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그리고 반드시 누워서 공부할 확률에 관하여
우리는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을 한다. 그렇다면 그 친구가 사라지면, 걸그룹이 등등하면, 강남을 가지 못한다는 것인가? 친구도 있고, 걸그룹도 있고 한다면, 강남도 가고, 강북도 가고, 더욱 좋다는 말인가? 우리가 어렸을 때, 그렇게 친구가 좋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군대 생활을 잘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은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학교 운동장에서 그렇게 놀았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구실은 어떠한가? 드라마 낮과 밤은, 축적이 좋고, 우리가 뻔히 아는 우리나라를 두고, 그 어떤 축적을 다소 메타피지컬하게 전개하는 것도 좋고 한다. 도정우의 고통은, 어떠한 매개도 없이, 우리에게도 고통이 되었다. 우리는 문학과 헤어지는 때가 있다. 그렇게 내가 문학 전도사가 되고, 사람들에게 문학 구장이 되었어도, 우리는 문학과 헤어지는 때가 오는 것이다. 그것은 잔혹함 같은 것. 그것은 문자에 도달할 힘도 없는 서글픔 같은 것. 우리가 학교 공부에게서 시간적으로 떨어지고, 졸업해야 하니까, 부단한 이론 공부에서 우리들의 지능이 떨어지고, 친구도 없고, 더 이상 우리들의 영혼이 강남 같지 않으니까, 청담동, 떨어져서 김소월이나 윤동주의 시라도, 전라도 읽게 된다면 다행이겠지만, 문학과 철학의 대계라는 것이 몇 개의 대표작만 있는 시집은 아니지 않겠는가? 어떻게 그 모든 것과 정확하게, 다른 기계의 부속처럼, 기어가 서로 맞물리는지 알 수가 없다. 액션 영화를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내가 이소룡이고, 내가 성룡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문화가 미국 할리우드 빌보드와 다르지 않아서, 그처럼 뛰어다녔는데, 어느 순간에는 정확하게, 액션 영화만 움직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직장은 이중첩자와 같다. 그것은 우리를 움직이게도 하고, 사회에 기여도 하게 하고, 동시에 우리를 멈추게 하고, 생각 또한 멈추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액션 영화에 매몰되어, 눈만 움직이게 되는 때가 그렇게, 어느새 입만 살거나 성적인 부분만 움직이는 것이 대표가 되고, 그것만 기억이 되고, 그것만을 욕구하는 서울의 밤과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여자들은 낮에는 먹을 것을 찾는다고 하는데, 남자들은 활동적이기 때문에, 집어넣는 것보다 뛰쳐나가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이 기준이 되는 것이다. 생각은 부정확하고, 다른 것들이 붙어서, 생각과, 의미와, 내용의 상호 전치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문학만이 태극기를 그리면서, 그 둘을 가르고, 하나로 사랑하게 하고, 육체의 아름다운 테두리 안에서, 아름다운 건곤감리의 막고 뚫린 개방형 벽들을 가지고, 진행하는 것이다. 우리가 직장에 최적화되고, 저녁에는 성적인 것이 차단된 사람들을, 남녀들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자기들이 자주 아픈 것을, 이유를,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국부적인 문제는, 정말 애덤 스미스, 국부적인 문제인 것이나, 우리들의 인지 작용의 무모함이나 어리석음 때문에, 체적 전체의 문제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좋은 생각이나, 예술적인 감동을 좋아하는 것은, 그것이 국부적인 만족이지만, 뇌, 혹은 중추신경, 그리고 몇 개의 시냅스, 그것들이 확장되어, 신체와 존재 전체의 만족으로 나아가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성욕도 이완되고, 배고픔도 어느 정도 사라지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먹지 못할 것에 대한 고통이 아니라, 내가 오늘 집에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의 계획으로 현명하게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훌륭한 문학도, 지속적으로 옆에서 부와 커플들이 괴롭히면, 티비에서도, 우리는 맨날 낮과 밤의 사람들처럼 누워있으나, 티비에서도 아무런 말들이나 받아주고, 문학적인 가치의 말들은 들어주지 않는다면, 훌륭한 문학은 목이 잘리게 되는 것이다. 문학도 각종 문학상들이 꾸준히 괴롭히게 되면, 자기 문학에 대한 하늘 아래 첫 사람으로서 확신이 없고, 문학상들만 꾸준히 읽게 되면, 마침내 다른 이의 목소리를 갖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기계와 같고, 이식 수술을 받은 사람 같고, 그것이 생명에 치명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그와 같은 이방에 들어가게 되고, 출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뻔히 알면서도, 고통을 모르고, 공포를 모르고, 아니 그것보다는, 차라리 어설프게 알아서 미국의 쏘우라든지, 쏘우 원투쓰리라든지, 공포 영화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은 것일 것이다. 