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몇 명뿐인 세상
국정원 생명체들은, 내가 태초나, 지옥이나, 사탄을 언급하면 굉장히 좋아한다. 왜냐하면, 마구로, 혹은 코모도, 뱀이나 아나콘다, 그런 것들을 보고 형님 형님 했던 한 철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 대화도 가능하다. 그것은 일방적이다. 하지만 짝사랑은 일방적이고, 국가도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짝사랑하지 않고, 짝가슴 갖지 않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우리는 편육 같고, 우리는 컴퓨터의 내부 키트 같고 그렇다. 우리가 순간적으로 필름들을 연결하고, 우리가 평면으로 연속되는 것을, 우리가 끌어당겨서 이해해서 그렇지, 그것들도 다들 짝사랑하는 것들이고, 마구로나 코모도, 아나콘다, 그런 것들을 두고 형님 형님 했던 계보의 것들인 것이다. 신학을 공부해서, 뱀 하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았다면, 신학을 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들의 프레임이 몇 개 없어도, 전체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조금만 속도를 높이면, 드디어 방패가 없는 가슴이나, 매우 이상한 사랑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중국 영화 인어도 마찬가지이다. 인어가 인어인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짝들을 제거하고 나니까, 돼지고기 편육을 더 이상 먹지 않다 보니까, 드디어 그와 같은 세상이나, 어떤 존재가 발견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늘, 쓸쓸한 음악을 들으면서, 마치 우리가 북해도의 어떤 거리, 거기서 트램을 탄 것처럼, 시험을 치르고자 했으나, 하지 않고, 집이 부자여서, 늘 자기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관심도 없는 가족들 사이로, 여행을 떠나고, 그렇게 기독교 신학 전체적인 것을 포기하고, 동양적인 편지로, 편육으로, 어떤 여백의 미로, 그렇게 돌아가고자 한다. 그럴 수가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너무 사랑, 그런 착한 사랑, 혹은 완전 사랑이었던 것이다. 어린이가 열 세를 극복하는 것도, 인간으로서는 대단히 자랑스러운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그와 같은 열 세를 극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죽어서, 수많은 군인들과 함께 누워있는데, 누군가 와서 우세승을 선포할 수가 있다. 국가의 고민은 국가의 고민이고, 열세를 극복한 우리들의 개인의 삶은 개인의 삶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어떤 철학자는, 짐이 국가고, 이성은 국가다고 했다. 그것은 리얼한 것이고, 그것은 레이쇼널한 것이라고 했다. 어떠한 와타나베도 거기서 자라날 수 없다. 아무리 인간이 영남형으로 생기고, 호남형으로 생겨도, 그와 같은 초능력의 인어들을 이겨내고, 감당할 수가 없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바닷가에 가니 인어들이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멀어지면, 당연히 영화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학교에서 영화 관람을 했던 것도 지금 보면, 우리가 뭐 하는 짓이었나 할 수가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영화라고 할 지라도, 어떤 메시지가 있는, 사회적인, 그런 것일지라도, 우리가 그것의 빛깔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탄은 영원히 살면서도, 사는 것이 이상한, 그리고 인간 사이에서 생명 연장하고 싶어 하는 매우 분투적인 존재라는 것 밖에, 다른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처럼, 거기서 떨어지는 것을 먹고 지낼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우울하고, 거의 매일 같이 공부하고, 기도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그럴 수밖에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태초에, 에덴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저 한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는지, 그가 죽을 때까지 실험을 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것이, 주변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함께 죽여버리면 되지 않겠는가? 우리가 법대로 사랑하는 것은, 법이 바로, 그와 같은 죽음의 진파와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와 같은 원리와 인과를 잘 모르겠다 하겠지만, 대체 지금까지 어째서 모를까 싶다. 