀에게 그림이 아직 남아 있는가? 이 그림의 그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말한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림이 정말 생명처럼 느껴질 것이다. 어린아이가 만화 그림을 그리기 좋아한다면, 그것은 다만 만화를 좋아한다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화가가 된다는 것도 아니다. 아직은 그림이 그에게는 생명인 것이고, 생명이 부지런히 표현을 익히고 있다는 것 뿐이다. 그림을 좋아하면, 나중에 학자가 될 수도 있고, 과학자, 엔지니어, 치과의사, 디자이너, 철학자 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국어학자, 외국어학자, 경제학자 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맨 처음, 자기를 분열하고, 복제할 때, 그것이 그림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림은 생명인 것이다. 나중에는 그림에서 빠져나올 수 있고, 그림을 좀더 생명적으로 그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맨 처음의 키에 안주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만화책을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 두꺼운 겨울 어느 때쯤에, 우리가 안주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투명한 소주를 마시고, 형태를 생각하면, 논문도 나올 수 있는 마른 오징어를 먹는 이유는, 숱한 소주 안주를 생각하고, 실험을 했어도, 마른 오징어처럼 궁합이 잘 맞다는 것이 없어서가 아니겠는가? 궁합이 잘 맞아서, 우리는 어디에 가는가? 어디로 가는가? 궁합이라는 말 자체가, 하이데거식으로 말하면, 어디로 가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림을 그리고, 걸음을 걷는다. 그림을 걷는 것이 되는 것이다. 소나무 그림이, 향기가, 향기가 전부인 세계에서는, 우리는 분명 여행을 다녀온 것인 것이다. 그것을 있다 말하기도 어렵고, 없다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존재는 그 말 자체가, 있다가, 없다가 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이중 명사는, 극동의 관념적인 천재성은, 거의 모든 것이 그와 같다. 있음과 그것의 속성 같은 진행도 있다. 있음은 없음으로 진행한다. 그것은 착상이 빼어난 것이고, 그 옛날 사람들도, 부지런히 노력하면서, 마침내 얻어낸, 세계 색상, 반도체였던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철학성이 없거나, 철학자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 없는 것은, 그것이 철학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이, 철학 이후일 수도 있기 때문인 것이다. 철학 이후가 있다면, 그때도 철학을 하겠는가? 쉬지도 못하고, 다음 정차역으로 향하겠는가? 아니면, 적어도, 잠깐이라도, 바깥에 나가, 가락국수라도 먹고, 호두과자라도 살 수 있겠는가? 쉼이라는 것이 능력이듯이, 철학 이후마저도 철학인 것이다. 우리는 생각과 행동을 그렇게, 두 가지의 음절로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의미적으로 불완전하더라도, 깊은 음악 속에서, 상념 속에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쉬지 못한다. 끝없이 철학 속으로 빠지기 때문이다. 철학 이후가 되면, 철학은 사라지고 만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학교에서, 친구들과 그림을 그렸었다. 나는 내가 아주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림을 아주 잘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그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나중의 나를 생각하고는,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공중의 형태들을 따다가, 하나로 만들면 좋지 않겠는가? 너무 표현에 매몰되어, 같은 색에 빠지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내가 미술대학교 교수, 혹은 미술전문대학교 학장으로서 생각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매몰되었다면, 서양의 미술이 완승한 것이라면, 지금부터는 주자학으로 나아갈 필요도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와 같은 숨가쁜 진단을, 어떤 한국 IMF 관계자들과 이야기 나눈 적이 없다. 말을 하고자 하였으나, 발표를, 항상 다른 이슈가 생기고 터져나고 있었다. 내 어린 친구는, 그림을 그리고는, 테두리를 검정색으로 다 칠하고 있었다. 내게는 한심스러운 작업 같았으나, 선생님으로부터 칭찬까지 듣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나의 뇌가 약간 짓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나는 나의 판단을, 나의 미학적 세계를 철회해야하나, 그런 압박을 받았던 것이다. 나는 그림을 다 그렸고, 친구는 선생님의 칭찬에도 빛을 받지 못하는 작업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가장 늦게까지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도 미술학자였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그와 같은 르네상스를 맞이하지 못했다. 그래도 생명이, 그림이, 그리스도가 아직 끝이 나지 않는 때였던 것이다. 내가 아주 잠깐 그렇게, 테두리를 진하게 그림을 그렸던 때가 있었다. 선생도 학생도 없던, 나만의 텅빈 아뜰리에에서 그랬던 것이다. 나는 불안하였고, 그림이 내 대신 뚜렷한 것이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겨우 몇 장 그렇게 그리고는 그만두었던 것이다. 내 눈으로 보기에, 사람은 늘 언제나 빛처럼 가벼운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정색 테두리는 겨울 깊은 어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불쌍하였으나, 그것이 분명치 않아서, 그것을 보이지 않기로 하였다. 친구가 같은 모습이었지만, 테두리만 잘 그리지 않고, 내용도 좋고, 다른 색감들도 괜찮았었다. 그리고 그림을 다 그렸을 때는, 내가 잘 그렸다고 칭찬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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