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아. 혹은 두바이. 인간은 슬픈
만물의 척도다.
물에 술탄 듯도 있고, 물에 물탄 듯도 있다. 그들은 문학은 절대적 정신에 도달했으나, 막상 증거나, 문건, 그것들의 테시티모니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없다고 말하기가 어렵고, 완하이, 인디아, 두바이, 한자 더버그, 그러나 우리들에게 이롭게 지금 있다 말하기도 그런 것이다. 다만 확증 같은 것. 확진 같은 것.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천구백 년대 같은 것. 그것은 친구. 그런 것은 분명 있는 것이다. 나는 상상할 수 있다. 나는 그들의 한정된 모래와 바람, 그리고 읽기와 쓰기 같은 것. 나는 충분히 그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순정만화도 좋아했기 때문이다. 나는 전통 액션물, 깊이 있는 추혼십이검 같은 것만 좋아한 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첨밀밀 같은 것을 좋아하였다. 나의 사랑은 널리 알려진 것이고, 나는 사랑하지 않은 듯, 그러나 사랑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증거들을, 형사의 증거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 나이팅게일을 듣고 있다. 그것은 증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술탄이 내게 말했다. 전쟁이 모두 끝나고, 오직 막연한 물건이나 기호, 문자나, 디자인 같은 것들이 사람들을 괴롭힐 것이라고. 나는 그래서, 어린아이 같은 심정으로, 그런 것이면, 총알도 아니고, 씨엔엔도 아니고, 얼마든지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술에 술탄 듯, 정말 술에 술탄 듯 술탄은 내게 말했다. 아니 말하다 말고, 웃고만 있었다. 그리고 나의 장담을 부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내가 그렇게 사막을 내려오니까, 왕자웨이 감독이 임청하와 함께 동사서독을 찍고 있었다. 나는 좀더 보고자 하였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것의 갈림길에서, 어떤 지적인 갈림길에서, 우리는 언제나 그레쥬에이티드, 그러니까 견훤, 지렁이가 된다. 그래서 견훤이, 이름이, 알 수가 없다 하였고, 내가 예전에, 사람들이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하였을 것이다. 제수이트. 누군가 재수할 때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삼수할 때 눈물을 흘렸다고 했는데, 그것도 그레쥬에이트, 그레이트 마징가와 어떤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존재가 사라지는 것들이다. 그것을 티비엔, 그러니까 포토샵을 하면, 불명확도를 해서, 한 삼십 퍼센트로 놓을 수 있는 것들이다. 건담이 제법 버티고는 있지만, 사람들에게 피규어를 강매해서, 돈 많은 청년들이 불법으로 재산을 축적하는 수단으로도 삼게 했지만, 그럴 수 없었고, 지금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나는 재수를 하지 않아서, 재주도생들이 얼마나 마음에 깨를 품고, 잠바나, 어떤 외투 같은 것에, 다녔는 지를 알지 못한다. 그것은 확실히 관점의 차이이다. 차이나는 클래스. 혹은 앵글로 섹슨.
그렇다면, 그레쥬에이티드, 에일맥주를 먹지 않고, 조선맥주를 먹으면서, 전진하는 세상은 어떠한 것인가? 우리가 과연 그런 시절을 산 적이 있는가? 그것을 비유로 하자면, 문과생도 아닌데, 그리고 영화로 보지 않고, 두꺼운 서양의 소설을 읽을 때가 아닌가 한다. 나는 지금 결혼하지 않았지만, 내가 유명한 서예가가 되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뒤늦게 깨닫게 된다. 그것은 영원한 그레쥬에이티드, 떼올로지컬 칼리지인 것이다. 유니벌시티. 혹은 성현 주희의 위대한, 대학 중용할 때의, 바로 그 유명한, 대.학. 내가 정말 진심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주희를 친구로 부르지 못했을 것이다. 언덕 너머에 비슷한 학력을 가진 친구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주희였다. 나의 이름은 신휘였는데, 필명이, 사람들은 그래서 두 사람을 번갈아 부르면서, 때로는 헷갈리기도 하였다. 우리가 그렇게 시작하는 소설들을,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필법 같은 것이고, 서막이 좋다는 것이며, 틀이 제법 잡혀 있다는 것이고, 그러나 내용은 딱히 확보된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지붕을, 거리의 어간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고, 우리들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 같은 것일 것이다. 그것은 분명 경기도 화성 같은 것이며, 화성시 승격 같은 것이다. 그리고는 그와 같은 소설력이 유지가 되다가, 딱 떨어지면, 드디어 술탄이 예고하였던 세계로 진입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름이 이태리이고, 누군가는 이름이 영국이다. 누군가는 이름이 스페인이고, 누군가는 독일이다. 우리는 영국은 봐주는 편이다. 사람들이 믿지 않겠지만, 그것은 아주 오래된 고전에도 나와 있는 문장이다. 그가 어떻게 영국공이 되었는가........
