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이 작고, 인구수가 적은 것에 대한, 오즈맨디어스, 소고......
기독교인들이 기도를 하겠다는 것처럼, 아무 미래가 없다는 것에 대한 하소연이 있을까 싶다. 정말 기도할 때에, 음성으로 해결책이 도달하는 것이 있고, 그래도 눈을 뜨고, 참고서를 참고하고, 이것저것 손으로 맞춰보고 하는 것에서 해결의 기미를 빨리 포착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과학의 시대에, 이와 같은 고려대학교가 많은 것은, 어쩌면 지금까지 해결하지 않고 온 것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기도만 많이 하고, 그렇게 하루를 천금같이, 사람들이 죽어가서일 것이다. 영화만 많이 보고, 연애소설만 많이 보고, 프로이트 성리학은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아서일 것이다. 피라미드가 없는 성경은 있을 수가 없고, 성경이 없는 기독교는 있을 수가 없다. 다만 미라쥬나, 신천지처럼,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우리가 우리의 뜨거운 성기를, 사랑하는 사람의 것까지 만져보면서, 생각은 송과선을 도무지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쩌면 공무원들이, 무슨 경유차를 서울 시내 진입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막연한 데지그네이션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사람들이 원통처럼 도니까, 원통들을 모두 돌리면, 자기들이 우세한 것들로 결론이 나는 책략이 있는 것이다. 그것의 이름이 바로 인제, 원통인 것이다. 그 모든 사람들이 같은 사람들일 수 있다. 그리고 티비에서, 도리어 범인들을 잡는 사람처럼 연기하는 것일 수 있다. 원통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처럼 되어 있으나, 돌리는 것이 맞물릴 때는, 마치 남의 기능이나 속성인 것처럼, 살인을 저지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코로나를 퍼뜨리는 것은, 아마도 처음 해보는 일일 것이다. 화성연쇄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변신하여 경찰이 되고, 무고한 사람을 작살내고, 좀더 오래 살아서, 노후 경유차 서울 시내에 진입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나처럼 아무런 말이나 하지 못하는 사람조차, 드디어, 내 입술 뜨거운 커피처럼, 이 모든 것들이 하나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경유차를 갖고, 성경을 생각하기가 어렵지 않은가? 휘발유차를 갖고, 나의 필명을 생각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처럼. 원통이면 가능한 것이다. 잘 지내고, 착하고, 정치인 같고, 회사원 같고, 착한 사람 같은 원통형을 만들고, 갑자기 사회 전체가 심하게 원통이 회전한다 싶으면, 아무 이유 없이 어려운 대구에 다녀오고, 평생 안 만나던 사람을 만나고, 함께 뛰고, 함께 달리고, 평소에는 넓은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던 이단이, 이번에는 더욱 가깝게, 더욱 무슨 이상한 것들처럼, 붙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의심의 흐름이 발생할수록, 자기의 것들까지 가져가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믿는 것이다. 그리고 변신을 많이 하다 보면, 지능이 많아 떨어져서, 경찰이 조서를 작성하면, 그것이 자기의 기억이 되는 것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니 신문을 보고, 뒤늦게 생각이 나고, 상상이 나고, 모순을 지적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것이 자기들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이 그렇게도, 서양의 고대, 중세, 근대사의 모든 것의 압축이 아닐 수 없다. 멍청한 이만희가 설교하고, 사람들이 무조건 성경을 읽는 척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기독교인들도, 성경을 읽기가 어렵다는 것을, 그 대단한 지식을 누군가 알려줘서가 아니겠는가? 나는 한신대 다닐 때, 예장이나, 다른 예장에서, 성경을 많이 읽는다 할 때, 하나도 부럽지가 않았다. 내 안의 요구는 대단하였으나, 남이 기준이 되어서 자극받은 적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많이 읽어도, 늘 권세적이고, 절대적이며, 지식을 멸시하고, 사람들을 이끌며, 미국 무슨 긍정 목사 이야기하기 좋아하고, 아무튼 기독교의 안쪽의 방이 너무 심란하고, 생각을 차단하고, 하나님이 허락하고, 퍼미션, 그런데도 그나마 훌륭한 교회 문화를 이끌어가는 것이 신기할 따름인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읽은 것들이 날아가고, 읽은 것들이 겨우 관계를 지으며, 읽은 것들이 겨우 외국의 경찰력에 의지해서, 지내는, 어쩌면 메소포타미아 페르세폴리스의 반신반인 반수반인의 지경이 적합하거나, 편안한 사람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각형의 반듯한 모음을 생각해 볼 때, 그것 중에 몇 개가 없어도, 사는데 지장이 정말이지 없었던 것이다. 사람이 잘난 척 해도 되지 않고, 사람들과 너무 많이 달라서도 되지 않는다. 남이 편안하면, 나도 그러하며, 남이 선하고 아름다우면, 자기도 그러한 것이다. 노후 경유차의 서울 진입 금지의 내용이라는 것이, 그렇게 신천지의 세력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면 곤란한 것이다. 그렇다고 신천지의 원통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곤란한 것이다. 그들의 주관이, 주자에 관한 신념으로 확고부동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함부로 생각하지 않는 틈과 틈 사이를 맹렬하게 오간다는 것도 알려진 사실이다. 나는 별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제부도를 다녀온 다음에, 수원을 지나, 속초로 향하였던 것이다. 서울은 불필요했다. 서울은 싸가지가 없었다. 내가 너무 독립적이라는 사실에, 그들의 기형적인 사태는 갈수록 심화되어 갔던 것이다. 