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는 살아있다.
얘들이 어려서부터 공자발적으로 학대를 당하면서, 가장 좋은 대학에 입학한 것이 가상일 것인가? 가상 인간. 가상 인터뷰. 공상가상영화. 우리는 원시인인가? 아니면 공상가상영화에서 등장하는 안드로이드 같은가? 가상띠. 모까상. 우리가 수학을 어려서부터 잘하고, 숫자 푸는 것이 쉬는 시간에 하는 일이며, 음악도 스트라빈스키 같은 것은 듣지 않고, 미술도 몬드리안 몇 개의 작품만 고수하면서, 산다고 하면 우리가 가상띠, 혹은 모까상, 가상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젊어서의 크리스탈과 같은 존재에서 벗어나, 한두 번의 취직에 관한, 그리고 프로젝트에 관한 지연을 경험하다가, 악명이 높은 간부들과 과천의 언덕 어딘가에서 메기탕 비슷한 것을 먹고 나면 비슷해지는 것이다. 베트남에 가서 빠리 바게트를 먹어도 비슷해지는 것이다. 금.방. 그래서 수학적 절대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려서 다른 사람들보다 수학을 잘한다는 상대성이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슈바이처처럼, 처처럼, 원래 수학도 잘하고, 교회도 잘 다니고, 프로젝트를 함께 할 때, 사람들을 잘 섬기고, 다루고, 리드해 나간다고 하면, 그와 같은 특수성, 확고부동성, 아직 범주간의 갈등을 모르는 것으로 인해서, 그렇게 인식되는 것으로 인해서, 그 사람의 능력으로서의 수학이 사라지는 현상도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워낙에, 서양이 모든 것을 하나로 해서, 발전하고, 심지어는 식민지해서, 그것들간에 관계가 수족관의 거북이들처럼 유기적인 줄 알았던 것이다. 좋은 연구소에서, 좋은 연구를 하다가, 보수도 상당하고, 보수가 어느 때는 상당하지 않고, 그렇다가, 아담이 눈뜰 때, 마음에 드는 이성을 한우리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두고,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멘탈 스페이스가 미발달한, 러브 드라마와 같은 상상이라고 할 만 하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그런 것이 전투기의 공중 급유와 같은 문명의 상징일 것이다. 그러나 못지 않게, 한우리 안에서도 영원한 것이 있어서, 사람들이 사귀어라고, 아궁이에 부채질을 해도, 못하는 일도 많은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렇게 크리스탈로 쌓아 진행해온 이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인과는 우연으로 진입하고, 여자가 회식에 참가하지 않은 날에는, 신의 분노가 자기 안에서 발생하여, 옆으로 나오고, 혼자 밖에서 물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참가하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 전화하게 되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것을 두고, 인간이 수정에서 나와서, 수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진흙에서 나와서, 인니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는 것이다. 서울대는 러브 드라마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수정과 같은 것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나를 입학시키지 않은 역사적 사실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서울대 법대 건물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천문대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서울대 농대에 있는 것일까? 내 나이 많은 후임의 이름이 박동하였는데, 이름이 너무나 아름답고 멋지고 했다. 만화가 같았다. 세상을 껍질로 보는, 태공조의 눈으로 보면, 내가 강원도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다. 나는 한신대고, 수학을 잘 못하는데, 어떻게 내가 공부 잘하는 지를 알고, 서울대생급으로 여겼던 것일까? 육공 기관총을 넘기려는데, 행군 중에, 얼굴이 흙빛이 되어서, 불쌍하기도 했다. 정말 일 년 이 년이 차이가 나고, 한 달 두 달이 차이가 난다. 잠시 더 들고 가다가, 그것이나 이것이나 마찬가진가 싶어서, 뒤로 건냈더니, 받아주었다. 내가 서울대에 입학하였다면, 전 세계가 정말 빵개질 것 같았던 것일까? 미국에 아름답고 존경받는 떼오롤지컬 칼리지가 하나 있고, 아이비리그라고 즐비한데, 캐나다와 대립하고, 전선을 구축하고 있고, 부병제에 걸쳐, 청년들이 군복무를 하다가, 그와 같은 절대의 관념적 상징 같은 것을 그려낼 수 있겠는가? 서울대 재학생들이, 우리들 한신대 여학생들보다, 사회복지학과 여학생들보다, 존재력이 약하고, 우리가 교회에서 고등부 설교를 한다 할 때, 다만 신도석에서 찬송하고 설교 듣는 것 같은 사람들이었는데, 나는 업그레이드, 혹은 그레이하운드, 공격하고, 돌격하고, 진지를 탈환하는 무의식적 형이상학을 갖고서, 어찌 해야 할 줄을 모르겠는 것이었다. 