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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악귀 8편: 뜨거운 한국 문화

by 마음대로다 2023. 7. 17.

악귀 8편: 뜨거운 한국 문화

 

 

 

 

 

 

 

 

 

 

세계 삼대 문명이 있다면, 그것은 한국 문화, 한국 장마, 그리고 한국 현균일 것이다. 한국 장마는 한국 기후, 혹은 사계절, 그리고 기상청 그렇게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태풍. 한국 가뭄. 그것은 정말이지, 세계 삼대 문명이다. 우리가 감기에 걸리는 것도, 우리가 학교에 가지 않는 것도, 다 따지고 보면, 기후를 잘못 만난 덕분이고, 그 때문에 감기에 걸리는 것이다. 우리가 길을 걷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가? 그것이 바로, 삼대 문명인 것이다. 우리는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도이치 그라마폰, 헐리우드, 그리고 서울대학교. 그렇게 생각했었다. 서울대학교가 대단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무튼 그렇게 거기에 있다는 측면에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들의 도시에서, 삼대 문명을 즐겼다. 얼마나 그것을 즐겼는지 모른다. 거기에서 실베스타 스탤론이 갑자기 코브라라는 영화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다이하드 시리즈도 있었다. 그것들은 분명 숱한 이전 드라마나 영화들을 물리치는 힘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삼대 문명을 만나고, 우리는 삼대 문명을 경험하다가, 둘 중에 하나는 죽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들의 삶은, 아는 것을 좋아하다가, 죽는 것인 것이다. 우리가 시험지를 앞에 두고, 갑자기 답이 생각나지 않는 것으로다가, 우리는 죽는 것이다. 그것은 객관적이고, 그것의 조건은 객관적이며, 그것은 다른 곳에서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시험을 싫어하기도 하고, 그러나 피할 수 없으니,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점점 더, 세계 삼대 문명은, 처음의 알력 관계에서 벗어나, 한국 문화, 한국 장마, 그리고 한국 현균으로 귀결 혹은 낙착되고 있다. 비가 정말, 구마라습, 동남아의 날씨만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는데, 약간의 여유, 그리고 차가운 물에 커피믹스를 섞으면 섞이지 않으나, 물 속의 내용물을 뒤섞는 맹렬한 저렴한 기계를 알리에서 사고, 그것으로 섞다 보면, 커피 믹스도 능히 냉커피처럼 마실 수 있어서, 냉커피 사는 돈을 아끼게 되었는데, 그것으로다가 마시고 나니, 정신이 돌아오고, 사람들의 염원처럼, 아침에 커피 한 잔, 그리고 드라마의 내용처럼, 온갖 공포와 혼돈, 절망과 무력감의 사회에서도, 그런 신문의 칼럼을 읽고 싶은 마음, 그런 삶을 살고 싶은 것처럼, 내가 신문사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 기댈 것이 아니라, 내가 되면 되고, 내가 하면 되는 것이고, 내가 당장, 항상 여직원과, 여배우와, 밤마다 밀항하듯이, 밀수하듯이, 인천이나 부산, 영종도에서 해외로 떠나면 되는 것이다. 중국 저 깊은 도시로, 사람들로, 뭔가를 희석해서 들어가는 것. 손석희 같은 것. 구마라습도 그러했다. 그것은 뜨거운 고구마나, 감자 같았다. 그것은 동서의 중재 역할을 하는 것 같았으나, 실제에서는 오우삼 감독처럼, 도리어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킬 것도 같았다. 장마가 계속해서 구마라습처럼, 어제는 또 문을 열어주는 악귀의 마지막 장면처럼, 아무런 약속이나 전망이 없는 것이다. 어쩌면 형사 콜롬보처럼 생긴 시대가 가고, 드디어 코브라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도 같았다. 그것의 스스로 움직이는 영상, 매체, 어떤 화소 같은 것은 때로는 반갑기도 하고, 때로는 기자 지구의 쿠푸 왕 피라미드처럼, 공포스러운 것이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구슬 모음의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고 실베스타 스탤론이, 그리고 부르스 윌리스가 좋아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공부를 제법 하는 중학생으로서, 학교 과목 전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체육도 몇 가지를 잘해서, 같은 반에 있는 적군으로부터도 박수를 받을 수 있다면, 그와 같은 사랑의 인격은, 어쩌면 세상의 제일일 것이다. 그것은 진정 유월 항쟁 같은 것일 것이다. 그러나 어렵게, 깊은 요단강 같은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에 이르면, 우리에게 있는 구슬은 한 개가 전부이다. 일종의 치정주의, 결과주의, 과시주의 같은 것이 우리를 감싸는데, 우리는 자발적으로도 감싸지는 것이다. 믿음이 좋던 국문학생이, 점점 더 불교에 기울고, 무교적인 유교에 빠지고, 유교걸이 되고, 동학농민전쟁이나, 우금치 전투, 아니면 한수산이나 한승원에 빠지는 것도, 결국 믿음을 버리고, 어쩔 수 없는 것인 것이다.