원통을 잘 보다 보면, 사람들이 굉장히 고통스럽게 죽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원통을 잘 보다 보면, 개새끼들이나, 고양이 새끼들이 대단히 자부심이 넘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고양이를 학대하는 것을 두고도, 사람들은 이런저런 통신망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네 번 죽인 사람이, 이번에 처음으로 자기 손에 죽는 것을, 그와 같은 구도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관념이 반드시 위대하다는 것이 아니다. 네 번 죽인 사람을, 처음으로 죽이는 것도 훌륭한 것이다. 경찰은 다만, 지연 같고, 중앙역 같고, 그래도 속도가 지연되고, 좋은 방향으로 속도가 느는 일종의 함수 같은 것이다. 항상 드는 생각은, 항상 관심을 갖는 것은, 나의 오토바이 사고가 어떠한 사고를 일으키며, 나의 자동차 사고가 또한 어떠한 사고를 초래하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이것들은 그러한 연대에 있고 싶었다. 그래서 재밌는 동물 영화를 찍은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죽는 사람은 많이 재수가 없는 것이다. 어떻게 피라미드가 없이, 기독교와 성경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프로이트가 없이, 조선의 성리학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일본 에이브이는 차마고도, 말을 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는 천성이 밝고, 환하고, 춤추고 노래하기 좋아하는데, 어떻게 일본 에이브이 없이 살 수가 있단 말인가? 그것을 개방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조선에서 성장이 사탄에 의해 차단되면, 생명은 어느 정도 일본 에이브이에 의지해서 진행하게 된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이처럼 일본 정신대, 중국 위안부가 이렇게 비등하게 되었단 말인가? 원통적인 사고 방식 특유의 능력인 것이다. 나는 꼼짝 없어지고, 한국의 삼성이나 현대 산업은 발전하게 된다. 대신에 내가 죽지 않고, 일본 공포대극장 우두처럼, 우두커니 살아있게 되자, 나의 고통이 다른 사람들의 어떤 사고가 되는지, 이런저런 니체들처럼 기대하고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에서 산업의 도움을 입지 못하고, 문학, 대학, 방송, 출판, 연예, 그래서 조선의 숙종 같은 성리학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이, 프로이트적인 형이상학이 오래도록 발전하게 되고, 기독교와 성경의 신천지 같은 조합에서 벗어나, 나의 노후 경유차와 같은 헤겔 철학만이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해서 신천지에서 갑자기, 코로나가 이처럼 발전하게 된 것은, 마치 어린 중학생 두 명이 시험을 너무 잘 봐서, 크게 이슈가 된 것처럼, 조금은 의심스러운 일이 되는 것이다. 피하고, 조심하고, 낫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조선 성리학이나, 후쿠시마, 그리고 신지와 천주교, 서양의 오랜 전통 기독교와도 관련을, 어떻게든 확진 판정 받으려는 노력으로도 얼마든지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어가 독립하지 못하고, 스스로 반짝이고, 아름답지 못하고, 그렇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은 환각하지 않겠는가? 환각하다가 죽는 수도 있는 것이다. 환각하다가 죽는 것 중에, 가장 큰 것이, 내가 이만희가 아닌가 하는 것일 것이다. 가장 극단적인, 가난 중에 가난이, 주자가 거의 모든 병에 걸리고, 마음으로 걸리면, 얼마든지, 티비에 나오는 부모님 역할에 모두 취하고, 좋아하는 여배우가 혹시 내가 아닌지 하는 것이 있다. 일본 에이브이가 그나마 공기가 좋은 것은, 남다른 태공조의 혜택 때문인 것이다. 일본의 주자는, 일본의 주자학은, 대게가 무명의 어떤 작가가, 오사카에 사는, 여배우가 되는 것에서 끝이 난다. 여배우를 만나고, 그날 바다에서 죽는 것이다. 불쌍하지만,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나름으로 방책이 있고, 한다지만, 동남아의 트랜스젠더들처럼, 그다지 방책이 없어 보인다. 가장 좋은 것은, 사람들에게 환상의 흐름과 성기가 있는 것을 모두 모아, 하나로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아니, 책을 발간하고, 정신을 경쟁하고, 저마다 모국어와 부국어, 자국어의 말이 빛을 발하고, 스스로의 힘이 강성해지는 것을 바라야지, 너무 있을 수 없는 주자의 구멍에 함몰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충분히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다가, 피라미드가 감출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고대 때만 해도, 서양 것들은 자신이 있었다. 사람을 불멸로 만드는 것에, 피라미드와 같은 사람들이 필요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의 생각? 그 사람들의 어떤 관심? 기도? .... 그 사람들의 피? .... 피를 어떻게, 플라스크에 모으고, 비이커에 담고, 유리관으로 보내고, 네온사인을 만들고? 피를 먹고? 블라디미르? .....
생각이 끊긴다.
피라미드가 고대 유럽을 붕괴시킨 것은, 마침내 피라미드 만한 사람들을 죽여도, 한 사람도 불멸의 존재가 되지 않아서일 것이다. 피라미드는 얻은 것이 있다. 결국, 그와 같은 습관과 지배 구조를 갖고 있는 것들은 그냥 죽는 것이 나은 것이다. 그래서 서양의 중세는, 사탄적인 피라미드의 중세가 되는 것이다.
원래는 불멸의 사자들은, 피라미드가 없을 때도 있었고, 그들의 제사나 문화가, 전 세계에 걸쳐, 광풍을 일으켰던 것 같다. 이 모든 상상들은 우울하고, 우습고, 공포스럽고, 태국 영화 신천지건, 미국 영화 사랑의 교회건, 이처럼, 이 천지간 만물 중에, 누구도 풀지 않는 문제를 내주고, 사람들이 우한 신종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모순인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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