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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감동은 헤겔인가?

by 마음대로다 2020. 1. 24.

감동은 헤겔인가?






경자년 새해를 맞이해서, 우리 중국이 열병을 앓고 있다. 원래 학생들은 학교도 싫고, 집도 싫은 법이다. 하물며 고답적인 인간들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붉은 색만 보면, 중국 전통과, 공산당이 그렇게 죽이 잘 맞는다. 그리고는 뱀부, 헤어지는 것이다. 더 이상 말을 할 줄 아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금 중국의 부요함이, 학생 제군, 혹은 학생 참왕, 참외, 그것은 왕을 뜻하는 것인데, 우리는 참된 일본인, 그러니 참외는 한국을 침탈하지 않은 것이니, 왕의 개념이 늘 그렇게 신비한 것인 것이다. 왕이 지폐의 세종대왕 그림처럼, 그것을 갖고 있는 이가 모두 왕이라고 한다면, 지구는 종말을 앞두고, 그나마 왕은 많았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종말인가? 그래도 왕은 많았다. 그런 것이다. 왕은 짐이 간소하다. 그리고 음악을 듣고, 음악과 함께 걷는다. 선별은 왕족의 특징이다. 중국은 왕씨가 많다. 만두도 우리처럼 작고, 피도 얇은 것이 아니라, 두껍고, 크기도 왕만두가 많다. 그리고 모습들도 왕씨 성의 사람들처럼 생겼다. 그것은 한국 사람에게 뿐 아니라, 서양 여성에게도 그랬던 모양이다. 한국은 선비처럼 생겼고, 중국은 눈이 크고, 왕처럼 생긴 것이다. 얼마나 왕은, 슬픈가? 겉모습과 믿음 같은가? 중국의 인구가 십 몇 억이니, 그 중에 왕족이 삼천이나 사천 정도는 되는 것이다. 그리고 왕족은 얼마나 피신하였고, 스스로의 신분을 숨기고 살았는가? 우리 성씨 중에 김 이 박이 그렇게 많은 것처럼, 중국은 숱한 역사 속에서, 왕족들이 숨은 역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수준이 높다. 망국의 한이, 이런저런 한이 그렇게 많다. 그래서 마땅한 지식은 없다. 원래 한이 많으면, 긴 담배를 피우고, 음악에 젓고, 마작을 하며, 비내리는 소리에 젓고, 항상 붙어다니는 법이다.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하고,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공부를 많이 하고, 체육에 힘쓰고, 혼자 다니고, 항상 음악을 듣고, 어학 공부를 많이 하면, 왕씨 성이 아니라, 김씨나, 누르하치, 이씨, 박씨 성의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감상에 젓고, 양명학에 젓는다고, 반드시 공부를 못하라는 법은 없다. 그런데, 항상, 그렇게, 그만큼, 사람들을 김지연 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오늘도 프로그램에, 장신인 여자가 힘도 좋아서, 일등하는 것을 보았고, 작은 체구의 여자가, 당차서, 이등하는 것을 보았다. 양명학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호반의 도시 춘천에, 그나마 춘희가 있지 않고, 군부대가 많은 것이 다행인 것이다. 내가 헤겔을 언급하면, 수천명의 중국인들을 피카츄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알고 싶으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헤겔을 알고 싶었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아는가? 나도 잘 몰랐다. 우리나라는 불쌍하고, 서양에 헤겔이 한 사람 있는 것처럼, 어떠한 사람 한 사람이 없는 것이다. 과찬에 살고, 과천에 살며, 인명은 충북 제천에 살고 그렇다. 제천 국제 음악 영화제에 살고 그렇다. 헤겔을 아는 척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브레이브 하트. 용기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저마다 야만인을 조상의 역사로 한 명쯤 가지고 있는데,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잘 모르지만, 그 쪽이 그렇게 코난이나 바이킹들이 많아서, 헤겔을 말하려고 하면, 그들은 말살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학살인 것이다. 용기는, 옛날부터, 그릇에 불과했던 것이다. 