 

우리는 사평역에서, 사금을 캐낸 것을 서로 보여주고, 겨울 기차를 기다리다가, 그렇게 뜨거운 보리차 몇 모금을 마시면서 사라지는 것일 수 있다. 우리는 꿈에서, 독일 유학을 가서, 독일 관념론을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꿈에서, 셰익스피어적인 연장을 연구하고, 그것의 영문학적 보너스들을 무한하게 얻어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고, 부르노 마스, 우리는 연쇄 살인 사건에나 계속해서 휘말리게 되었다. 그것은 끝이 없고, 그것은 한이 없다. 그것은 끝이 없고, 같은 말이지만 그것은 한이 없고, 무한하다.

 

세계 삼대 문명인 나는, 한국 기독교가 어째서 발전하지 못하는지 생각하다가, 불교가 미흡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의심한 적이 있다. 그것은 불교도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이 기껏, 산중에다 절을 지어놓고, 옛날부터 지어놓은 것을, 어떤 신비한 자지처럼 유지하면서, 그렇게 지내는 것을 보면서, 기독교도 스스로 성장의 어떤 것을 지워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다. 한국 소설이, 관념적인 피치를 올리지 못한 것이, 어쩌면 이런저런 것들의 수준이 한결같아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어떤 대중 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도, 할 수 있었던 것도, 한국 학생 운동이, 시민 운동이, 세계 문명의 정점에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는가? 만일 손 더 게스트 같은 것이, 캄보디아나, 나이지리아에서 나왔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당장에, 그런 일들이 숱하게, 아무런 문턱도 없이 발생하지 않겠는가? 그냥도 서로 쏘고, 죽이는, 어떤 킬링필드, 썩은 고기를 찾아 돌아다니는 사자, 하이에나가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악귀 같은 것이 말레이시아나, 아랍 에미레이트, 그리고 짐바브웨에서 나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학생들은 공부를 하지 않고, 그런 악귀들을 쫓아내는데 혈안이 되지 않겠는가? 우리가 악귀를 찍고, 그것을 장마 기간에 보는 것은, 그것이 전부 과거 학생 운동과 시민 운동 덕분인 것이다. 우리들의 정신은, 문건은 없고, 다만 정신 혹은 집단적인 영혼 같았다. 그것을 이어령이나, 이명박, 이문열이나, 김진명 등이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아무도 악귀와 같은, 혼돈 깊은 곳에서,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한 잔 하면서, 조용하고 슬픈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신문을 펼치고 칼럼을 읽을 수가 없다. 우리가 잠깐, 유명한 태국 여자 음식점 사장, 그리고 라오스 유명한 야시장 오믈렛 여인을 생각해도, 그 힘으로 잠깐 우리가 몇 개의 구슬을 노력해 보지만, 그것은 생성되지 못하고, 한동안 우리에게 유행했던 관념으로서, 가격이 형성되지 못하고, 다시금 숱한 반복적인, 그래서 과시적인 행정의 세계로 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프리카는 되지 못하는, 동남아의 불교적인 느낌적인 느낌이 되는 것이다. 구마라습의 전선은, 우즈베키스탄, 티베트, 그리고 라오스, 캄보디아, 상해 임시정부, 그리고 구례 화엄사에 걸쳐 있다. 공즉시색과 색즉시공은, 우리에게도 있는 하지원과 같은 것이다.

 

기독교가 불교이고, 불교가 기독교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다. 다만 공부가 섹스이고, 섹스가 공부라는 말은 할 수가 있다. 거기까지는 웃으면서,

 

이제는 말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