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집에서 지내고 있는 아들이나 딸이 씻고 있으면, 어머니가 그렇게 묻는다지 않는가? 어디 가냐? 그러면, 어디 가는 경우에는 마땅한 답을 할 것이고, 어디 가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가렵고, 머리 감는 김에 샤워도 한다 싶으면, 그냥 씻는다고 할 것이다. 거기서 우리들의 한국 소설과 드라마, 그리고 나의 수필과 어떤 것이 구분이 될 것이다. 우리들은 저녁에 머리를 감고, 책을 조금 더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고, 티비를 보는 것이 쉬운 일이다. 유튜브는 책과 티비 그 중간에 있는 것 같다. 오만석이 자기는 숱한 탁구러와 아마추어의 중간, 딱 중간에 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 유튜브는 여자들 옷갈아 입는 것만 보자면, 유튜브에 책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무접점, 무접점, 그런 키보드 프로그램을 보다가, 음악을 듣고, 슬픈 음악을 듣고, 슬픈 한국 노래를 듣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존재는 가볍고, 빛 같으며, 세상 모든 교회의 여백의 미 같은 것일 것이다. 우리는 책을 읽을 수 없다. 그만한 책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같은 책을, 한국 사람이 지은 것이 없다. 정열은 도올 김용옥에게는 있지만, 주먹 권자, 책 권자, 태권도 권자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싶다. 옛날 노래를 듣고, 옛날 영화를 보고, 옛날 사진을 유튜브로, 오만석처럼 해보다가, 프로 탁구러처럼 넘어간다고 하면, 우리는 막히게 되는 것이다. 그곳에는 거대한 벽이 있고, 장벽이 있고, 만리장성 중국집이 있으며, 오대수가 싸우고 있고, 뭔가 경제 개발, 철학 개발 몇 개년 계획이 맞지 않고, 이제는 타임 트래블러가 등장하게 되었고, 그와 같은 시점에 도달하게 된 것일 것이다. 그것은 때로는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 현대적이다, 때로는 근대적이다, 도시적이다, 촌스럽다, 빈티지하다, 그런 말들이 어느 정도 사라지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 흰 벽은, 아름답고, 종교개혁 같으며, 그 흰 벽은, 읽는 것보다 많은 것을 마음으로 구입하였던, 옛 시절의 청년들의 독서와 같은 저녁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말을 잘함으로써, 매트릭스 시리즈에서처럼, 외계의 침략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고, 우리를 단속하고, 학교를 나온 우리들의 언어 능력을 지탱하고, 유지하고, 어느 정도 냉장시켜주고 있다. 그것은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티비를 보다가, 그것의 모든 채널을 보다가, 유튜브로 들어와서, 음악을 듣고, 새로 발견한 아름다운 음악을 계속해서 듣노라면, 어째서 티비에서는 이런 것이 불가능한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라디오 프로그램도 좋지만, 나에 대해 대놓고 아는 척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새 옷 입고 모여서, 비객관적이고, 안 객관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천금 같은 시간과 커피를 몇 개 흡입하는 것 같기도 하는 것이다. 인터넷을 하고, 유튜브를 하고, 인터넷을 하고, 사람들이 곱창과 순대, 천엽도 먹고, 소주도 하면, 금방 시크릿 가든, 이제는 슬픈 음악을 할 수 있다 누군가 선언한 것처럼,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의 슬픔, 피라밋의 모래 가루는 나에 의해서 완성되었을 것이다. 그것의 방향은, 향방은, 알 수가 없고, 다만 정방형이며, 그런 것이다. 황사가 먼저인가? 아니면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먼저인가? 아직도 우리는 문제를 풀 수 없다. 처음에는 나의 말은 그와 같은 힘이 없었다. 광인의 언어 같기도 했고, 이광기가 한동안 인기를 끌기도 했다. 중종의 연기를 했던, 어떤 이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나는 어째서 글을 쓰는지, 그것을 알려고 했지만, 알 수가 없었고, 그것을 너무 알려고 하는 것이 때로는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피아노 음악들과 함께 글을 쓴다. 정말 그와 같은 우연의 일치는, 비단과 같은 슬픔은, 나의 대학 시절에서부터 비롯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외출을 마치고, 기숙사 방에 들어왔을 때, 적당히 피곤하였다. 