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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악귀 11편: 생각의 슬픔.......

by 마음대로다 2023. 7. 29.

악귀 11편: 생각의 슬픔.......

 

 

 

 

 

 

 

 

 

 

우리는 이러한 생각의 스크럼과 진행을 만난 적이 없다. 그리고 공신력 있는 국가 사회 어떤 정보, 그런 언론, 그런 것들이, 마땅한 힘과 내용을 보여준 적이 없다가, 간만에 작품을 통하여, 우리들의 초라한, 영원한 중심을 보고, 우리는 힘을 잃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아무런 말만 해도, 그것은 시체를, 이미 형해화된 것들을 언급하고, 가서 보고, 그래도 따숩게 그것들을 언급하는 것일 것이다. 내가 그러한 밀도를, 말의 밀도를 가진 것이 기쁘고, 내가 아무런 말만 해도, 그것들이 진동한다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 때로는 정확하지 않는 말을 할 바에야, 아무런 말을 하면서, 그런 공통적 존재들을 언급만 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진의 힘이며, 어떤 영원적 객체이고, 그리고 카메라 옵스큐라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일본을 볼 때마다, 깊은 카메라 옵스큐라를 느낀다. 정확한 뜻으로서가 아니라, 약간은 특촬에서 등장하는 악당 이름으로서 그러하다. 우리는 생각의 슬픔 같은 한국 가요를 듣는다. 그것은 없는 것이지만, 그런 가사가 있는 것 같고, 실제 비슷한 것이 있기도 하다. 우리는 정말 지하철에서, 숨 가쁜 장소 이동을 꾀하기도 하고, 한국 남자 세 사람이 인도 여행을 하는 것이 떠오르기도 하고, 또한 김훈 중위의 사망 사건이 동시에 연결되기도 한다. 그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그리고 지금은, 이와 같은 문장은, 정식의 진지한, 전통적인 언론의, 그런 간평이나 시사평론, 때로는 진중한 철학적 문장도 아니다. 내가 진리와 철학, 문학과 평론의 진중한, 진지한 목적을 향해 나아갈 때는, 사람들은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으로써, 조롱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꾸준하게, 살아남은 농담으로서, 그러니까 나는 애초에, 말이 가볍고, 그러나 목적이 진지하고, 그것이 동시동작적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한도전이 나의 표현법과 연속하는 것인가 생각하기도 했었다. 나도 또한, 내가 말하는 습관이, 지독한 조롱이나 농담이 저러한가? 항상 생각했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그런 것이 아니라, 항상 내 옆에는 아무도 없는 슬픔을 자극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지금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실은 매우 능력이 없어서, 그것을 연습해서,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을 준비한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혼자 하는 생각은 끝이 없고, 영원한 드라마 같고 그렇다. 그러나 광양에서 사람들을 직접 만나 보니, 별로 그런 것 같지 않았다. 그냥 그것들은 방송국 것들이었고, 인플루언서, 인싸, 그런 것들이었다.

 

우리는 우리들이 풀이라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할 수도 없다. 민주주의, 어떤 풀들, 먼저 웃는다는 것은, 문학적 표현인 것이지, 소들이 늘 쇠죽으로 먹는 풀들을, 꼴들을, 우리들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물의 숫자를 몇 개로써 우리가 세는 것은, 강아지들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사물들은 저마다 귀여움과, 짓는 소리 같은 것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약한 인간 개인을, 주인으로서, 지키고, 그에게 힘을 주고, 평생 주인이 죽는 날까지 그러한 것이다.

 

그러니까 무한도전이 한국 역사의 종착점이라고 하면, 그와 같은 중간주의나, 유사 공동체주의, 일본식의 표현으로 보면 여자력이 뛰어난 남자들의 집합체라는 것은, 즐거운 간이역이면 정말 좋고, 인기가 많고, 인기 관광지가 될 수 있을 것이나, 그것이 서울시청이고,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들의 무한은 생각보다 축소될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무슨 이유로, 우리들의 다른 소설이나, 장편 소설, 그리고 신문 칼럼이나, 시사 칼럼, 역사적인 철학 그런 것들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오직 나의 것만이 항상 거칠게, 사람들의 무한을 찌르고, 도리어 그들에게서 존재를 확인하게 하고, 잃을 수 있다는 것을 고지시켜서, 도리어 붙잡고, 바세우스, 세우고, 그것의 교육을 위해 노력하게끔 하는 것인가? 그것은 진정 미스테리이다. 하지만 미스테리라고 너무, 예쁜 것만 추구하는 것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미스테리의 당사자라고 하면, 그것의 논리적 연관이나 구조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갈수록, 드라마의 내용, 이의리 같은 것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유식의 논리를 스스로 깨우치고, 그것을 중심으로써 드라마를 나처럼 이해하려고 노력하겠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래 1999년까지만 드라마들을 만들고, 그 뒤로는 한 주에 각 방송사 당 세 편씩만 제작하기로 했었다. 책들도 그러했다. 대표 출판사에서, 한 달에 딱 두 권씩만 권장하여서, 구입하거나, 국민 전체에게 증정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이천년이 지나도록, 지금 삼십 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금도, 도리어 드라마가 폭증했으면 했지, 줄지를 않고, 책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이 되어 가고 있다. 우리의 잘못인가? 아니면 방송국의 잘못인가? 우리의 능력 부족인 것인가? 아니면 방송이라는 것이 판도라의 상자인가? 정신의 함양이 문제인 것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없었던 것인가? 서울 사람들이 모든 분야에 걸쳐, 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어린아이의 교육에서 악귀에 들린 사람들처럼 구는 것은, 나름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독립적이며 개별적인, 기초적일지라도 소중한 유식이 있지 않고, 티비 드라마에서 행하고 있는 한국어 고급반 회화가 전부인 것이다. 우리는 드라마를 그와 같은 교육부 장관이나 문화부 장관의 입장으로 보지 않고, 다만 숱한 라면들 같은, 인스턴트로써 보지만,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문화부 장관이나 교육부 장관의 입장을 챙겨야 하는 것이다. 그것의 없음은, 그러니까, 드라마 악귀와 같은, 생의 마지막 필름 같은 것이다. 우리는 조용히, 우리들 전체에게 반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실제 문화부 장관 같은 드라마들을 통해서, 악귀는 우리 사회 전체를, 서울 전체를, 그렇게 이미 정신을 로봇들로 만든 것인가? 하고 말이다.

 

나는 무한도전의 인간들 여럿을 묶어 태우면, 악귀와 같은 드라마가 그 불꽃 속에서 보이고, 용인에서도 보인다는 롯데 타워를 통해서, 탄다고 해서, 탄두리 치킨, 혹은 타워, 혼자서 정신의 승급을 이뤄가고 있는, 헤겔 철학을 하고 있는, 나에게까지 이른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말에서, 무게를 찾아보기 힘들고, 또한 여러 사회 대중으로부터, 무게를 선물 받을 수 없기도 힘이 든다.

 

나는 가볍고 무겁다.

 

우리들은 항상 그렇다......

 

 

오늘은 마지막 회를 한다고 한다......

 

 

만일 셰익스피어가 지금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브리트니스피어스, 섹스가 무섭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농스피어, 농이나, 여자력이 많은 남자들이 그렇게 모여서, 항상 소모되는 장면들이 매우 무섭다고 할 것이다.

 

일이 년 하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혹은 삼 년

 

십 년 넘게 그랬었다면

우리는 진정 문학의 초짜이거나

사회심리학이나

 

뽀로로

 

그런 국민 교육의 기초도 몰랐던 사람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