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더 킹 인어공주.....
일주일을 그렇게 일했는데, 뱃살이 빠지지 않는다. 참치 뱃살. 사람들도 그것을 인지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축복받은 인체, 신체, 생체리듬, 그런 것을 가진 사람과, 저주 받은 신체, 복지, 체력 구조를 가진 사람을 구분한다. 부자가 신체라면 얼마나 좋은가? 그러니까 체력이 좋고, 우리가 좋은 체력을 갖고, 멋진 몸매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그와 같은 서브스탄스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조금, 손톱만큼, 밤하늘에 보이는 하현달처럼, 상현달처럼, 더 나오기로 하자. 인간 내비게이션이라고 할 정도로, 독도법에 뛰어나면, 도시의 지리를 파악하는데 뛰어나면, 그 사람은 택배 일을 해도 되는 것이다. 택시. 그런데 다들 할 수 있는 것인데도,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적응하는 데만 보통 사람의 두 배가 걸리고, 이내 그와 같은 기억과 앨범에는 안 좋은 것만 가득하게 되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다. 일이 그것 뿐이면. 하지만 포기한 것과 다름이 없는 복지와, 부유함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체는 다만 체력으로만 있지 않고, 정신과, 지능, 생각과 마인드, 그것과 콜라보레이션이 되어서, 진짜 체력이 되는 것인 것이다. 김은숙 작가는, 더 킹에서, 그와 같은 상상 속의 참 부자를 그려보고자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극중에 한 명이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작가와 성별을 뛰어넘어 동일시가 될 것이다. 적어도 작품과 작가의 관계는 될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사는 것은, 그와 같은 소년 소녀의 꿈과 같은 저녁 풍경이다. 우리가 철학과 대학원을 꿈꾸지 않으면, 대학원의 육체가 나를 거절했다고 하기가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접선은, 거의 수년에 걸쳐 이루어진다. 그것으로 직장을 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산성과 같아서, 믿음의, 시온 산성 같아서, 카프카, 교수들과도 사이가 좋고, 친구들도 암암리에 인정을 하고, 매 전공 수업 시간마다 좋은 평점을 얻는다고 할 때, 그것으로 직장을 구하는 것도 아닌데, 저 사람은 대학원에 가겠구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비너스상을 예비하셔서, 꼭 대학원에 지망하는 사람에게 그리스 여신을 허락하는 확률을 갖고 계신다. 그것이 정말, 표상에 가깝고, 형상으로 이루어졌다면, 도리어 반가운 플라톤의 기하학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항상, 그리고 부자들의 양심은, 욕심은, 유방왕을 찾아온 가족들처럼,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더 떨리고, 시험에서 떨어질 것 같아도. 그리고 대학원에 입학한다. 아무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다는 것은, 폭력 사건의 징후이다. 반드시 뭔가가 있고, 아니면 독일 유학이라도 제안하고, 거기에 학생이 따라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면, 못하겠다는 관계와 입장의 안정빵 같은. 의미가 채워지지 않을 수 있다. 거기서부터는 신학의 영역이다. 자기는 철학적인 천재가 아니라는 발견이 이뤄지며, 동시에 천사에게 두뇌를 팔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모든 내면적인 변화가, 급격하고, 좋지 않은 전개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결코 그렇지 않고, 그것은 도리어 입장과 대상의 정확한 관계 수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학생들은 정신병을 갖는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 누구도 치유책을, 전원책을 알지 못한다. 가난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자의식과, 타인의 평가와는 많이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중산층이나, 공부에 성공한 가족들이나, 친구들이나, 아니면 정원이 근사하고, 집이 우람한 규모를 가진 것이면, 그와 같은 경제적 규모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는 동양인인가? 아니면 서양의 순환적 규모인 것인가? 우리는 좋은 말들을 많이 갖고 있다. 그리고 세계는 수많은 국제 기구들이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나 미세 먼지 같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그와 같은 사회안전망이 우리를 번지 점프하게끔 만들고, 볼보 자동차를 타고, 사고를 당해, 목숨을 구하게끔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 놀이동산은 어른들에게, 자기 육체가 넘겨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사회안전망이라는 것은, 훈련된 사람들이 아닌 경우에는, 전가의 매우 강력한 형식인 것이다. 전가가 그렇게 싫은 것은, 최고 등급의 역도 선수에게는, 아무런 전가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역도 선수가 아니면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관념으로, 유학에도 성공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금수강산을 여행하고, 아름다운 여자를 소개받아, 결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책도 내고, 그 꿈과 같은 그림들. 수유리 대학원 뒤 편에 있는, 아카데미하우스. 신학은 항상 내면을 강타하지만, 다른 일반 학문은 그럴 기회가 없고,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우스를 이용하고, 그것을 선용하는 사람이 더욱 칭찬을 받을 것이다. 책을 내고, 학생들에게서 인기도 얻는 것이다. 거기까지. 일년. 이년. 삼년. 사년. 유럽의 아름다운 클래식 가곡 합창곡들 같은. 