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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기생수 애가

by 마음대로다 2024. 4. 9.

기생수 애가

 

 

 

 

 

 

 

우리는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정수기 코디 아저씨가, 정수기를 정말 코디해준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은 기생수처럼, 영덕 대게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째서 철학이 발전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가시밭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돌짝밭이거나 길가이기 때문이다. 길가메시. 어째서 문학도 발전하지 않고, 철학은 생각도 못하고, 그 많던 학생 운동, 광주 학생 문화 회관, 결국 기생수에게 잡아먹힌 것일까? 우리나라 한반도의 역사는, 정말 이순신 장군만 놔두고, 늘 반복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만, 몇 백 년 만에 한 번씩, 저 깊은 동해바다 바닥에서부터, 마그마가 솟아올라, 지금의 울릉도와 독도를 이룬 것 같다. 우리나라에 교과서가 없는 것도 아니고, 교육 시스템이나, 교육감, 입학사정관, 그런 것들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것이 일이 년 잡목처럼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제법 있었는데도, 한 명의 철학자도 만나지 못했다. 그것의 팽팽한 긴장은, 기독교를 시험하고, 에이아이는 이미, 기생수와 연대해서, 방송국, 관계자, 기자, 인터넷 방송, 유튜브, 넷플릭스를 장악하고 말았다. 한 명 김동길이나, 도올, 박경리, 이어령, 그런 것들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프로그래밍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잠깐, 우리가 이문열을 읽었을 때가, 아마도 삼국지 영화의 때가 아닌가 한다. 적벽대전. 결국 우리는 제갈량의 에이아이에 밀려, 그 모든 화살을 빼앗긴 것일 수 있다. 나의 호박꽃 포토샵에 밀려, 뭐 하나 남은 것이 없다. 그것은 쓸쓸하고, 그것은 광야 같고, 이육사, 그것은 풀 초자 초인 같고, 그것은 미시마 유키오 같다.

 

이것은 비단, 나의 거장됨의 독특한 성인병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그것들이 재밌고, 서울 은평구, 그리고 북한산, 청량리, 회기, 왕십리 같고 그럴 것이다.

 

강남은 그래서 거대한 그림자일 수 있다. 그런 이름을 조장하거나, 그것을 지역적으로 찬양했던 것이, 어쩌면 다 김규리의 맹렬한 맹수 그림전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림자는 매우 분명하게, 우리에게, 사탄의 현재를 나타내 보여준다. 우리는 그것을 과감하게 연결할 만한 재능이나, 저력, 저녁, 저주, 황혼에서 새벽까지, 그런 것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자유의 모든 전제를, 그것의 논리적 절대성을 앗아간다. 호박꽃도 자유인데, 네파도, 그렇다면 우리는 자유가 없는 것일까? 우리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면, 그렇다면 공산주의가 자유주의인 것인가? 그렇다면 공산주의가 호박꽃을 하고 있다는 것인가? 다만 그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북한은 지금까지 먹을 것에 관한 문화를 발전시키지 못했던 것일까? 그것이 진정 하박국, 그러니까 호박꽃의 저주였던 것일까? 그러니 그런 말이 입에서도 벙긋, 나오지 않는 것이다.....

 

자유연애는 철학과 같다.

 

신학과 같다.

 

이문열이 글을 내뱉을 때마다, 우리는 그런 호박꽃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은, 대두의 내용들이 재밌고, 흥미롭고, 그의 어눌한 말투가, 새로운 시대의 아저씨 정도는 될 것이다 했었다.

 

그러나 그에게 한계가 빨리 봉착했고, 그다지 이야기 보따리가 풍성하지 않는 사람처럼 되고 말았다.

 

그는 에이아이 같지 않다.

 

그냥 에이아이 같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에이아이 같은가? 우리는 자유의 절대 명제를 알지 못하나, 다만 그것은 아니라는 부정성, 부정형, 그것은 아니라는 부정의 힘은 갖게 되었다.

 

.....

 

하루키는 에이아이 같은가......

 

우리들의 밀레토스 학파는, 정말 그렇지 않다.

 

도올은 철학이 아니고, 그렇다면 기생수는 철학이 아닌가? 자유연애는 철학이 아닌가? 그 모든 논쟁들. 기생수의 잔인한 액션은, 남녀들의 흔한 눈물과 같고, 그것의 무한한 현재와 같고, 도시에서 비만 내리면 맞이할 수 있는, 누군가 흘린 눈물 같고 그렇다. 재산이 없고, 한 사람이 항상 재산이 없고, 여행을 갈 수 없고, 어학연수를 갈 수가 없다. 항상 최후의 만찬을 하고, 교회는 한 번 나가지 않으나, 남녀가 서쪽 바다에서 최후의 만찬을 할 때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교회에 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철학 같고, 그것은 신학 같다. 그것은 신혼 같다.......

 

성문 종합 영어는 철학이 아닌 것인가......

 

어째서 우리는 밀레토스 학파처럼, 수십 수백 개의 드라마는 쳐 보면서, 한 명 비평가는 만나지 못하고, 한 권의 철학책을 일본 애니 고르고, 고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고, 우리는 각종 뇌파에 이끌리고, 필름들에 함께 편집 당하며, 기생수라는 반 생명체를 지키는, 뇌가 먹힌 인육들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사랑을 할 수 있고, 믿음도, 소망도, 다들 철학이지만, 사랑에 그 많은 철학소, 인식소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학원에서, 캐주얼을 입고, 거기다 비싼 귀고리를 하고, 내 앞에 앉은 여학생을 만날 수가 있다. 너무나 예쁜. 그것은 에이아이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에이아이에게서 빠져나오고

행여 에이아이에 있다 해도, 그것의 그림자가 사탄만 아니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번,

다시는

 

그런 영화를 우리가 만날 수 없다.

 

남자는 여자를 만날 때, 반드시 함께 공부해야 한다.

 

그렇게 학원 건물을 짓고, 어느 비긴 어게인, 무등산을 바라보고 앉아, 다시금 내게 등을 보이고, 비싼 귀고리를 하고, 앉은 여학생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고서는, 여자들은 죄다, 하박국의 기생수들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성경의 하박국이지만, 나중에는 조금씩조금씩, 그러다 창대해지기 때문이다.

 

함께 책을 읽으면, 다시금 학원 건물을 지을 수 있고, 우리는 브이알로 그것을 볼 수가 있다......

 

남자가 결혼해서, 그와 같은 소질이 모두 동이 났다 싶으면, 여자들이 적당히 그런 다른 남자와 바람 피우는 것을, 주변 사람들은 조금은 허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와 같은 양영학원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꼭 기생수처럼 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은 때에,

 

김용옥이나 이문열이

약간 잡새처럼 지나간다......

 

내가 처음, 친구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서울에서 사람들에게 비쳐졌을 때, 숫자가 많이 차이나긴 했으나, 실은 그들과 동급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정체되었고,

 

나는 지금까지 반복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나만 마운드에서 서고, 그들이 다들 에이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적당히 야수인 것이다.

 

그리고 일본에는, 기생수와 같은 외야수가 있다......

 

사랑은 야수를 남긴다......