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등급
우리가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도 옛날에는 착하고, 착하고, 수더분하고, 미움이 없고, 정이 많으며, 이롭고, 이롭게 하고, 홍익인간, 덕성이 있고, 감성이 풍부하고, 자주 전화하고, 자주 연애하고, 많은 책을 읽고, 영화는 골라서 보며, 집을 꾸미고, 옷을 단정하게 입고, 말씨가 세련되고, 생각이 깊고, 가끔은 좃팡세도 읽는, 그런 사람을 꿈꾸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언제부터 그런 획기적인, 변화가 도래했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은 대놓고 사탄의 등급을 따려고 동분서주하는 것 같다. 사탄의 등급은 사탄이 아니기 때문에,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이 택배 아저씨도 막을 것 같으면, 이제 그 안에서 마음껏 사탄의 등급을 따도 된다는, 그런 암묵적인, 메밀묵적인, 관심이 성행하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 같은 고연봉 사회에서, 나는 아니더라도, 객관적인 것들이 그런 것들이, 아무튼, 작은 육체노동도 잘 관심을 가지면, 고액연봉이 있어서, 그들이 저축해서 오펜하이머 같은 아파트에 들어가 산다고 하면, 그것은 그런 유행과는 조금 별개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것들을 예상할 수 있는데, 가족이, 온 가족이 만인의 투쟁처럼, 서로 사탄의 등급에 오르기 위해서 애를 쓰다가, 공부가 어려운 사람에게는 그것이 영원한 무한 도전이 되듯이, 자주 하이마트, 오펜하이머, 롯데캐쓸, 그렇게 옮기다가, 이제는 돈이 떨어져, 정말 자살하고, 투신하고 그러는 것이다. 사람은 문자에서 기호로, 기호에서 숫자로 이동하는데, 문자와 문자가 있는 사람은 군자와 같고, 문자와 숫자가 있는 사람은 상인과 같다. 그러나 그 문자가 있는 줄 알았던 것이 숫자로 덮이게 되면, 얼죽아, 그러니까 얼어 죽어도 죽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숫자로 이동하는 알 수 없는 흐름들을, 귀신 같은, 그런 것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귀신이 들기 전에, 그들이 그렇게 오펜하이머로 떠돌아다니는 인생이 될 줄은 누구도 몰랐다. 그런 노래도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몰랐었어. 다음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탄의 등급이 되려고 하는 것은, 십 년도 될 수 있고, 이 십년도, 삼 십 년도 될 수 있다. 그들은 삼신 할매를 섬기게 된다. 기독교가 아무리 마태라고하고, 마귀가 아주 테슬라, 크다고 하고, 예수님이 세상 잔혹물처럼 십자가에 돌아가셔도, 구약에서는 여자가 온몸이 찢기는 일도 있고, 그렇다고 해도, 교황이 바티칸, 그런 데 있다고 해도, 사탄의 등급에 있는 사람들은 선뜻 들어가기가 뭐 한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가? 그들은 마침내 사탄의 등급에 있는 사람들로 여겨지지 않겠는가? 우리 사는 세상은, 그처럼 사탄의 등급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러나 그들의 삶은 누구나 예측이 가능할 만큼 단순한 것이다. 종교가 내내 없었으나, 종교를 한번 가져보는 것이고, 돈을 내내 중요하다고 여겼으나, 한번 무소유해보는 것이고, 아이들이 내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겼으나, 그중에 한 명은 한번 사고사로 위장해서 무소유의 종교적 신에게 바쳐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탄의 등급은 단절되어 있고, 대답 없는 너 같은 것이다. 그러면 또 어떠한가? 예측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단순한, 그런 것을 누구도 언급한 사람이 없다. 그것의 파편적인 흔적은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직접적인 언급은 누구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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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등급은 그러나, 성경의 말씀처럼, 너의 형제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지층에 눈을 떠야 하는 것이다.
이름을 마태복음이라고 하고, 마케도니아, 그것을 설교한다고 하니, 살인자와 마귀, 그런 것들이 예배에 참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매우 오래된 현상이고,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사탄의 등급으로는, 성직자 뿐 아니라, 배우나, 형사, 정치인들도 매우 매력적인 대상이 된다. 그러니 그것들과 결탁하면, 순식간에 사라지는, 반야심경 같은, 그런 두려움은 사라지게 되고, 분명 뭔가가 지속하게 되는 것이다. 사리자 찾고. 틈만 나면. 만일 우리 사는 세상에 아픔이 없으려면, 얼른 죽으면 돼 하면서 낄낄거리는, 그런 박신양들과 연합하며 살 수는 있는 것이다.