돌이 있으면, 중국식이거나, 일본식, 아니면 근대 르네상스식의 강의동인 것이고, 나무가 있으면, 돌과 나무는 환상적인 하모니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 것이다. 어느 정도, 흐르는 강물 같은 책을 낼 줄 아는 사람만이 교수가 되는 것이다. 젊은 교수. 그것처럼 아름다운 모순이 어디에 있는가? 거의 모든 인과를 무시하고, 우리가 만나는, 우리들의 가난이 만나는 가장 좋은 이상형이, 어쩌면 김은숙 이번의 드라마에 잘 묘사된 것 같은 것이다. 나의 진득한, 찐득한, 모더니즘 반지식인적 드라마에, 그럴 의도가 없어도, 사람들이 알아서 도표를 보는 것으로다가, 그런 것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익숙한 인격 반응의 김은숙한 출처를 잘 드러낸 것 같은 것이다. 우리들 중에, 상당한 인기 교수가 있다는 전제인 것인데, 우리는, 그리고 나는, 항상 그와 같은 마음을, 조선시대 감옥의 모습처럼, 단속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드라마는 현실이라는 상의를 입고, 환상이라는 바지를 입는다. 극중에서 여자 주인공이, 도플 갱어가, 주인공에게 선물했던 것이다. 하의는 입고 있었던 것이고, 상의를 선물했던 것일 것이다. 그러는데, 갑자기 총성이 들리고, 회상 중에, 그리고 쓰러져 넘어지는 것은, 그와 같은 장면 전환은, 새로운 작가의 내면적 관계이고, 그렇게 머리를 감고, 작은 물고기들이 다니는 데스크탑 컴퓨터에 그것을 부은 것처럼 보인다. 현실을 발견하고,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는 모습은, 존재의 진부한 경험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보지 않기로 한 드라마에서, 그것이 너무 가혹하게,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나타난 것 같은 것이다. 독일철학으로 유명한 교수가 있었는데, 학업에 장애가 된다고, 신문에 칼럼을 싣는 것을 중단하였다. 그러나 학업에 발전도 별로 있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논문이라고 무한한 것이 아니고, 가독적인 것이 되려면, 여름에 실제의 소나기를 많이 맞아야 하는 법이다. 외국의 철학 유학과, 가독적인 논문 사이에는, 삶과 죽음의 갠 역시, 갠지즈강이 흐르고, 거기에서 사는 사람들은 갠지즈강의 모래 만큼이나 많다. 작가는 현실에 부딪힌다. 주인공 뿐 아니라, 주변의 인물들이, 주자의 작품에 올인할 뿐, 더 이상 독립적인 생명을 이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탄의 집단적인 간평에 속수무책인 것이다. 그리고 주자 또한, 처음부터 지나치게 학원 문학적으로 객관적이었던 것이다. 환상적인 것에 대한 언급은, 수업 시간에 아침으로 가져온 옥수수를 먹고 있는 학생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관계는 예수와 같고, 바하와 같고, 우리는 뚜렷한 진행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천사에게 두뇌를 넘기려고 하나, 작가는,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너는 천재의 냄새는 가지고 있다며 위로하고, 김희애에게도 상을 주는 것처럼, 만류를 하는 것이다. 독일 철학은 지워지고,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이 서양의 음악에 의존하려고 하면, 다만 가족 유사성 밖에 남는 것이 없는 것이다. 가족은 다만 일반 회사에 취직을 하려고 한다고, 그 중에 아들이나 딸이, 말하게 되는 것이다. 공부도 취직이고, 생각도 일이다. 집안이 어려우면, 우리나라의 잦은 이야기적 배경처럼, 그럴 것도 같지만, 유럽은 아프리카나 아시아에 비해, 부유하지 않는가? 다만 이런 핑계 때문에, 한국에 경제적인 기회가 자주 주어지는 것인 지도 모른다. 미국의 슬픈 시위는, 서양의 철학은 서양인에게로, 서양의 문학은 미국이나 서양인에게로, 하는 것 같은 본질주의자들의 행진이자, 외침 같아 보인다. 관념이 훗썰의 현상학을 만나,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서양의 교수들에게 실망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우리는 철학책을 저녁에 읽고, 저녁 도시 풍경의 오피스텔에서, 생각을 머리에 그리고, 배트맨이나, 특별한 액션이 없는 스파이더맨처럼, 아름다운 음악을 듣지 않는가? 그것은 날고, 그것은 연결되는 것이다. 하지만 서양의 교수들은, 현실적이고, 현상학적인 것이다. 플라톤도 없는 것 같고, 파르메니데스도 없는 것 같은 것이다. 본질은 학생과 스승을 경쟁하게 하는데, 본질은 거의 모든 부분에서 자기와 같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거기에서 나오는데, 어느 때는 스승일 때가 있고, 어느 때는 학생일 때가 있다. 책에 붙어 있는 것을 우리가 좋아하는 것 같지만, 실은 삼각자로, 거기에 대고 있고, 도리어 떨어진 언급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일 것이다. 책에 붙어 있는 사람들은, 결국 관념이 통용되지 않고, 현상학이 되면, 그들의 문명은 사라지게 된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예를 들어, 파리애마처럼, 관념과 현상이 도무지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현상학이, 현상이, 좋다고 여겨진다. 몇 회차의 더 킹에서 이민호는, 과거의 어린 자기를 구한 이가 자기였다고 말하는데, 작가의 무의식은 실은 반대를 의도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총소리와 더불어서, 관념이 드라마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철학 유학을 다녀와서, 배우고 익힌 지식들로, 태권도를 할 줄 아는 여학생을 만나, 깨끗한 사랑도 나누고, 사람들에게, 어린 학생들에게, 어떻게든 살아있는 철학을 해보려고 했던 무수한 시도들이.....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대한제국이 저의 것인 것이다.......
더 이상 보는 것은, 미국 사람들의 주장처럼, 바이러스와 같은 것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 안 보고, 며칠 후에 재방송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 부분으로 돌아가 그것만 다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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