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단계
우리는 몇 개의 단계를,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어떤 아버지가 있는데, 아들이 놀이동산에를 놀러 가자는 것이다. 그것은 원하고 원망하고. 아버지가 시간이 없지, 돈이 없지 않다는 것을 어린 아들이 잘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한 번 놀이동산에를 가본 적이 없다. 그의 여행력은,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대학에서 의무적으로, 엠티, 그리고 수학여행, 수학 문제를 푸는,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면 고속도로 곳곳에 있는 휴게소에다가 떨어뜨려 놓는, 그런 이야기는 셀 수가 없다. 그리고 신혼여행이 있었다. 신혼여행을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잠깐 무슨 귀신에 씌인 듯 여행했던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래서 의외로 놀이동산에를 한 번 가본 적이 없었다. 아들이 그렇게 떼를 쓰니, 아내와 함께, 아들과 함께, 그렇게 가서는, 아버지는 마치 단짠 커피처럼, 달콤했다가, 두려웠다가, 달콤했다가 두려웠다가 그러는 것이었다. 그의 고향은 차가운 벽장이었고, 어떤 한국 소설처럼, 어려서 곧잘 갇혔으나, 나중에는 거기가 편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사람은 놀이동산에를 가고 싶어한다. 중국은 거대한 놀이동산과 같다. 우리가 중국을 그렇게 낮게 여기는 것인가 할 수 있겠지만, 중국도 한국이 놀이동산과 같고, 일본이 한국의 미국 디즈니랜드인 것은 사실인 것이다. 교육과 정치는, 그 나라의 토속세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다만 높은 교육 제도, 수준, 그런 어떤 커리큘럼이나, 기자재, 그리고 나라를 대표하는 선각자, 사상가, 그런 것들이 있어야 하지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토속세력이란, 지금처럼 산업화가 완전히 이뤄지기 전에, 논과 밭의 경계에 있던 자연에서, 전쟁 이후에, 거기서 그냥, 풀들이 입에 풀칠만 하고 잘 자라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그것은 한자와 같고, 그것은 시경과 같으며, 성시경은 아닌, 그것은 망각과 같으나, 어렸을 때는 두려움과 망각이 없는 법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한 사람 안에서 이뤄지는 정복 전쟁을, 포에니 전쟁을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전쟁영화들이 있어왔다. 지금은 별로 없지만, 옛날에는 정말 해가 지지 않는 전쟁영화의 나라들 같았다. 학생들이 그래서 학교에 가서, 그것들에 관해서 비평하고, 정리하고, 철학적인 추구를 하였느냐? 아쉽지만 그것은 아니고, 우리가 사는 시대가, 시기가, 전쟁이 아니기 때문에, 다만 시각 세포처럼, 양파 세포처럼 사라져갔었다.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나이 많은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우리들 독립군 전쟁, 임진 왜란, 병자 호란, 태평양 전쟁, 한국 전쟁, 비엔남 전쟁, 가와사키 비엔시리즈 같은. 우리는 이 전쟁이 끝나고, 공부를 하겠거니 했으나, 그런 일은 일절 없었고, 나의 영향에서인지, 겨우 도올 김용옥이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 하는 찰라에, 티비에서 그렇게 논어와 노자를 강연한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와 같은 전쟁 영화의 빚은 결국 내게까지, 우리들 옛날의 유명한 대학가요제 대상 작품처럼, 부산 대학교, 밀려오는 파도 소리, 밀려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의 긴장은, 그러니까 영화는 긴장은 서스펜스하고, 마이클 잭슨 쓰릴러, 그렇게 표현할 수는 있으나, 주자학적 빛으로는 그것이 어려운 것이다. 영화가 빛의 마술사와 같은데, 어째서 그것은 빚이고, 다만 주자학적 빛만이 참다운 빛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조선시대는 조선 성리학, 주자학의 시대가 아니었는가 할 것이다. 그러니까 그 빛은, 맑은 개울의 빛과 같아서, 오직 물고기들만 재빠르게, 동요처럼 숨을 쉴 수 있는 것이고, 그러니 물살에 들어가면, 햇빛이 이지러지듯이, 빚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중국의 촉산을, 족산이라고 하지 않고, 촉산이라고 하듯이, 펜의 촉을 펜촉, 펜족이라고 하지 않고, 펜촉이라고 하듯이, 무엇인가를 잘 고르고 선택하는 것을 영어로 초이스라고 하고, 커피나 과자에 이름 붙이기 좋아하듯이, 조이스라고 하지 않고, 그것은 왠지 아까워서, 조이너스, 옷 이름에 붙이듯이, 조선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초선일 것이나, 왠지 모르게 유주가 노래하면서 발음하면, 조선이 될 것 같은, 놀이, 막연하고 재미있는 우리들의 플레이가 있는 것이다. 초난강이 한국에서는, 한국 이름 조난강이었으나, 일본으로 가서 초난강이 되고, 콩고 왕자 조나단이 때로는 초나단이라고 불리는 것이 없는 것도 그런 이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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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저와 같은 아스라한 자연에서, 한 사람이, 인텔리가 걸어나오는 것을 두고, 저 사람이 피아니스트다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것은 정말 법조개 같고, 조개사 같은 것일 것이다. 그는 전쟁 중에 살았던 것이다. 그의 마음은 차가웠고, 그러나 친구들이 훈장처럼 달아놓은 웃음이 몇 개 있었다. 그러니 그와 같은 소설, 티비문학관, 베스트셀러 극장에서, 피아니스트도 하고, 선생도 하고, 소설가도 하고, 그런 것을 다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다만 선생만 해도, 피아니스트가 도와주고, 소설가가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문제를 풀다가, 사지선다 형태의 문제를 풀다가, 눈물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를 다시 볼 수도 없고, 풀 수도 없을 것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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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윗의 시가 두렵고, 찬송이 두렵다는 말을 할 수가 있다. 그것은 두려움의 마지막 단계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미국 존재의 마지막에서, 도리어 다윗의 시는 빚에서 빛으로 나아가고, 우리는 그와 같은 기름의 빚에서, 존재의 빛으로 나아가고, 찬송이 세상의 모든 토속세력과 하나가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교육이고, 그것은 교육 제도이며, 그것은 세상의 모든 조지 마이클의 지저스 투에이 차일드인 것이다. 서양은 그들이 그리스의 철학과 기독교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즉시 그들 본질의 사탄적 제국주의로 팽창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바깥의 두려움을 화폐 가치 삼아서, 내치로 사람들을 내치고, 저 놈을 매우 쳐라, 처치, 다스리기가 너무나 전공적이었고, 전공선택 같았고, 편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의 무시무시한 군사력이 마침내 세계 정복에도 효능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나, 단테의 신곡이 등장한 것 같은 혐의가 발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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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째서 세종이 세조가 되었는가 하였다. 그렇다면 그 폭력적인 세종은, 자기의 그림자를 남겨두고, 다른 지옥천왕들과 어디로 갔는가 하였다. 이와 같은 독법은, 우리들과 같은 평상시, 그리고 보통의 교육제도로는 소지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유럽 사람들이 수천 년, 수만 년, 지옥에 살았어도, 인간 자연에의 긍정, 그것의 조선까지 어쩌지를 못했다. 그것이 또한 군주론이기도 하고, 신곡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단종이 있다는 것으로도,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고, 행복해 하였고,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
달리 보자면, 우리들의 생명과도 같은, 그와 같은 수학적인 관(coffin)은 거대 수학적인 귀결이며, 예수님의 십자가처럼, 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이다.
체리엇오브 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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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예수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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