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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시간이란 무엇인가?

by 마음대로다 2021. 1. 22.

 

 

 

 

시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철학적 깊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항상 도올 김용옥은 그것들의 바로메타가 되어준다. 우리가 보다 깊이가 있었는가? 아니면 그저 그랬는가? 도올 김용옥은 모든 그저 그런 이들의 스승이자,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김용옥이 싫다 하셨다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나비와 같다. 나비엔. 콘덴싱에 실패하면, 김용옥과 같아지고, 콘덴싱에 성공하면, 한자를 알고, 보편적인 서예가 가능하면, 우리는 벗어난다. 얼마나 책 한 권 읽지 않는 국민 주권자들이 많은가? 주자로서 또 한 번 무의미한 국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누군가 민주주의라고 써보았듯이, 나는 국민이라고 오늘 저녁 써보는 것이다. 국민은 돌아볼 것이다. 군대에서 누군가, 행군 중에, 누군가, 오분 간 휴식을 하고 싶어서, 그냥 외쳤던 적이 있었다. 한 삼십 분을 걸었는데, 너무 힘들었든지, 달빛이 환한, 강원도 깊은 산중에서 그것을 외친 것이었다. 우리는 국민으로서, 모두가 그와 같은 주장에 동의하였었다. 그렇다면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 철이, 철학은 어디에 간 것일까? 서울대학교는 철학을 할 수 없는 것일까? 그들은 아이 같고, 그들은 겁에 질려 있는가? 철학을 하고, 죽고자 하고, 누군가로부터 출입증을 얻어서, 십 년 넘게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그런 이가 한 사람도 그 달빛 아래 나오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문학을 그와 같은 주인공으로서, 배우지만, 정작, 막상, 막삼, 야마하, 그런 이는 드문 것이다. 공부는 힘들지만, 누군가 강원도 울릉엿 오분을 쉬다가 죽어도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티비를 알지 못하고, 탤런트들을 알지 못한다. 그들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도, 엄격히 말하면, 시간상으로 옳지 않은 것이다. 시간은 단절되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중심적인 것들끼리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나이가 항상 평균값을 지향하는 것일까? 단지 그와 같은 사실의 나열만으로도, 우리는 범상치 않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낮과 밤은, 우리에게 슬픈 사실 하나를, 나에게 알려준다. 자기들은 화장장에 있노라고. 그래서 단지 소재이자, 조제, 에피소드라고 여기기에는, 그 하나의 오브제 공간이 너무나 거대한 것이다.

 

그들은 내게 말한다. 여자들은 철학할 수 없다고. 여자들은 경제한다고. 내 스승님의 성함이 경재였었다. 나는 누나가 경제하는 말을 할 때마다, 딱따구리가 내 머리를 찧는 것 같았다. 나는 나에게 서재도 없었고, 티비만 있고, 맛있는 김치가 있었을 뿐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뛰어다니면, 교회에다, 친구 집들, 그리고 영화관들까지 내 집과 같을 수 있을 뿐이었다. 내가 철학을 공부한 것도 아니었고, 다들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하듯이, 나도 또한 그랬을 뿐인 것이다. 아무도 내가 뛰어다닌다고 생각했지, 손으로 밀어, 도시를 움직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내가 영화를 보면, 시간이 거꾸로 흘렀다. 얇은 진보에서부터, 진정한 학생 진보도 아닌, 본질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야한 영화를 보아도 그러했다. 야한 영화는 따분한 전후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야한 장면만 엿가락처럼 늘어졌었다. 내 누나가 자꾸 경제만을 말하고, 그것으로만 타박할 때는, 나는 머리가 아팠고, 긴장감이 넘치는 내 누나는 자기가 먼저 머리가 아프다고 펜잘을 부르곤 했었다. 그것은 속성이고, 나쁜 계단인 것이다. 뻔한 거짓말인 것이고, 세상의 모든 아침인 것이다. 음악. 그것은 단 하나의 길이었다. 자칫하면, 아무런 가족도 없이 죽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자칫하면, 일본군 자위대가 될 위기에 있었다. 지금에야 결산되는 것이지만, 걱정은 그때도, 학생 때도, 없지 않아 가능하였었다. 자족하는 마음은, 아름답고, 대기업 회사의 연수원과 같은 풍광이었지만, 그와 같은 공간으로 초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만나는 여자들마다, 그와 같은 로비에, 그와 같은 커피 하우스, 좋은 음악으로 이끌어보았지만, 여자들은 기본적으로 누워있고, 비싼 옷으로 움직이고, 겉모습만 서울대 철학과를 지망하는 패셔니스타인 것이다. 처음에는 코드가 콘센트, 돼지코처럼 맞는 것 같지만, 조금 억울하게 생긴 여자들만 파이팅이 있었고, 조금이라도 예쁘면, 기본적으로 겁이 많았었다. 겁이 많다는 것은, 먼저 전화하지 않는다는 행동을 낳는다. 내가 대상이 아니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먼저 전화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활과 같다. 남자들은 활을 쏘지만, 여자들은 활을 쏘면, 자기가 맞아 죽게 되어 있다. 우리가 그와 같은 올림픽 장면을 보지 못하는 것은, 진종오가 총을 쏘았을 때, 자기가 맞아 죽는 것이 이상한 것처럼, 이상하기 때문에, 보지 못한 것인 것이다. 스포츠는 그렇게 조금씩, 여성성을 숨기고 있다. 우리가 뽀뽀를 좋아하는 것은, 여자들도 좋은 남자에게 입을 맞추고 싶어서인 것이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 같은 티비를 보면서도, 나의 비평을 읽는 것은, 어떤 미국 영화의 재밌는 표현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진흙으로 지으시고, 그 코에 키스를 하셨기 때문인 것이다.