나보다 똑똑한 이가 있어서, 저 학생보다 탁구를, 당구를, 영어를 더 잘하여야겠다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자도 되었고, 때로는 공부를 더 하여도 되었다. 이래 가지고, 헤겔과 같은 철학자가 될 수 있는가? 항상 그와 같은 생각을 하였다. 나는 어둡고, 밝고, 해태 타이거즈, 혹은 키아로스큐로 같았다. 공기가 좋았는데, 서울은 힘들고, 나의 별장 같았었다. 그것은 사람들 모두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는 학생들과 친하기도 하였고, 친하지 않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나의 기초적인, 처음, 그 모든 말의 로고스, 그것의 우연성에, 신학생이 없었느냐? 그렇지 않고, 신학생이 있었다. 나는 똑똑한 여학생을 목숨을 걸고 찾았었다. 나는 그와 같은 똑똑한 여학생을 찾아 길을 그렇게 밝혔었다. 조금이라도 똑똑한 기운이 있다 싶으면, 그렇게 반가워하고, 박수치고, 손뼉치고 하였다. 도서관에서, 서가에서, 라꾸라꾸 침대를 펴서 잠을 자도 될 정도로, 대상적 피곤함이 없었는데, 그것을 무등산 서석대 입석대로 보자면, 대학을 입학해서, 책 한 권 마음대로 빌리지 못하는 마음과, 초조함, 스스로의 자격지심이 얼마나 많은가? 나 아닌 다른 학생이 아니라, 나 아닌 여자들이라는 것으로, 일식에서의 해와 달의 크기가 서로 정확하게 일치하였던 것이다. 책을 읽을 때, 기뻤고, 시애틀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 같았고, 사람들도 그렇게 기대했고, 나는 당연하다 여겼고, 동시에 슬펐었다. 똑똑한 나이 많은 후배 한 명이 들어오긴 했는데, 왠지 모르게 갑갑했고, 여자 친구가 많아서, 그 중에 한 명을 소개 시켜주는 사통팔달 같은 이는 되지 못했었다. 다만 나의 인기를 적당히 자르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져가고, 민속촌 드라마 찍는 곳으로, 그곳의 배우들과 엑스트라들에게 가져가는 것 같았다. 대학원 다니는 사람을 만나, 서울에서 서로 세미나도 하였는데, 그도 왠지 모르게 갑갑했고, 아내가 내 눈에는 매우 예뻤는데, 서울 어디에서 뭔가를 살 때, 동행하게 하고, 뭔가도 서로 맛있게 먹고, 그런 자리를 일절 만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도 나의 특별함을, 북돋고, 동시에 막고, 결정적인 지원은 없는 것으로, 어떤 세력과 합의를 본 것 같았었다. 우리가 타자를 칠 때, 오기를 하여서, 캐나다 오타와를 쳐서, 딜리트를 자꾸 누르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타자를, 치기를, 쓰기를, 그만두지 않겠는가? 그리고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나의 알 수 없는 방향과, 결정적으로 일치하지 않아서, 우리들은 서로 헤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내게는 아름다운 장면은 하나씩 갖고 있었는데, 하나는 타자를 매우 빨리친다는 것이었고, 피아노도 잘 치고, 배웠느냐 물으면, 그런 적 없다고 서울에서 천재를 과시하고, 서울에서는 그런 사람 한 사람 쯤은 있는 것 같아서, 지금 자기가 그런 연기를 하겠노라고 사람들에게 공산당 선언하는 것 같은, 다른 사람은 무조건 배우는 것으로 있는 것이었다. 비전문적인 분야와, 비전공적인 것, 그리고 비직업적인 것과, 기독교적인 것에 대한, 오체투지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러면 무엇인가? 그 둘 모두 내가 부족한 것인가? 내게 힘을 준 것이기 보다는, 나도 그들에게 여래장이 되고, 낯선 것이 되어서, 영원적인 객체, 객체는 원래 영원적인 것이니까, 그렇게 보였던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소설을 어떻게 잘 쓰는 것이냐, 누군가 간접적으로 묻고, 내가 답하는 것처럼 철이 그렇게 답한 것일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에 대한 열정이 산화머니 같은데, 산와,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 공평한, 너무 깊은 방언 기도 냄새는 나지 않는 것이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익표형은 이름이 너무 좋고, 말할 때마다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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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째서 비장한가? 돌아보면,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것일 것이다. 원인이 없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늘 말을 비장하게 한다. 여자들은 그런 서석대 같은 나의 말을 좋아하기도 하고, 적당히 외면하기도 하고, 그럴 것이다. 