그래서 가인이 자기 동생, 친한 동생, 착하고 예쁘고, 귀여운 동생, 그를 마침내 죽이고, 세상에 나갔더니, 항상 거기에 어떤 인간이 있는지가, 처음부터, 혹은 아직까지 있는지가, 성경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성경은 얼마나 돼지고기 편육 같고, 지금의 아몰레드 티비 같고, 아무튼 지금의 세상 전반의 것을 이미 갖고 있는 것이 되는 것인가? 역사가 발전했다는 것. 일종의 전기차 같은 것. 그런 것은 인간을 묻지 않고, 다만 자동차의 소음이 그렇다는 것일 수 있다. 국정원이 내게 붙어있는 것은, 다만 그들에게 어떤 국가적 이성, 그런 것들의 믿음이 있어서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이우일, 두려움에서 한 발짝이라도 떨어져 있는 곳에 있고 싶은, 다 같은 욕망이 있지 않은가? 우리가 만나면 서로, 남녀 서로 짜증을 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더러는 그래서 헤어지기도 하는데, 차원이 다른 것들은 해석 자체가 다른 것이다. 우리가 집에 가도 마찬가지이다. 집이 자기를 덮치는 것도 있지만, 그런 희한한 정신병이나, 아니면 실제적인 유기체 철학 같은 것, 가족이 대게 그러한데,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은 짜증을 낼 틈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뿅망치, 때리고, 게임처럼, 즐거운, 사라, 하갈, 그러면 세상은 몇 명 되지 않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그와 같은 지옥과 나와의 거리 사이에 있는 것들의
*
일본에 케이지라는 만화가 있었다. 아주 선풍을 일으켰다. 우리가 선풍기의 키를 가운데 단추를 조작해서, 더 크게 할 수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그런 만화 내용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있지 않았고, 그와 같은 생각에 줄거리의 불을 당긴 것이 바로 그 만화였을 것이다. 일본은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와 같은 연속은 무엇인가? 일본이나, 한국이나, 서울대나 동경대나, 입학하지 않으면, 못하면, 부모가 때린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입학하면, 차 사주고, 집 사주고, 해외여행 보내주고, 여자 친구도 소개해 주는 것이다. 그것은 돼지고기 편육 같은 사물의 질서이다. 그리고 그것의 의미적 관계는, 의미의 내포는 아니고, 의미의 지시 대상이나, 방향은, 늘 언제나 지옥의 경쟁인 것이다. 그것은 의미일 수도 있고, 실제로 그 어떤 공간을 상정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뉴스에서도, 어떤 사건사고, 그런 것에서도, 다만 친족끼리 죽이고 죽었다는 이야기만 있었지, 그런 특수 공간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것은 고딕 양식 같기도 하고, 로마네스크 양식 같기도 하다. 그리고 얼마나, 외국은,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가? 그것들의 리액션 장인들은 따로 모아다가, 북한에서 총살을 시키고 싶은 심정이다. 평론이 없다는 함정을 그렇게 잘 이용하는 것들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그것은 존만한 은하수 같고, 씨발 개좃같은 조까치들 같다.
*
우리가 모세의 이야기를, 아론의 지팡이를, 그렇게 슬픈 뱀처럼 흘려보내자, 이집트의 마술사들도 같은 마술을 행한 것을 알고 있다. 그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가, 내가
서울에서,
어떠한 지옥의 마술사인지가 증명이 되는 대목이 될 것이다.
영화라는 것은 비슷한 원형 구조를 맞추는 것일 수가 있다. 우리가 음악이 서로 비슷하다 여기는 것도 그렇고, 만일 표절한 음악이, 너무 향신료가 서양 것이나, 일본 것으로 여겨져서, 아예 애정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못하고, 우리의 척추와 송과선 근처까지 그것들을 흡수하고, 좋아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의 제철소 코일 같은 원형이 매우 서로 비슷해서인 것이다. 영화에 가면, 영화에 이르면, 그것이 서로 조심해지고, 어려워지고, 케이지와 오징어 게임이 서로 비슷하다는, 단지 그와 같은 비난과 비판의 단초만 있을 뿐이지, 우리들의 사람들로, 그리고 우리들의 어떤 모래알들로 그것들을 채우면, 그와 같은 생각은 인어처럼 일어났다가, 중국영화 최신작, 그만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영화는 만들기가 어렵고, 우리가 그것을 우리들의 고통의 메신저로 여기고자 해도, 아이디어를 얻기 어렵기 때문에, 이전의 소설들이나, 영화들을 참고하게 된다. 이순신 장군의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그것도 위대한 신현균의 영화 평론이라고 하기가 그렇고, 다만 이전의 이순신 장군 영화가 있어서, 기록이 있고, 난중일기가 있고, 그래서 그랬을 수 있다.
그런데, 혹은 그렇게
영화 헌트를 보면,
몇 개의 그와 같은 코일들이 떨어지고
마침내 도달한 우리들의 영화 같기도 하다......
Andre gagnon, L’inoubliable.......
이성은 쭉정이고
이성은 가라지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모여서
우리들 동남아시아를 구성한다는 것이
가뇽의 말처럼, 믿기지가 않는 것이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