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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와 순수이성비판

by 마음대로다 2022. 9. 14.

 

 

 

 

대도시와 순수이성비판

 

 

 

 

 

 

 

 

 

 

우리는 서울을 갖고 있으면서도, 순수이성비판을 하나도 패스하지 못한 사람들을 배출할 수 있다. 우리는 배호 가수가 살아있으면, 훌륭한 시인이나, 사상가, 문학가, 그런 사람이 될 것 같지만, 반대로 이상한 이단 집단의 어떤 것들을 옹호하고 동시에 과시하고, 과장하고, 자랑하는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 같은 것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배호는 어디로 간 것일까? 우리들의 배호는 듣기가 쉽다. 그래서 순수이성비판 하나 읽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배호 자신부터 그럴 것이고, 순수이성비판은 그렇다면, 내 오래된 교회 후배 이름, 허명인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배호의 노래들은, 순수이성비판 같은 것들을 지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것은 양세찬 양세영 주연의 느낌으로, 우희진, 그친 것 같다. 서울은 그런 힘이 있다. 처음에는, 배호가 오래 살아서, 때로는 여자로도 살고, 그래서 훌륭한 작가가 되고, 사상가가 되고, 특히 주자의 가난에 관심을 갖는, 비상한 존재의 핵심 인물이 될 것으로 여겼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전부 과장이 되지 않는 것은, 대기업, 배호의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명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태어나기 때문이다. 임마누엘 칸트, 이름부터가, 엠마뉴엘, 영화로 제작되지 않았다면, 매우 거부감이 들었을 것이다. 임마누엘 칸트, 그는 독일 사람이다. 그것은 밀과 보리도 알고, 속초와 삼척 사람들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순수이성비판을 알 수 있는 확률 같은 것을, 서울 사람들이, 한강의 모래 사장 근처의 사람들이, 밤섬, 있지 않을까 싶다. 서울대에 가면, 서울대 철학과 과사무실이 있고, 학생들이 입학하고, 배출되고 그렇다. 나는 늘 보고를 받는데, 그런 환상, 박지윤 노래 중에 있는, 독서에 성공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인간은 죽는다 하는 실로기즘, 그 말을 들을 때 그렇게 우스웠다. 철학이 우습다기보다는, 인간이 죽는다는 말이 우습기 보다는, 광주에서 공부하면서, 그런 유사 철학적 빔으로, 존재가 사라지는 사람들이 연상되어서였을 것이다. 도시가 그렇게 대도시여봤자, 부산에 샌텀 시티가 있어봤자, 완도의 신지 해수욕장보다 못하는 것이다. 그냥 구입만 해도, 안기부에 보고가 된다는 전설이 있다. 그것은 고향과 같다. 그리고 그가, 생각의 정점에 있고, 동시에 멋짐 폭발과 같은 몸체를 가질 수 있는지를, 응원받고, 호기심 받고, 먼발치에서 바라봄을 받고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있겠는가? 인간은 죽는다. 너도 죽는다. 그렇게 다 죽는다는 철학. 그렇다고 하면, 웃지 못하는 사람들이, 청년들이, 소년과 소녀들이, 전부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선험적 시공간이 없는 것이다. 음악은 시크릿 가든, 파사칼리아, 혹은 어타임 폴어스, 그렇게 우리들의 뼈에까지 추석이 물들고, 잘 익은 김치가 스며드는, 어떤 애타는 학교 풍경 같은 것들, 친구의 책가방, 울지 못하고, 하나씩 하나씩, 그것들을 닦았던 모습. 지금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독일 사람이 아니더라도, 순수이성비판 같은 것을, 순수한 교과서나, 어떤 가방 같은 것을, 분명 희망할 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가까운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면, 아들과 딸들은, 텍스트 바깥에 있지 못하고, 티비에 포섭되고, 그것을 의심하지 못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부모가 두려운 것은 아닐 것이지만, 왜냐하면 그들은 대단히 나실인 같은 이들일 것이기에, 하지만, 어디서 두려움을 가지고 왔을 수가 있다. 우리는 서대문형무소 같은 것이, 순수이성비판을 읽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국문학과 학생들은, 늘 그들이 일본군 칠삼일부대처럼, 철학책을 읽지 못한다는 자괴감이나, 실험실감, 표본실감, 청개구리감이 있어서, 만만한 배호의 노래나 듣고, 오징어 게임이나 좋아할 운명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은 가당치도 않는 고민이고, 주제이고, 목표이고 대상이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이 그나마 잡히기 때문이다. 열심히 국문학 공부를 해서, 미국의 에미상이나 받을 운명이라는 것이, 칠삼일부대처럼, 선명한 것이다. 삼팔사공 유격대라고 있었다. 그것의 모습이, 어린 내게 매우 박력이 있었다. 사람들은 매우 좋은 노래들과, 드라마들을 보았다. 그것은 내가, 박력있게,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그리고 판단력비판을 사보았고, 그것을 의심하여, 겉돌고, 그것의 핵심을 도리어 다른 데서 발견하고, 적출하고, 영혼이 대상과 삼투압할 수 있는, 그런 길을 내가 가고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말이 선명하고, 사람들은 이상한 문선명 때문에, 말이 선명한 것을 도리어 싫어하기도 할 수 있는, 그런 기이한 한국 사람 운명 원투쓰리, 그것들의 석회암, 이런저런 암석류와 내가 대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대한민국을 들뜨게 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피크, 그런 단테스 피크나, 기타의 피크를 지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철학적 선험성이 있는데, 오징어 게임처럼, 한국 땅에서, 일본의 여자와 총리가 될 것 같은 정신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가? 그는 한국 사람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순수이성비판을 읽고, 해석하는 사람에게만, 한국인으로서의 귀화를 허락한다면, 한국 사람들은 오징어 게임처럼 무더기로 탈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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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울은, 그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가정해서, 팽창하고, 먼저 있고, 나중을 약속받는다.

 

우리는 동시다발적으로, 삼각산의 침출수가 터져 나오는데, 그것을 감당할 만한 아무런 작가나, 칼럼니스트가 없다.

 

*

 

우리는 정말 절대의 초월적인 완벽한 철학적인 정신을 위해서, 육체를 제거한, 인간의 상태를 상상할 수 있다. 우리들의 이성이 막강하면, 그와 같은 상상은 우리를 침범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 국적의 미국 에미상을 많이 받다 보면, 우리는 그런 생각을 문득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노화가 되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처럼, 그와 같은 움직임이 둔한 기계 몸이라는 것은, 일년 정도 후에, 그 불쌍한 인간의 판단력을 모두 빼앗아 간다고 한다.

 

고개를 쳐드는 것은, 드라마가 일본 에이브이보다 재미가 없다는 신호에서부터, 출발할 수가 있다. 그리고 지금은, 독일의 프로이센 시대보다는, 움직임이 인간을 뛰어넘은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

 

 

 

*

 

 

드라마는 순수이성인지, 실천이성인지, 우리는 분류할 수가 없고, 자신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탄은 항상 이런저런, 미국의 에미상 같은 것으로다가, 따먹으려고 한다.

 

같은 궤도의 것이다.

 

처음에는 다른 궤도를 쓰는 것 같았으나, 판단력이 제로가 되는, 주구장창,

주구장창

     주구장창

 

같은 무한궤도의 것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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