보통 상급기관이 방문한다 하면, 모든 것을 정리정돈 잘하고, 깨끗하게 하고 하는 것이, 생활 습관 같은 것이며, 지내고 나면 좋은 헌법 같은 것이다. 그와 같은 헌법들의 설치미술 같은 것이었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그래도, 한신대에서, 제법 야구를 하였던 것이다. 듣는 바도 많았고, 내가 뭔가를 주었는지를 생각나지 않는데, 그것은 당연한 것, 내가 받은 것들은 많았던 것이다. 채플실에서 함께 찬송만 불러도, 면역력이 배가가 되었고, 내려가서 돈까스만 먹어도 마리아 칼라스처럼 행복했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이 없다 말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독일어를 못하기 때문에, 대학원 서점에 가서, 철학과 신학 백과사전이 없다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문학들은, 팔렝케, 어둠의 저변에서 스스로 신탁 통치하는 그림처럼은 보였던 것이다. 내가 서울대에 들어가면, 교수들의 머리를 잡아 끌고, 행동은 하지 않아도, 대답도 하지 못하는 것들을 칠판에 발가 벗겨 놓고, 걸려 놓고, 대답할 때까지, 기다리고, 아이들을 꼼짝하지 못하게 한 다음에, 시간에 값하는 인사이트를 내놓는 사람들만 다음의 오디너리 라이프를 살게끔 하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기자들이 연개소문으로만 듣다가, 와서 확인하고, 서울대에 찾아오는 모든, 젊은, 예쁜 여자들과만 사귀는, 국정원과 공작새라고, 고발하고, 고발한 사람 열 명 중에 한 사람은, 찬양하고 했지 않겠는가? 막무가내로, 읽을 수 없는 내용을 숙제로 내주고, 그것을 해오게 하고 풀게끔 했을까? 서강대는 공부도 바쁜데, 대학원이 할 일들이 있었다. 학교 전체가 영문과 대학원생들의 입학 자금으로 운영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학생 관리를 해주어야 했던 것이다. 서울대로 돌아가서, 허튼 소리를 교수가 한다 싶으면,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손을 들고 나가고, 돌아와서 수업을 듣다가, 또 허튼 소리나, 허망한 문학적 표현을 한다 싶으면, 이번에는 그냥 나가서 담배 피우고 오고, 그러면 하늘과, 땅과, 학생과, 교직원과, 다른 그나마 실력 있는 철학과 교수들은 어떻게, 누구의 편을 들겠는가? 빵게아. 신휘 빵게아. 정신이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헌법은 방구와 같은데, 우리가 프로그램들을 많이 경험하다 보면, 그것으로 아이가 태어나는 경우가 있고, 귀신이 들리는 경우가 있으며, 연예인들을 늑대거북처럼, 애완용으로 키우기도 하는데, 그나마 즈사를 건립하고, 이영애처럼, 착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일단 접어보기도 하는 것이다. 판단은, 잘생긴 남배우를 제도적으로 바라보면서, 내리기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천지처럼, 갑자기 흥미롭게, 모든 바이러스를 온 몸에 바르고, 소리 없이 뛰어들고, 서울대학교 영풍 문고에서 서 있다가 쓰러지고, 사람들이 놀라고, 직원들을 건강검진 받게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영애적인 접근도 소듕하지만, 신천지처럼 이것이냐 저것이냐 키에르 케고르 중사 같은 활약도 괜찮은 것인 것이다. 소리 없이 등교하고, 소리 없이, 소리 없이 세단 타고, 안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오가고, 소리 없이 수업하고, 소리 없이 나가고, 화장실에서도 문을 열어 놓고 있고, 도리어 현아 미친 것처럼, 미친 것처럼, 굴다가 앰뷸런스에 실려나가고, 신현균의 영문학이 있는 것 같은데, 이름만 따오면, 매우 강력하고 아름다운 박영효 같은, 부분적으로 영어를 못하고, 스피드 면에서 항상 콜로키얼리즘에 반하나, 이름은 섹소폰이요, 실제로는 트럼펫의 소리 같은, 흐름 같은, 기승전결로 사람들을 가두고, 또 하나의 헛된 문학적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반합하고, 정반합하고, 여자에게 반하고, 학문에게 반하고, 반하니까 공부하고, 반하니까 반드시 데이트도 하는, 철학자 구보씨의 일일 같은 한국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그들에게는 늘 없는 것이다. 실험실 프로젝트에 편입되면, 갑자기 소녀성과 같은 세계관이 즐비해지나, 소녀가 사탄도 아니고, 가장 늦게 그 맨 처음의 착각에서 벗어나는 사람의 손을 끌어주면, 누군가의 말처럼 정신은 돌아오는 것이다. 오래가지 못한다. 경쟁이 생겼기 때문에, 생각이 생기고, 느낌이, 그리고 말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하나의 글을 쓰는 것이, 그들의 논문 열 개를, 백 개를 모아 놓은 것보다 오래가는 것이다. 어떻게 이와 같은 음악성이, 슬픈 산동성, 후베이성이 생겼는지, 아무도 모른다. 처음에는 다만, 규슈나, 훗카이도 쯤으로 여겼었다. 한국 사람이 아니면, 그것의 존재가 그림자가 있다 보니까, 당연히 세이코, 알바, 돗토리 현이나, 미야자키 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의 말처럼 정신이 돌아오고 나면, 한국 사람인 것이다. 우리가 대국을 사대하는 것은 아니나, 드디어 본질적으로 그것을 활용하고 나면, 나의 한국인은 너무나 대륙적인 것이다. 