 

여자들도 강제하면, 강제규, 철학자의 길, 혹은 그것의 명제들의 숲을 지날 수가 있다. 우리들의 세포가, 사회생물학을 만난다는 것은 비운의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만나는 것으로 강제된 이유는, 사실 모든 적합한 학문에 대한 실험이 있었던 다음의 현상이었던 것이다. 오직 성경이라는 후천적 창세기만이, 우리를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철학자로 만들 수 있다. 그것은 존재이다. 우리의 존재가 현상만을 걷고, 생활 세계만을 생활하고, 남들 다니는 학교만을 다닌다고 해서, 삭감될 것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더욱 존재가 될 뿐인 것이다. 그러나 비존재가 되고, 단어보다는 화장에 신경쓰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렇게 슬픈 이야기는 따로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느 천사가 나타나서, 그 갈림길에서, 연세대는 와이짜를 갖고 있으나, 서울대는, 아무튼 네게 철학적 가능성이 있으니, 문학가로서의 가능성이 있으니,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르라 하는 말을, 우리가 직접 들을 수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서울대는 변태적인 것까지 어떻게든 학문에 소용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으나, 그 정문이, 조선대학교는 거미, 우리는 대학 오리엔테이션에서, 제일 예쁜 여자를 보고는, 하루 종일 그 여학생이 무슨 과이고, 자기의 교양 수업에 함께 들 것인지를, 거의 모든 정보망을 풀가동 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금방 그 본질적인 뜻을 잊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하늘 높이 솟은 기둥 같은 것이었다. 너무 기둥같이 생겨서, 도리어 비인간적이다 여겨지는 것이 있었는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나는 아무 상관이 없다 결론이 나면, 그 또한 너무 가혹하고, 비인간적인, 슬픔인 것이다. 대학에서 비를 맞다 보면, 원래 학생들은 얇게 입어서, 비만 내려도 추위를 타는데, 그 천사가 나타나서, 너는 학문적 정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번 한 말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렇게 깨어있으라고 해도, 우리는 겨우 성적만 맞추고, 잠을 청하는 것이다. 경영학은 과 수석을 해서, 사회적 거리두기 회사에도 취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겠으나, 뭐 그런 식의 연결을 통해서, 인문과학은, 폭력적인 나 말고는, 내가 오십까지 살았으니까, 오십까지는 살 수 있다는 사실의 고지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내 친구들은, 배우들은, 화장 묘지터에서 서로 만난다고 한다. 멀쩡하게 경영학과를 나오면, 그렇게 병에 잘 걸린다고 한다. 확률이 약 두 배 정도. 돈을 많이 벌면, 싸움을 그렇게 많이 한다고 한다. 원래 문과생들도 싸우기 일쑤이나, 항상 외국과의 전쟁이나, 세계 전쟁이 그렇게 사망자가 많은 것처럼. 그래도 누군가 죽으면, 화장 묘지터를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대각선이고, 층이 맞고, 다른 공간에서 소리를 지르면, 돌아보는 것이 있는 것처럼, 아무래도 한때 가족이었던 사람이 기억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 얼마나 낮과 밤이 처절한지 모른다. 우리는 경험과 기록으로 산다. 그것은 문학도 아니고, 신방학도 아니다. 경험은 매일 싸웠다는 것이다. 싸우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하는데, 그것은 해가 되고, 독이 되지 않겠는가? 혼자 있을 때는, 혼자여서 죽는 것이고, 가족으로 강제될 때는, 붙어 있는 것이 싫어서, 다른 것이 거기에 붙어서 죽는 것인 것이다. 어떻게 택시 기사로 일할 때면, 화장 묘지터에서처럼, 아들처럼 보이는 사람이 손님으로 탄다고도 한다. 그 사람은 아들이 아니었을 것이나, 기억이 없는, 진짜 아들이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티비를, 그들 만의 에칭이요, 영생이라고 부르지만, 이런 사연을 알고 나면, 눈물이 한강처럼 흐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사탄의 여자도, 편의주의적인 영생론을 믿는,

 

 

그러나 자기 아들이 막삼 죽으면 사흘 동안을 운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