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민중문화이야기
대상과 소상공인
by 마음대로다
2023. 8. 27.
대상과 소상공인
만일 우리가 우리 이웃 국가를 주체를 못할 정도로 미워한다면, 미워한대도, 오연수를, 오염수를, 바다로 흘려보낼 수 있을까? 누군가 장현 도령이라는 사람을, 그렇게 울부짖으면서, 애타게 찾는다 하니, 글을 쓸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오연수를, 오염수를, 바다로 흘려보낸다고 하면, 사람들이 들불처럼 일어났을 것이다. 들불. 그것의 이름. 그것은 중국이나 일본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해류적으로, 일본과 중국을 사랑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일본은 그럴 수가 없다.......
한국을, 삼겹살을, 사랑해도 그렇다......
사랑해도, 결국, 한국과 중국을 해롭게 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이와 같은 현상을 두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눈물을, 울부짖으며, 그렇게 외치니, 마땅한 답은 없으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그 옛날, 예쁜 탤런트들과 늘 잤다면, 정말 나는 지금쯤 오염수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지 않았고, 그래서 그 결과의 하늘은 내가 지금 유토피아에 있는지, 아니면 비극과 하드 고어에 있는지, 알 수가 없게 한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중국도 침략하고, 무슨 개혁 개방을 먼저해서, 그것을 했다는 것은 이제 접어 두어도 좋을 것이다. 그들은 어디를 침략할 만한 위인이 되지 못한다. 다만 우리가 시키면 다 하는 것처럼, 그들도 시키면 다 하는 체질인 것이다. 시키면 행여 헤겔 철학도 가르칠 수 있으나, 조선의 역사도, 그런 것이 없으면,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것인 것이다.
*
우리가 교육을 받을 때, 국화꽃 옆에서, 교무실 앞, 쪽문 옆의 공간에, 백여 개의 국화꽃이 가꿔져 있었는데, 내 어린 시절처럼, 사람들이 교육을 받을 때, 그것의 인과는 다만, 인 서울과 그렇지 않은 대학교의 차이만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 나와서 글을 쓴다는 사람이, 우리 이 나라에도 없는 것처럼, 어딘가에서 학대를 받아서 글을 쓴다는 이력은 몇 퍼센트 가능하지만, 그 모든 것이 회의적인 것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말, 다만 대학을 다니기 위해서는, 한 사람은 오펜하이머도 되고, 한 사람은 괴벨스도 되고 해야 되는 것인지 모른다. 박정희도 되고. 그러나 그들이 나와 함께 대학을 다닐 때, 뭔가를 했고, 무슨 말을 했고, 그런 걸죽한, 걸출한, 뭔가를, 어떤 미시령 같은, 그런 말을 한 것을 들은 적이 없다. 나와 계광수는, 세계 전문 철학자들이, 그들의 순수이성비판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탐색하고, 그것의 인과를 자기관계 속에서 확인하였는데 말이다. 그들은 바나나 껍질처럼 벗겨져 갔다. 송탄. 매탄. 신탄진. 평택. 이과수. 의정부.
사람들이 나를 만날 수 없는 것은, 생각보다 그 인과의 뚜렷한 인과가, 한 사람은 오펜하이머가 되어도, 한 사람은 괴벨스, 히믈러가 되어도, 말이 생각과 의식의 송과선에 걸쳐, 뭉쳐지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대통령이 되고, 문재인이 되어도 그렇다.
정태성 선생도 그렇다.
그들은 모두, 거대한 살인의 기계 같은, 티비 안에서나, 그리고 그들의 한계 트랙 안에서나, 질주하고, 폭풍, 뭔가 오래 지속되는 시벨리우스 바이얼린 협주곡 일 악장 같은 것이다. 언제 끝나나 하는데, 계속되어서, 나중에 일 악장이 가장 길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는......
우리는 모두 그와 같은 소상공인과 같다. 대상은, 사탄의 재산이거나, 늘 그렇게 공동경비구역인 것이다.
오연수를 흘려보내는 것은, 그것이 사탄의 재산이기 때문이고, 누구도 그것을 언급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 같기 때문이다. 그것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나의 자신감 같다.
요즘 사람들이 그것을 근자감이라고 한다는데, 미칠 듯한 자신감이라는 말이 아닌가 한다. 꼭 조선 시대 벼슬이나 어느 모임 이름 같기도 하다.
*
일본의 수상이나, 한국의 대통령이나, 그것들은 모두 관객이나 청중, 국민들이 심어주는 자신감의 일환으로 되는 것들이다. 옛날에도 그랬다지만, 그래도 옛날에는 피의 어떤 신성한 순수함이 있었고, 지금은 하찮은 댓글들에도 과거 중앙청사가 무너진 것처럼,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그렇게 한국에서 자신감을 선사 받고, 일본의 수상이 되고, 그러면 탤런트 오연수를 공격하는 것처럼, 왜냐하면 자기들은 언제든지 치고 박고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기에, 그것을 방류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연속은 소상공인이 되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그런 대상이나, 수상을, 격파할 수 없는 것은, 일본 사람들 특유의 성격이기보다는, 다만 인간 보편적인 것이다.
우리는 국화꽃 옆에서 소상공인이 되는 것이다.
나도 그 마지막 순간에 바나바를 외치면서, 존재의 바나나 껍질처럼 벗겨지는, 그런 것일 수 있었다. 서울에서.
하지만 생각보다 공부가 쉬웠고, 장승수, 한글로 소설 쓰고, 키보드 자판치고, 자판기 커피 먹고, 친구를 내보내고, 다시 글을 쓰고 하기가 쉬웠다. 그러다 가을이 찾아오면, 그렇게 마음이 배가가 되고 그랬었다.
나는 그렇게 소상공인이 되고자 하여도,
김연지의 노래가 어느 때는 소상공인 같다가도
대상처럼, 오연수처럼
사랑스러울 때가 있는데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그런 사람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