왕뚜껑에 사나운 말들이 있었던 것은, 서양 쪽의 브레이브 할트들이, 컵라면을 맛있게 먹고, 국물을 맛있게 먹고, 자기들은 용기가 없어서, 그런 재밌는 음식 제품을 못 만든다 그랬던 것이다. 그러나 야만인들은 구조주의적으로 확대재생산되는데, 어째서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일까? 그런 의문들을 자기들도 갖게 되고, 용기가 한국어로 용기라는 사실을 알고는, 전율미궁하였던 것이다. 단순한 것이다. 용기와 잔혹함의 만화책은 많이 보는데, 헤겔을 읽고, 글자 한 자 쓰지를 못한다. 철학이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름 모를 들꽃이기 보다는, 다만 살인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기의 관심을, 좋은 얼굴을, 자기의 주먹이 치는 꼴인 것이다. 그러나 중국인들 만큼은, 깊이 있고, 더 나아간다. 왜냐하면 주자가 있기 때문이다. 주자는 우리나라에 그냥, 대학이나 소학을 편찬하고, 효경을 쓴 사람 정도로 되어 있다. 주자어류는 차마 언급을 할 수가 없다. 뭔 소린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그런데, 송나라 사람이고, 장안을 중심으로, 그 일방적인 지리적 원인 때문에, 몇몇 사람들에게는, 주자어류가 읽히는 것이다. 어떻게 고전의 모든 내용들은, 주자어류를 지나야만, 살아 있는 것이 될 수 있는 것일까? 그래서 성리학을 한국에서 받아들이고, 조선을 주자학의 나라로 만들고자 하였던 것일까? 그리고 항상 그것에서 실제로는 실패하였던 것일까? 어째서 문장이 남루하고, 지루하며, 개인이 사라지고, 산골 절의 높은 편액을 제외하고는, 거의 아무런 내용도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주자어류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내가 말한 바처럼, 등장인물들이 만화같고, 익살맞으며, 믿기지가 않는 것이다. 웃는 사람은, 채널이 굉장히 귀한 것인 것이다. 그것마저도, 과거 시험의 내용으로 읽는 이는, 그냥 모든 세상에 준비가 철저한 것이다. 주자어류가 재밌는 사람은, 계속해서 나아갈 수가 있다. 헤겔이 약간 그것과 비슷하다는 인상이 있다. 처음으로 물고기 한 마리가, 다른 세상을 가는 것이고, 나의 글들을 읽으면, 슈퍼샤이언 손오공이 베지터 말고 다른 어떤 괴력의 도마뱀을 상대하는 것 같은 것이다. 배에서 내리면, 사람들은 슬픔에 젓는다. 그것은 고속열차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고속열차에는 수많은 중국 메텔들이 타고 있다. 저녁에 빛이 사라지고, 다른 인공의 빛이 들어오고, 미인의 얼굴이 추우면, 왠지 무선통신 이어폰으로 자기에게 뭔가를 급하게 알리는 것 같은 것이다. 니뭔샴마? 물으면, 샴마? 뭔샴마? 그런 일 없다고 하는 것이다. 웃고 좋아하고, 전화번호를 주고 받고, 그런 것은 숱한 훈련받은 빠돌이나 빠순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지, 왕족처럼, 마지막 황족처럼 지내온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사건 같은 것이다. 내리면 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이 그렇게 멀고, 대학에도 어떻게 보면 짜증이 나는 것이다. 고문은 아직도 살아있는데, 주자어류한데,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뭐 샴마? 어쩌고 저째 샴마? 우리 생의 삼매에는 도무지 없는 것이다. 독일어를 번역할 때, 얼마나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꼬, 그런 독특한 대륙 지리적 심리학이 있는 것이다. 광주가 광저우인 것도, 고작해야 일 년에 두세 명의 인연이 있대도, 그 사람들은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우리가 접하는 고전의 대화는 모두, 철학적 명제들이고, 그것의 인간적 언명들이기 때문이다. 철학적 명제만 남고, 그렇게 연결되어도, 하우쯔, 좋다는 것이다. 기쁘다는 것이다. 내 말들이, 그렇게 거대한 중국의 저녁 붉은 색일 때가 많았을 것이다. 때로는 어린 학생 같고, 사랑의 추측 같고, 문예학적 원형 같고, 살아있는 주희 같고, 헤겔 같고, 새로 지어지는 도시들과 함께 진행하는 것 같으니, 중국 민족을 철학적으로 가장 높게 사랑하는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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