나는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장한 시간에 걸맞게, 집중력을 높여 보면, 나는 항상 여자들의 정신병을 끌고 다녔던 것 같기도 하다. 정신현상학이란, 정신병리학이기도 하다. 그것을 선선하게 설명 다 해주는 서울 사람이 없다 싶다. 복잡하면, 현상이 되지 못하고, 다시금 병리학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만다. 그것은 나의 원천유원지 같은 것이다. 얼마나 엠티 가고 싶어하는가? 관심이 없었는데, 특별하지 않은 때에, 오늘 엠티가 있다고 하고, 그와 같은 흰 벽, 그와 같은 동아리실, 갑자기 끌려가서, 밥을 짓고, 찌개를 끓이고 있으면, 여자들은 까마귀처럼 울고, 좋아하고, 떠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책을 늘 언제나, 그렇게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었다. 여자라고 예외는 없었다. 그리고 나도 사명과 훈련을 다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제자훈련을 하지 않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정하였고, 늘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기 좋아했었다. 사람은 컴퓨터다 하는 정의도 그 시절에 이뤄지고 있었다. 그것이 퍼스널할 때는, 결코, 운동권이나, 과도한 전도 단체의 어법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을 의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고, 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던 것일 것이다. 여자에게서 병리학이 느껴질 때는, 나는 긴장하였고, 항상 그와 같은 경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선적을 할 때, 배에 밧줄이 크고, 단단하게 매어져 있지만, 한쪽으로만 컨테이너를 쌓다보면, 배가 기울게 된다. 남자들에게서는, 즐거움이나, 파이팅이 있었지만, 여자들에게서는, 기울기가 있었다. 그리고 늘 언제나,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군인처럼 죽고 싶어했다. 그것은 나의 미세한 말의 음파가, 상대에게 전이되어서, 그런 것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필연적인 과정에서, 여자들은 너무 얇은 그림자를 가지고 있었다. 어딘가에는 보다 단단하고, 특수하며, 내게도 필요한 자료를 가져다 주는 이가 있겠지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다 사귀는 주의라는 것도, 다사귀즘 같은, 당랑권 같은, 그와 같은 권리 같은 것을, 상상하기도 했었다. 담론을 나누는 것이기도 하고, 당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기치로서의, 생활 세계의 문예 운동이기도 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프로그램 저장되었다가, 나올 수 있을지 모르는데, 다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걱정이 앞서는 피곤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낭비적이고, 걱정이 주인이 되는 이상한 사태인지 모르겠는 것이었다. 어쩌면 사라사태, 지고이네르바이젠 같았다.
원천유원지만 생각하면, 짧은 시인보다는, 만족스러운 폭을 가진 시평론가 같고, 수묵 담채화 같고 그렇다. 나오는 길에, 인형 맞추기 사격도 하는, 그런 주술목 구조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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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가가 다들 국어를 가지고 있고, 유행하는 대학들을, 그러니까 유튜브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거기서 기차 여행을 하고
시간을 낭비하고
기억을 낭비하는 것은
수필적인 합정역 같은, 그런 영혼의 지속을 지향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모든 국가는, 그리고 대학은, 스스로 대학을 지향하는 것일 것이다. 처음에는 사하라 사막도 에덴동산 같았을 것이나, 어째서 젊어서 만민이 공평하게 배우고, 나중에는 스스로 그것을 해야하는지
한국어가 과연 서양의 언어들보다
우월한 것인지......
태초에 거대한 궁창이 있어서, 사람들을 그리로 보내는 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 세상은 그것을 멈춘 지구와, 지금까지 그렇지 못한 지구로 나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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