누워있는 사람은 이와 같은 절정의 피리마드의 저 위에서부터, 다만 문과 지망을 막는 부모를 두고 있는 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한 것이다. 제법 훌륭한데, 문과를 지망하지 않는, 그래서 숨은 부모의 누워있음도 물론 있을 것이다. 누워 있게 되면, 늘게 되어 있다. 나무늘보가 사람이라는 학설이 있다. 나무늘보를 보면, 잡아 먹히지 않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는 주장은, 그렇게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닌 것이다. 나무늘보의 개체수를 우리가 모르고, 티비의 카메라 앞에서만 잠깐 드러나는 것이면, 연예인들처럼, 그 모든 사실을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중국 기차가, 경좌도 있고, 연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적잖이 놀랐었다. 그리고 공부하는 사람이 오랫동안 누워있다가, 다시 일어날 확률, 그리고 계속 누워 있을 확률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바깥의 풍경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고, 오직 그 사실 하나에, 나의 마음은 대륙을 여행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여러 책을 읽었는데, 앉아서는 한 줄도 읽을 수 없었다. 하이데거의 책과, 헤겔의 철학사였다. 헤겔의 철학사는 처음 부분만 겨우 번역된 것이었다. 가끔 도서관에 가면 앉아서 책을 읽었으나, 집에 있을 때는, 한시도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도서관에 다녀오는 것도, 뛰어다니면서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 때문에,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증오를 심어주면, 내가 겨우 목숨만 유지하고 있어도,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내가 글을 쓰고, 그 포장된 도로만큼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읽을 수 있는 것은, 성경책 말고는 한 권도 없었다. 아주 기분 좋을 때만, 한국 단편 소설을 읽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가 티비로 교육을 받지 않으나, 중고등학교 때에, 그러나 우리는 겨우 대사를 외우고, 연기하는 사람들의 두뇌를 이식받게 되어 있는 것이다. 겨우 헤겔의 철학사만 읽을 때, 나는 누워서, 학교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나의 이런 말투에는, 알게 모르게, 그와 같은 한국어 번역본, 그리고 의미의 따뜻하고 전격적인 진행이 담겨 있을 것이다. 죽음이란 의미의 선명함 같은 것이다. 죽음이라고 해서, 난삽하거나, 문장이 없거나, 멍청한 타이어가 빠져서 수리적 공간을 질주하는 것만일 수는 없는 것이다. 치매에 빠지는 것도, 젊어서 치매에 빠지는 것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서, 우리가 권력자의 습관을 따라가는 것처럼, 지능이 무화가 되어서 그런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젊어서의 섬세함이나, 친구 따라 강남이나, 저녁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자 하는 도서관적 원한이라는 것이, 다만 영화나 비디오로 폭발할 때, 그렇게 내가 싫대도 미국 공포 영화 시리즈로나 폭발할 때, 어쩔 수 없이, 그것은 정말 복합적인 것이고, 양가적인 것인 것이다. 나는 그때도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을, 전문적인 철학자이기보다는, 처음으로, 무적 경험들에 관해, 자기의, 인류의 첫 생각을 남겼던, 다종 다양한 직업군의 인간들이라고, 주로 군인들, 상정하였었다. 그러니까, 공허하거나, 나와는 거리가 먼 것을 선망하기보다는, 내가 당장 아픈 것을 두고, 거기에 마땅한 제약 회사가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한국어 철학사에 대한 헤겔의 입장은 그러했다. 우리의 작은 생각들이 합성되어 높이를 갖지만, 이미 높은 관념들이라고 해서, 세상 권력이고, 사회적 인기들이라고 해서, 한 사람의 합성을 이겨낼 수는 없다고 말이다. 그 사람들의 죽음은 그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한국어가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와 같은 문체를 닮으려고 노력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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