처음에는 휴지 같았으나, 그렇다고 하면, 시경이나 서경 같은 것은 처음부터, 그리고 나중에는 거의 모든 고전들이 보다 거칠고, 대상이 뻔하고, 일종의 공산혁명처럼, 클래시시즘을 후대에 전가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알았는데, 어떻게 하지를 못해서, 그냥 제사지내놓고 있고, 그러면 공산혁명이 지나치게 인간이 있을 수 없는 의식 수준을 제시하니, 우리가 현실화된다고도 여겼는데, 신현균은 밥만 먹었다 하면, 밥 먹듯이, 여자를 피그말리온 해서, 아이를 갖게 하고, 밥 먹듯이, 다음의 의식으로, 헌법으로, 혁명적인 종묘 제례로 나아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맛있는 녀석들이 제일 재밌고, 우습고 그런 것이다. 내가 서울대의 근원이면, 박근원이라는 담담한 교수님이 있었다, 나의 근원은 맛있는 녀석들이라는 믿음이 어떤 식의 종교집단에는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이 홍콩 사태를 일으키고, 시진핑이 홍콩 사태에 기름을 붓고, 한국에서 다른 돼지들과 프로그램을 찍는다는 것이 화성 탐사 로봇 큐리오시티의 무수하지만 일관적인 아노말리 발견들인 것이다. 사람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큐리오시티에서도, 그게 뭔가 싶어도, 괜찮은 화성 연구가들이 나오는 것이다. 신천지에서 신천지가 나오기 때문에, 처음의 어떤 실험적이고, 어그래시브한, 그런 집단 결성. 모든 신천은 같은 모습이니까. 호주의 오리너구리 태아적의 모습을 보면, 그것이 인간 우주인 같은 것을 보면, 모두 다 올레, 비슷한 것인 것이다. 그러나 신천지에서 신천지가 나오고, 우리들의 대학에 입학하는 빛나는 시간, 요즘 드라마에서는 그것을 골든 타임이라고 부르는데, 십년이나 십이년을 지내고 나면, 그때부터는 빨간 불이 켜지는 것이다. 시진핑에게서 시진핑이 나온다. 위대한 어떤 정치가가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 문재인에게서 문재인이 나오듯이. 그런데 그만, 그곳에서 미국적인 트와일라이쓰가 나오고 만 것이다. 성룡에게서 성룡이 나오고, 장만옥에게서 전파에 잡히지 않는 장만옥들이 나온다. 후쿠오카에서, 후쿠오카 사람들이 나오고, 혐한 서적에게서 일본인들의 반절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의 경험 중에, 내가 발을 들여놓지 못한 서울대에서, 내가 마음으로만 발을 들여놓고, 상상으로는 모든 모퉁이에서 사랑을 나누고, 우수하지 못하는 것들은 한강에서 배를 태워 보내는, 슬픈 플라톤처럼 지내는 것을 본 사람에게서, 가장 좋은 것들이 나오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와 같은 문이 열리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원래 서울대는 내게 관심이 없었는지 모른다. 나는 그렇게 처음에는 관심의 저변으로, 다만 서울대 풍각쟁이로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것이, 성경의, 특히 예수님의 말씀처럼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예수님보다 먼저 죽었다면, 우리나라는 오이씨디에 가입하고, 동글이 같은 것으로, 무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죽지 않고 살아서, 겨자씨와 공포 영화도, 세상 이런 공포 영화가 없는 것이다. 나도 공포스러웠다. 영어로 이너프. 그렇지만, 이 모든 것들의 배출과, 이 모든 것들의 붉은 산을 놓고 볼 때, 나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유능하고, 착하고, 생각의 지속력이 우수한 것이었다. 나는, 이삭 토스트는, 톨스토이보다 낫고, 던킨 도넛츠는, 도스토예프스키보다 낫다. 사람은 두 개의 정신과 하나의 육체의 성리학적 흐름이 최고이다 한 것처럼, 반드시 책을 접고, 유사한 생각을 접고, 순수한 스포츠의 육체도 향유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때 나의 나무가, 정원이, 나의 햇빛이 가장 좋은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렇게 아름답지만, 천재적이지만, 생각을 덮고, 사람들을 유지시켜주는 기능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사탄이 아닌 것들에 자극받고 절제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체홉을 보면, 그것의 선이 명확하다. 얼마나 이 모든 생각이 슬픈지 모른다. 대학은 톨스토이 같고, 나는 체홉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체홉처럼, 죽지 않고, 정반합 정반합, 그렇게 나아가니, 강원도 가장 높은 곳에 대학이 생기기도 하였던 것이다.
아무리 스포츠 제도권에 우리가 산다 해도, 좀비처럼 되어 있는 것을 스스로 벗고, 아픈 사람을 돌보고, 충분히 그런 다음에, 근대가 모두 끝나고, 이제야 유행하는 신체시처럼 서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브금. Secret Garden - When Darkness Fa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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