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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조선은 기독교 국가인가?

by 마음대로다 2020. 6. 23.

조선은 기독교 국가인가?

 

 

 

 

 

 

 

 

삼국사기가 복음서에 준하는, 바울서신과 같은, 복음서와 바울서신을 새롭게 종합한 서적임을 우리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하면, 종합서적, 조선이 새삼스레 기독교 국가임을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싶다. 그래도 말하는 것은, 말이란 원래, 하고 또 하고, 말하는 것에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사탄은 바이러스는 이용할 수 있어도, 주자의 높은 경험의 결과, 그리고 이전 글들의 지속적인 컴퓨팅, 그것들의 돌이킬 수 없는 과거와 같은, 그래서 과거 시험, 코로나는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의 버닝 포인트는, 주자에게는 휘날레, 그러니까 아름다운 글쓰기요, 사랑스러운 여자에의 유혹이 되겠지만, 사탄에게는 익숙한 범죄와 살인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주자를 보면서, 살인사건을 연상하는 것은, 사탄이 오랫동안 깔렸다는 증거인 것이고, 계급이 낮아서 사탄과 자신이 별로 다를 바 없다는 슬픈 고지인 것이다. 우리가 고지전, 슬픔의 고지를 점령하지 않으면, 거기서 죽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사탄인 것이다. 사탄, 사탄, 그렇게 우리가 석탄, 말하기 좋아하는 이유는, 사탄은 아이시떼루처럼 너무나 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높은 드라마, 하이틴, 혹은 사랑, 러브, 로맨틱, 그런 것을 좋아하는 것은, 사탄이 지그시 눈을 떠서, 사탄이 아닌 방을 훔쳐보기 위함인 것이다. 학생 때에 그런 것을 좋아하는 것은, 일종의 중앙역 신드롬처럼, 남아 있는 시간이 너무나도 많아서, 사탄을 이리저리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패기가 있어서인 것이다. 홍콩 영화가 그렇게 전성기를 이뤘을 때가, 사탄의 천장지구 앞에서, 그렇지 않을 인격이 이 힘들고 어려운 기후 속에서 태어날 수 있겠는가, 매우 강력하게, 숱한 쿵푸와 함께 자문한 것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종두득두, 콩을 얻은 것이다. 시키면 까는, 그와 같은 시스템이라는 것은, 무인들의 고고학인 것이다. 우리들의 문학은, 무인들의 죽음이, 실제의 저승에 걸쳐, 돌아오는 마지막 선물들이자, 그것들의 축적일 수도 있다. 이성계가 무엇인가? 무인이 아닌가? 내가 그의 이름을 칭찬한 것은, 이름만은 기가 막히게도, 삼국사기에 준하는 높이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문열이라는 열등한 이름보다는 백배 나으며, 알 수 없는 곰팡이 느낌의 백범 김구보다는 천배 낫다. 그러나 오래된, 그리고 지속적인 그에 관한 보고는, 철두철미한 무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자, 다음의 권력 군주가 이방원인데, 그도 그렇게 문인은 아니다.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죽일 정도로, 글을 잘 쓴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그와 같은 구조를 간과하는 것은, 그것이 너무나도 야만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잘 쓰면, 허구한 날, 누군가를 선죽교에서 죽여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아니겠지 하면서도, 그러나, 그것 하나만큼은 고대의 것을 남겼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무인들은, 자기들의 죽음을, 거짐 문인들의 농간으로 여기는 잘못이 있기 때문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방원처럼 글을 익힐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함께, 과거에 급제를 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무인들의 죽음을 농간하는 문인들을 충분히 죽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것은, 순전히 자기의 잘못이지, 따로 잘못을 두부처럼 팔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내가 훈민정음 문학이 따로 없는데, 그것만 딸랑 개발한다 한 들, 무슨 뜻이 있겠는가 했던, 세종이 드디어 완전한 문무의 국가를 이룬 것이다 할 것이다. 무인이란 이름 그대로, 기록하지 않는, 훌륭한 국가의 체적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이성계와 이방원이, 쌍으로 세계사에 업적을 남긴 것이다. 쌍계사. 이방원이 글만 익혀도, 정몽주를 죽인다는 원리는, 원칙은, 사실 유럽에서는 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와 같은 조선의 소식은, 서양 유럽에서 흡수하기에 최적이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비유를 따로 들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한국에서 기어코 좀비 영화를 찍는 이유는, 돈을 주는 이유는, 그런 영화 속의 내용이 있는 이유는, 미국의 좀비 영화가, 그것의 각도가, 서커펀치, 자기를 학대하는 우주의 궤적, 원래는 펀치인데, 남을 향한, 오만한 제국의 힘의 과시, 그런데 어떤 영화에서의 표현처럼, 공간을 가로질러, 자기 얼굴을 그대로 치게 되는 것이다. 일본은 영화만 만들었다 하면, 에이브이가 되고, 미국은 좀비 영화가 되는 것은, 그렇게 레지던트 이블 3 게임이 재밌고, 여자 주인공의 옷을 그렇게 다양하게 만드는 재미가 있는 것은,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 유명한, 인류의 기쁨과 '운명'인 것이다. 몸이 불편한 인류가, 신체를 돕는 부분적인 로봇을 만들었다면, 운명론자들에게는, 인류가 그와 같은 운명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으로 결론이 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것으로만 비치게 되는 것이다. 오직 한국만이, 그것들을 존 불턴, 찍어먹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방원이 글을 익혀서, 정몽주와 시를 겨루고, 자기가 잘 쓴 것이다 싶으니까, 그를 선죽교에서 죽여서, 더욱 자기가 글을 잘 쓴 것이다 세계에 자랑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들의 부끄러운 과거인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반복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우리가 운명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은, 베토벤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뻔뻔하고, 번개치는 것 같고, 그런 것은 순전히 베토벤 덕분인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완전 초기에, 서양은 어떻게 되었겠는가? 계속해서 좀비, 트리플 엑스 좀비, 야만적인 기독교 국가가 되었겠는가? 그러니까 기독교라는 이름이 너덜너덜한. 아니면, 자기들이, 자기들의 문인들이, 이방원보다는 글을 잘 쓰겠구나 싶었겠는가?

 

 

불쌍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