*
나는 이와 같은 전북 익산을 갖고 처음부터 살았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기미는, 군산, 제법 엿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문학적으로 보면, 문학적 존재론, 문학적 형이상학으로 보면, 전북 익산은, 전북, 그러니까 나면서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있는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눈물의 고전으로 놓고, 아름답게, 영원히 거룩하게 읽지만, 지금은 나이팅게일의 슬픈 곡조로도, 야니의 도움으로도 읽지 않는가? 그와 같은 저녁의 익산은, 도리어 우리들의 만물의 척도를 동시에 함께 살았던 것일 수 있는 것이다. 화랑은 우스운 것인가? 아니면 꽃 잎 떨어지는 화랑은 진중한 것인가? 김부식은 김부각처럼 맛난 것인가? 깨가 뿌려진 우스운 것인가? 아니면, 나이가 들었으나, 기술이 좋고, 그러나 그의 녹슨 칼이 끊어지고, 자기 어린 민족이 함께 죽는, 그토록 슬픈 사기를 담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름인가?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광수를 내가 싫어했던 것일 수 있고, 변증법을 발견하고, 태국의 태국기를 발견하고, 드디어, 마침내 좋아하게 된 것일 것이다. 박노해의 시가 지금 아주 가끔 읽히는 이유는, 내가 그동안 너무 모델리즘적인 문학적, 그런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나이팅게일이 될 수 없는 것으로, 대신 박노해가 나이팅게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연관 때문인 것이다. 우리 옛날에, 사람들이 박노해의 시를, 정말, 단 하루만, 그는 일본 사람이 아니라, 아랍사람 하루만, 그래서 그렇게라도,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사하라 사막의 종이비행기처럼 날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니 그런 익산의 분위기가 아예 없었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다만, 그것으로 그칠 공산이 있었는데, 드디어 도달점에 이른 것으로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전진하는 하나의 숙종이 있고, 세상 전반적으로 장희빈이 엿보이는. 그것은 우리들의 내면적 자연이며, 그에 관한 풍경화인 것이다. 그것은 마치 전북 무주 같고, 전북 장수 같고 그런 것이다.
*
우리가 어렸을 때는, 영어 단어도 어렵고, 성경은 모르는 말들 천지이며, 수학은 할렐루야, 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철저한 세포로서의 존재는, 완벽한 천사처럼, 오직 하나님을 향해 전진하고, 점프하고, 다윗의 시편처럼 뛰어들어야 했었다.
.......
사평역에서
그런 장군에게서 피가 분수처럼 치솟고
그렇다면 인피등롱처럼, 말에 재간이 있는
세상이 적막하여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야, 정상이고, 지금 문명의 주소이지만
누군가 다시 말라식에 진입하고
누군가 다시 그런 하늘식을
듣게 된다면
육체파 배우들을 끌고 다니는
너무 애덜트한 서예가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문장의
세상이라는 것은
'포토샾'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양 기독교 백주년 기념관 (0) | 2023.03.16 |
---|---|
영원한 책표지 (1) | 2022.12.12 |
오직 몇 명 뿐인 세상 (0) | 2022.10.09 |
대도시와 순수이성비판 (0) | 2022.09.14 |
재즈와 구름 (0) | 2022.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