세상은 사탄의 등급으로 덮여 있고,
그들이 열 명의 가족으로 시작해서,
일종의 가족 국가처럼
아버지가 남든지, 아니면 장남이나, 딸 하나가 남든지,
그런 그렇게 예측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면, 그런 것들도 반드시 예측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마지막을 부산행처럼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영화가 그런 예측으로 우리를 이끌 때, 얼른 죽으면 돼 하면서 낄낄거리는, 그런 박신양과 연합하는 삶도 재밌겠지만, 박신양도 내심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사탄의 등급은 세상을 덮고 있지만, 그것의 내부는 반드시 그렇지 않은 것이다.
주자의 자위는 조금도 궁금한 내용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 에이브이 여배우들은 한정되어 있다. 그들은 감성도 풍부하고, 심지어는 생각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양의 문종들은 그런 이들을 만날 수가 없다. 말초가 시작되는 즈음, 감성이 그것들의 쾌락으로부터 매우 멀리 있음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연결되어 있고, 말초가 원활한 사람이, 감성도 풍부하다는 것은 불가피한 사실이다. 하지만 또한 매우 멀리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가? 거기서, 감성이 있다고 해도, 거기서, 생각까지 도달하기는, 일본 오사카에서 규슈, 도쿄, 혹은 삿포로까지 가는 길처럼, 하염없이 멀기만 한 것이다. 인도 레에까지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일본 에이브이 배우들이, 세계 방방곡곡으로 여행하는 것을 두고, 우리는 그것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잘못이고, 잘못 아닌 사랑이며, 그것은 주자의 자위와 같은, 슬픈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이 악장 같은, 객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칼날 밭으로 지날 수도 있다. 그것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기차를 타고 있어도, 그것이 케익처럼 잘려나간다. 행여 주자가 자위하는 것을, 인공위성으로 본다고 해도, 동시에 그런 풍경도 보아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로 놓고 보면, 생각이 그만 증발하고 마는 것이다. 어째서 우유니로 가지 못하고, 칼날 밭으로 가야하는지, 그것은 슬픔이고, 그것은 로마이며, 그것은 바티칸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사탄의 등급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주자를 보면 두려움에 떠는 것이다. 자위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는가? 그러나, 자위는 공중의 미사일과 같아서, 내가 한다고 해서 그것이 생기지 않고, 안 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는, 그런 단순한 스트럭쳐럴리즘은 아닌 것이다. 하입보이도 있고, 펫보이도 있고, 올드보이도 있고, 보이차도 있고, 보여져호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펫밥도 있다. 그것은 한국어였다가, 중국어, 일본어였다가, 영어였다가 하는데, 꼭 자위처럼, 지나고, 진동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만일 그런 대팻밥을 보지 않기 위해서라면, 사탄의 등급이라는 미망에서 벗어나면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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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조선으로 정복되었을 때, 그러니까 오직 한국에서만, 대팻밥과 같은 자연이 없을 수 있었다. 차분하고,
공부하는
사탄의 등급은, 점차로 사람들을 아메리카로 보내면서, 자연이 아름다우니, 레이크 루이지에나, 중국이나 일본, 한국과 같은 자연과 자연인들이, 시골과 문명, 그런 것들이 자리 잡는, 마침내 그것들을 능가하는 표면과 지배를 꿈꾸었을 것이다.
사탄의 등급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지체가 온전하나, 겉모습의 배우와, 에이브이 배우들이 한결같이 아름답듯이, 사탄의 등급은, 조금 더 시커멓고, 조금 더 거대한 것을 집어넣고,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무등산 수박을 먹지 못한다는, 팔다리가 없고, 눈이 한쪽 없고, 그렇게 두 세계가 연결되고, 둘이 서로 단단하게 도킹되는 것을 소망하였던 것이다. 땅굴을 파듯이, 겉으로 연합하고, 속으로는 넷플릭스처럼 파고 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의 오래된 계획은 지금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대신에, 보스턴 피파티처럼
아주 초기부터
그런 커먼센스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디안 족들을 멸종시킨 것이 아니라, 백인들의 죽은 숫자가 다섯 배이고, 다만 십일조의 계측에 의해서 죽였을 뿐인데, 멸종하고 만 것일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가? 원자폭탄은?
존나 비키니나
전라남도 버섯구름 같은
일본 어딘가에는 정말
기생수나 도쿄 구울 같은 지켄 것들이 살아있을 것 같지 않은가?
그것은 생각 없는 일본인들이
원폭의 후유증처럼
사탄의 등급에
뚫려서 그런 것이다.
무안은 황토밭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노란색이 아니라
붉은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