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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나의 항저우

by 마음대로다 2023. 10. 11.

나의 항저우

 

 

 

 

 

 

 

 

 

조선이 계속해서 미적대고, 마침내 국권이 침탈당한 것이, 어쩌면 이순신 장군이 숨은 군사 기지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흐름을 생각할 만한 것은, 그런 가설을 우리가 신빙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말고는 전반적으로 국력이 보잘 것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침탈당하기 전에는 관심을 분산시키는 잘못이 있었으나, 막상 침탈당한 다음에는, 나름 모닥불 같은 느낌을 주었을 수 있다. 순전히 일제 때문에, 상해에 갔던 사람들이, 항저우에도 갔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보다 심각했고, 매우 세계적이었으며, 나무를 만지는 방망이 깎던 노인이, 어쩌면 최첨단의 뉴욕을 상대로 생각하고, 이해하고, 항상 그것들과 함께 생각하고, 다만 경제력만이 아니라, 군사력, 어쩌면 문화 예술 정치 역사 종교 모든 것을 상대해야 했을 것이다. 관아에서 방망이나 깎던 포돌이, 고속도로 마스코트, 항저우에 가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곳은 오래되었고, 귀신들이 아주 잠깐, 귀신같이 정보를 알려준다는 버스 안내판처럼, 아주 잠깐 나타난다고 하면, 그곳에는 신라 사람까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진정 시험 같은 것이다. 풀지 않고, 계속 되고, 들지 않고, 계속 되며, 푸는 것처럼 풀지 않으며, 풀지 않는 것처럼 푸는 것 같은, 푸스카스상, 혹은 한복의 옷고름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

 

하지만 문제는 너무나 전문적이고, 철학적이며, 헤아릴 수 없이 깊어서, 다만 한국 사람이 항저우에 갔다고 해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처음, 혹은 단계, 과정을 무시할 만한 것은 아닐 것이다. 계단을 보고 놀라워할 수 있을 것이다. 이준 열사의 행보 정도가 되어야, 사람이 그 정도로 이동을 할 수 있어야, 견딜 수 없는 세상 문제의 틀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존재가 빛과 같고, 금세 교도소처럼 그림자를 내뱉는다면, 개들이 짓고, 경찰복이 반짝이고,

 

헝가리안 광시곡이 가장 인코스 빠른 직구 같았다. 왜냐하면, 도시락을 갖고, 학교에서 공부하다 보면, 배가 금세 고팠기 때문이다. 도시락 냄새는 수천마리 백마와 같았다. 대암산에서 근무하다가, 그런 고속으로 천장 높이를 나는 구름 떼를 본 적이 있는데, 그래서 우리는 두 개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나도 몇 번은 점심시간 한 시간 전에 먹은 적이 있다. 점심시간에는 배고프지 않고, 나름 방법인 것도 같았다. 그 아무것도 아닌, 밥과 김치, 멸치가, 그렇게 달콤하고, 공부하는 이를 지지하는 그 무엇이 될 수 있는지, 그것은 매번 놀라운 것이었다.

 

나는 학교 성적이 드러나 있었기 때문에, 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많고, 나는 나의 생각에서 종말을 직면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 세상이 좋았다. 세상은 존경심으로 가득 찼었다. 나는 존경심으로 거리를 걷고, 클래식의 선율에 따라, 버스를 타고, 시내를 다녀오고 그랬던 것이다.

 

어쩌면 존경심으로 빠져 죽었던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어떠한가? 존재가 금방 탈락하고, 금세 권력의 하수인, 로봇 같은 부하뇌동자가 된다는 것이 아니었는가? 그럴 구조가 아니었던 것일까?

 

금남로 입구에서, 나는 좋은 부를 보았다. 맞은 편에 크고 우람한 교회도 있었다. 거기서 고등학생 복음성가 집회도 했었다. 어쩌면 그만큼, 금남로는 아름답고, 좋은 곳이었다. 사람들이 말이 없다는 것을 일찍 깨우칠 수는 없었다. 방송도, 음악도, 씨네 21, 그렇게 나름 제 할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속으로, 천장 높이로 질주하던 백마가 사라진 다음에는, 그것이 당연한 것들도 있는 것이다. 그것을 평생 보지 못하고 지내는 사람이 있고, 티비 문학관이 있고, 문예극장이 있고 그러는 것이다. 작가가 차력으로, 혹은 손력으로, 우리 사는 밀접한 세상을 끌고 가는 것이다. 그것의 어두운, 추상적인 구조에서, 나름 성공하는 사람이 있고,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그러는 것이다. 나는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고, 존경심으로 그것에 들어갔고, 다 보고, 지치는, 그런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고, 다만 존경심으로 돌아보다가, 나오곤 했었다. 나는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항상 나의 소재가, 생각의 소재가, 카이저 소재처럼, 남다른 것이었다. 비슷한 것을 발견하면, 오죽헌, 좋았겠는가? 허준을 볼 때, 드라마, 나는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좋았다가, 그저 그랬다가, 좋았다가, 현대적인 나는 그저 그랬다가 그랬다. 이순신의 비밀기지를 다시금 신봉하는, 그런 백백교의 사람들이 될 것 같아서였다. 정확하게 그것을 의식하고, 비판하지는 못하고, 내가 그처럼 흔들렸던 것이, 뇌가 흔들리는 것처럼, 길을 가다가, 뇌만 바깥으로 안전벨트를 하지 않아서 터져 나오는 것처럼, 다만 어떤 불만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황수정이 비를 맞고, 살수차에 의해서 비를 맞고, 속살이 잠깐 드러나던 것을 그렇게 좋아했던 것이, 젊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불만과 채움 때문에 그랬는지, 존재의 좌표 안에서, 나 자신도 잘 알지 못했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허준을 보고, 대장금을 보고, 뇌가 안에서 사라지는 진행을 하였던 것 같다. 두려움을 이용할 수만 있다면. 어쩌면 최민식은 그와 같은 존재의 강압 안에서, 혀도 사라지고, 뇌도 사라지고 했던 것일 수 있다. 넷플릭스가, 그리고 각종 사건사고들이, 그와 같은 비정상적인 아브라카다브라 주문 때문에, 우리 사는 온 세상 생명에 터져나오는 듯 하다. 때로는 기독교를 그렇게라도 지키고 싶었던 것일 수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문건은, 그 어느 것도, 항저우로 가볍게 여행하는 사람을 그려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늘 두려움을 이용했기 때문에, 그런 말이 입에 적당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기독교의 정상이다. 정상이라는 말이 아니라, 가장 높은 곳이라는 뜻이다.

 

존재는 빛과 같고, 그림자도, 혼다 쉐도우도 나의 것일 수 있다. 무섭게 짓는 개들은 스핑크스의 비밀을 알고 있는, 실은 오래된 친구이고, 빛나는 경찰도 오직 그런 나를 지키고 있는 것일 수가 있다.

 

무슨 약속으로 금남로 입구를 지나면,

 

우리는 모차르트 2악장 부드러운 그 햇빛을 다시 만날 수 있다. 내가 외로운 독재자가 되지 않고, 친구가 많고, 세상을 향해 존경심이 가득하였던. 천사가 그런 내게 나타나 무엇이 될 것인지 물으니까, 신학대학 출신의 소설가가 되는 것이라고.....

 

 

답하는

 

나사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