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목련
아침 목련은 누가 데려갈 것인가? 어떤 기독교 종교 교육 단체가 가져갈 것인가? 아니면 불교 무슨 단체가 가져갈 것인가? 아니면 보신각의 타종 소리처럼, 몽고군의 침입이 가져갈 것인가? 우리가 식민지였을 때는, 목련이 보이지 않았다. 목련은 아름다운 꽃이었고, 우리들 가곡에 있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목련은 춤추지 않는다. 댄스 가수가 아니고, 다만 발라드 가수던지, 아니면 가곡, 아니면 영화배우 같다. 아침 이슬처럼, 운동권에서 데려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운동권에서, 그나마, 우리들 옛날 도시의 골목들을 숨 가쁘게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제는 사라질 것이다. 좋아한다. 싫어한다. 그런 꽃점이 아니라, 기억한다,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한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뚝하고,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이, 어린 시절 그렇게 놀라웠던 것처럼, 목련꽃이 떨어지는 것은, 초현실적으로만 보였다. 비닐하우스도, 불만 나지 않고, 관리만 하면, 십 년도 사용할 수가 있다. 바람이 불고, 돌이 날아오면, 그렇지 않지만. 그러나 목련은, 이상하게 오래도록 사용할 건물처럼도 보이지만, 때로는 속옷처럼,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클래식 음악 같고, 그것은 프랑스 수필 같다.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어째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인문대학을 주셨고, 공부하는 이를 그중에, 열 명 중에 한 사람으로 하셨는가? 그들이 남자가 되었건, 여자가 되었건, 모든 사람의 지식이 목련과 같지만, 두려움이 없는, 그러나 인문학을 하고, 국문학을 하고, 철학과 신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아무래도 두려움이 없고, 타 전공을 전공하는, 목련꽃과 같은 것이다. 사람들이 공대생으로, 강원도 양구 해안마을로 점점 몰려 들어가는 시간에, 신방과로, 목적 없는 기사들로, 우리나라 노래 아라비안 나이트 같은, 달이 몰락하고 있네, 그러고 있네, 노래하고 있던 것처럼, 정해진 운명을 걸을 때에, 아무래도 국문학생이면서, 성경을 다 읽고, 힐쉬베르거의 철학사를 다 읽고, 풍우란도 읽고 한 사람이면, 아침 목련에서 자격증을, 어떤 작은 반짝이는 배지를, 가슴에 달아줄 것만 같은 것이다. 그들은, 들어올 때도 소리가 나고, 나갈 때도, 동작과, 어떤 인사와, 약간의 오후 시간의 힌트 같은 것을 준다. 어째서 같은 인간이면서, 어떤 사람은 목련 같은 시간을 살고, 어떤 사람은 부석사의 모래처럼 사는 것일까? 그런 것이 있다.
우리는 뭔가를 알 것 같다. 철학이나 문학이, 그것의 정점이, 그것의 클래식 순번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하나씩 고지전, 점령하고, 그러나 늘 언제나, 그것을 알 것 같은 분위기가 좋고, 중요한 것이다. 나이가 들고, 혼자 살아서는, 그것을 알 수가 없고, 경험할 수가 없다. 적어도 쌍계사의 계단 정도를 보아야, 그것을 기억하고, 그것의 존재를 실감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는 개념을 운동하는 것이며, 우리는 숱한 목련꽃을 상대하면서, 줄기 나뭇가지로 이동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스피노자. 수피아 여고를 나왔다고 해서, 그것을 읽는 것이 아니다. 대동고를 나오면, 대동법은 하나 잘 챙길 수가 있다. 그렇다면, 신학대학을 나오면, 철학도, 문학도, 신학도 도통하겠다 싶다. 목련은, 우리를 보면서,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세처럼, 그 앞에서, 신발을 벗을 수도 있다.
우리는 소망하고, 약속한다. 남과도 하지만, 크리스마스 날에도 하지만, 늘 하고, 항상 하며, 항상 자기를 돌아본다. 학생의 목련꽃은, 사랑의 모세 오경과 같다. 어째서 한국 사람의 목련은 목련이고, 중국이나, 일본 사람의 목련은 목련이 아닌 것인가? 그러니 우리는 눈을 떠야 하는 것이다. 스테이크와 빵, 셀러리만 먹다가, 일본 사람들의 음식만 먹어도, 서양 사람들은 약간 목련이 된다. 남미 사람들이, 우유니, 우유만 잠깐 먹는, 그렇게 살다가, 피지 사람들처럼, 비슷한 편의점 음식만 먹어도, 목련이 되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에게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국문학생이고, 연애를 하며, 공대생도 해안마을 같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말했다. 우리나라의 목련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도 바꾸지 않는다고 말이다. 나의 이런 말들은, 목련 같고, 어느 때는 믿기지가 않는다. 항상 무엇을 전제하는 것이며, 항상 무엇과 겹치기 때문이다. 인연이란, 옷깃만 스쳐도 그렇다는 말이 있다. 인구수가 빈약할 때는, 사람들 손끝이 스치기만 해도, 결혼하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 같은 남녀상열지사의 시대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손끝이 스쳤는데, 하루 종일 생각나기 때문이다. 손끝이 스치고, 편지를 보내고, 목련꽃 아래서 보자고 하면, 결혼을 한 번도 하고, 두 번도 하고, 세 번도 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사랑의 인사와 같았다. 인사를 한 번도 하고, 두 번도 하고, 세 번도 하고. 그나마 학교 제도가 성립한 다음에, 다만 심리적 인연감으로 결혼한다는 것은 성급하다는 것을 스스로 배울 수 있었다. 자목련이 섹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지만, 섹스를 해도, 소문에, 짐작에, 결혼하지 않고, 결별하고, 수순을 밟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백 권의 소설보다 흥미로웠고, 그것이 인의예지 할 때의 인, 그러니까 인생이라고 여길 수 있었다. 대신에, 출신이 목련꽃과 같아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빨리 사귀고, 오래도록 사귀는 일도 있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베르테르, 그러니까 미스터 리나, 미스 리가 되었다.
모든 지식의 끝에는 목련이 있다.
그것은 인문학의 위기와 같다.
우리가 해외여행, 해외여행하는데, 어린 학생들이 그렇게 부모에게 말하는 것은, 약간 어불성설 같은 것이다.
해외여행을 가서, 그것이 서양이 되었던, 인니가 되었던, 홍콩이 되었던 간에, 언덕을 내려오다 보면, 목련 꽃잎 하나가 거대하게 벗겨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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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처녀 같고,
그것은 측은하고,
그것은 처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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